기획·칼럼

우주 너머 외계 생명체를 찾아라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21) 칼 세이건과 프랭크 드레이크

우주 어딘가에는 인류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주는 인간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방대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외계 생명에 대한 관심과 논쟁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 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0년에나 돼서야 시작된다.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 1930~)는 외계인의 존재를 찾는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최초의 과학자다. 그리고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과 함께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주의 별을 가슴에 품은 천체물리학자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지구를 나타내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지구를 향해 이렇게 표현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 또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이다.

칼 세이건은 평생을 대중들이 우주생명과 과학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 김은영/ ScienceTimes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과학 교양서 ‘코스모스’로 일약 슈퍼스타가 됐다. 칼 세이건은 천문학을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코스모스를 집필한 공이 크다. 코스모스는 1980년도에 출간된 이후 10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과학 교양서로 꼽힌다. 코스모스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60여 개국 5억여 명이 시청한 기록을 세웠다.

칼 세이건은 미국 코넬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우주탐사에 대한 수많은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자문위원으로 마리너, 파이어니어, 보이저 계획, 화성 탐사 계획인 바이킹 계획 등을 주도하며 우주의 생명체를 찾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파이어니어 10호에 실린 인류가 우주에 보내는 메시지. 칼 세이건의 주도로 그려졌다. ⓒ 위키미디어

칼 세이건은 파이어니어 10, 11호에 인간 남녀의 모습과 지구의 위치가 표시된 파이어니어 금속판(Pioneer plaque)을, 보이저 탐사선에는 인류의 문명을 의미하는 각종 인사말과 인류의 모습을 녹음한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를 실어 우주로 보냈다. 이 외에도 그는 계속해서 우주에 교신을 보냈다.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1985년 쓴 소설 ‘콘택트’에는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싶은 그의 염원이 담겼다. 전파 천문학자 앨리(조디 포스터 분)가 외계에서 온 신호를 수신해 외계인과 접촉한다는 내용의 소설 ‘콘택트’는 1997년에 영화화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배경은 헬릭스 성운인데 마치 인간의 눈동자를 보는 듯하다. ⓒ National Geographic Australia

외계의 전파에 귀를 기울인 천체 물리학자프랭크 드레이크’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칼 세이건과 함께 외계인의 존재를 찾는 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외계인의 존재를 찾는 일에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최초의 과학자다. 드레이크는 외계 생명체를 찾는 세티(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 연구소를 창설해 외계에서 보내는 전자기파를 통해 인류와 같은 수준의 지적 문명을 가진 생물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한 프랭크 드레이크. ⓒ 위키미디어

그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만들어 외계 문명의 수를 계산했다. 드레이크 방정식이란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 수를 계산하기 위해 만든 방정식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서 인류와 통신이 가능한 지적 생명체를 가진 외계 문명은 최소 1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드레이크의 세티 프로젝트는 1960년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외계 지적 생명체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의 시도는 ‘오즈마(Ozma) 계획’으로 명명된다. 1971년에는 ‘오즈마 계획 2’가 시행됐다. 전파망원경을 통해 500시간 동안 624개의 별을 대상으로 전파를 추적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드레이크는 외계 문명을 찾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염원이 담긴 세티 프로젝트는 수많은 과학자와 기업, 대학이 후원하며 우주 문명을 찾는다는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칼 세이건 또한 죽는 날까지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골수이형증으로 아픈 와중에서도 집필과 강연을 병행했고 화성 탐사 계획인 바이킹 계획을 주도하며 외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인류에게 미지의 외계 문명에 대한 존재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알려주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칼 세이건은 외계인을 만나면 “‘왜 이렇게 늦게 왔냐’라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하늘의 별이 된 지금 칼 세이건은 그토록 기다려왔던 존재를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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