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우연을 길들이면서 우연에 길들여지는 길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44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에 확률과 통계를 수학 시간에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확률과 통계를 추상적인 수학의 일부로 여기게 된다. 대학생 시절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통계를 공부했는데, 통계 데이터의 적합성을 살피는 카이 검증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대학원 학생 시절 통계를 공부하던 내 주변의 동료들 중에 수학과 학생은 없었다. 회계학과 학생들 서넛, 경제학과 동물학 그리고 유전공학을 공부하던 동료가 엄청난 과제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모리아리티 교수의 통계학 강의 이야기를 식당에서 하곤 했다. 모리아리티 교수는 수학과가 아니라 회계학과에 적을 두고 있는 분이었다. 그 분의 안식년에 개설된 통계학 강의 역시 수학과 교수가 아니라 동물학과 소속의 유전학자라는 이야기도 동료들에게서 들었다.

 

과학철학자 또는 메타 과학자 이언 해킹은 <확률의 출현>이라는 책을 통하여, 확률 이론이 17세기 중반에 추측술, 빈도, 확실성의 정도 등의 개념들을 통해 갑자기 출현하여 18세기를 통해 만개하는 모습을 그려 보여 준 바 있었다. 확률 개념의 출현에는 불확실해 보이는 현상과 사건을 인간의 이성이 이해할 수 있다는 계몽기 학자들의 자신감 같은 것이 드러나며, 보험요율이나 도박의 승률 계산과 같은 당시의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개재되어 있었음도 해킹은 보여 주었다.

그 후 시어도어 포터는 통계 역시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의 열망을 통해 급작스럽게 출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19세기 중반 국정 운영에 통계가 얼마나 유용한 내용인지를 설파하면서 살았던 케틀레는 남녀의 출생 성비, 요일별 자살률, 시간대 별 사고율 등 각종 자연현상이나 사회적 사건들에서 예측이 가능할 정도의 규칙성을 발견해 냈다. 군인들이나 학생 등 한 집단 구성원들의 키나 체중, 가슴둘레 등이 중간치가 정점을 이루며, 양 극단을 이루는 구성원의 수는 종형 그래프를 그리며 적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간치인 중간인 또는 평균인은 그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며, 이는 군대나 학교를 너머서서 인종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 집단의 표준인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종형 커브가 정상곡선으로 불려 지듯이, 인간의 사회 속에서 이 평균인이란 결국 정상인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포터는 중간인을 정상인으로 보면서 초점을 맞추는 케틀레의 모습에서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공화주의자 케틀레의 심상을 읽을 수 있었다.

해킹은 통계의 경우, 확률 계산보다 물리적 필연성을 둘러싼 좀 더 깊고 오랜 역사적 갈등의 궤적이 있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통계가 법칙성을 지닌 학문이 되어 가는 과정은 우연을 ‘길들여 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안다는 것은 원인을 안다는 뜻이라 이야기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현상,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이을 수 없는 현상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우연이라는 사건, 예를 들어 시장에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우연적인 사건에도 원인이 없다고 볼 수 는 없다. 시장에 가려는 나의 목적과 또 다른 이유로 그곳을 지나게 되었던 그의 목적 즉 원인이 교차하면서 만들어 낸 사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으로 보이는 사안을 포함하여 모든 사건이나 현상이 결국은 어떤 필연적 인과관계의 결과일 것이기도 했다.

18세기 사람들은 확률에 대한 수학이론을 우연론이라 불렀는데, 이 역시 확률론은 인과율이 갖추어 진 지식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확률적 사건이 결정론적인 인과관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19세기 초반에 확률론의 의미를 정리해 보이면서 라플라스는 확률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자연현상 역시 숨어 있는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결정론적인 요인들의 결과이며, 결국 모든 자연현상은 결정론적인 요인들의 결합 결과임을 당연한 사실로 보았다.

해킹은 그런 의미에서 통계의 전도사 케틀레 역시 필연적인 인과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한 집단 내 사람들의 키가 항상 정상분포 곡선을 그리며 일정한 변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적시했지만, 이들의 개인 차이는 출생과 영양 상태 등 나름대로의 결정적인 요인 또는 결정론적 원인들의 결과임을 케틀레는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현상을 어느 정도 길들여 공리주의적 기획의 도구를 만들어 냈지만, 그 현상이 결국 필연적인 인과관계들의 집합임을 의심치 않았다는 점에서 케틀레 역시 라플라스와 같은 필연론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해킹은 케틀레조차도 우연을 제대로 길들이지는 못했다고 표현한다.

우연을 길들인 분명한 인물, 즉 사건의 인과관계에서 필연성을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통계적 법칙의 자율성을 확보한 사람으로 해킹은 프란시스 골턴을 지목한다. 골턴은 사촌형 찰스 다윈의 영향으로 유전적인 천재가 이어지는 가계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천재적인 가계의 자손들은 더 탁월한 천재적 기질을 보여주기보다는, 대체로 케틀레가 강조했던 평균인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듯 보였다.

이는 결정론적인 인과관계를 상정하는 유전론을 통해 이해 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결국 골턴은 형질의 다양한 분포에서 평균으로부터의 ‘편차’를 읽을 수 있었고, 부모의 형질과 자녀의 형질 사이의 ‘상관계수’를 생각해 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포나 편차, 상관관계는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지하지 않는 수학적 법칙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통계학이 수학과가 아니라 회계학과나 생물학과에서 개설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은 통계학이 이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회적, 생물학적 현상의 우연성을 통제하고 길들이면서 형성되어 온 과정을 상기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회귀에 대한 골턴의 착상은 저명한 가계의 유전 문제에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상관관계 이론은 범죄자를 인상을 통해 식별하고자 하는 그의 집착을 통해 확실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카이 검증법을 만들어 낸 피어슨은 골턴 자신이 만든 우생학 교수좌의 첫 교수였으며, 골턴 자신이 직접 선별하여 임명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해킹이 발견한 아이러니는 이렇게 하여 우연이 길들여지고 통계적 법칙이 인정되면서, 인간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겨났고, 자유의지의 운신범위는 좁아져 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연을 길들이면서 그 우연에 점차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소개도서: 이언 해킹, 정혜경 옮김, <우연을 길들이다: 통계는 어떻게 우연을 과학으로 만들었는가?>,
            바다출판사, 201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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