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오스카 수상에서 배우는 R&D 전략

[TePRI Report] 한국적인 이슈에 도전하면 세계 선도 가능할 듯

지난 2월 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부문을 휩쓸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뽐냈다. 유난히 외국 영화에 인색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상 첫 비(非)영어권 영화 작품상 수상에 우리는 환호했고, 전 세계는 깜짝 놀랐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선박, 차량 등 제품은 세계 일류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언어의 벽이 높은 문화 상품은 어렵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세계에서 사랑을 받는 K-pop도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작사, 작곡과 팀 구성 등을 성공 요인으로 제시하는 분석이 많았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계의 변방으로 취급받았던 한국 영화가 어떻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이를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우리 과학기술의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연결해 보고자 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게티이미지

그 시작은 자율성 확대였다. 100년 역사의 한국 영화는 1986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수입제한 폐지, 제작 자유화 등의 영화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조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문화예술정책을 견지하며 영화계를 지원해 왔다.

자율적인 풍토 속에서 우리 영화산업은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2018년 기준으로 예술영화의 프랑스는 물론 발리우드로 유명한 인도보다도 앞선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연구·개발에서도 연구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은 지나쳐도 과함이 없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정부도 작년 3월 ‘정부연구개발투자 방향과 기준(안)’에서 연구 현장의 자율을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국가 사회적 현안에 해결해야 하는 책무를 갖는 공공 R&D에서 자율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연구 주제에서 임무 중심형 연구와 자율 주제 연구가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당연히 모든 연구에서 연구자의 창의성을 담보할 자율적 연구 수행은 필수적이다.

최근 고위험 혁신연구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미국 DARPA의 경우 연구책임자에게 절대적인 연구의 자율성과 이에 따르는 책임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두 번째는 정당한 경쟁이었다. 2006년 7월, 146일이었던 한국 영화의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줄이자 영화계 인사들은 이제 한국 영화는 조종을 울렸다며 극렬히 반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세계 5위로 성장한 우리 영화산업에서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쟁쟁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당당히 경쟁하며 강인한 시장 경쟁력을 키워온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R&D 예산 투자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질적인 연구성과와 사업화 부분에서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우리나라 연구·개발 외형적 성장은 놀랍다. 예산 측면에서 보면 2019년에 20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정부 예산 증가율의 2배에 가까운 17%를 증액하여 24조 원을 넘어섰다.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이미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이처럼 국가는 과학기술에 크게 기대하며 투자를 지속 확대했지만, 질적인 연구 성과와 사업화는 미흡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 중에 하나로 국가 경계를 허문 경쟁에 나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연구자가 해외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세계의 아이디어와 두뇌를 모을 수 있도록 해외 연구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마지막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반지하 셋방, 학벌주의, 사교육 등 영화 기생충이 펼쳐내고 있는 공간과 문화는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기생충의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봉준호 감독도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선진국만 향하던 동경의 시선을 돌려 우리 자신을 들여다봤을 때 오히려 거기에 답이 있었다.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추격형 R&D는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을 맹목적으로 쫓았던 90년대 한국 영화와 닮았다. 최소한의 성공이 보장된 R&D 전략이었지만 경쟁자가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전략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투자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선도형 연구를 지향하는 우리 과학기술계가 우선 살펴야 할 연구 주제는 가장 한국적인 문제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기에 우리가 가장 잘 알고, 가장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기후변화, 초고령화, 도시화 등 우리나라가 그 어떤 나라보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앞서 있는 분야다. 가장 한국적인 이슈에 도전은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이번 2월은 길고도 길었다. 지금 우리는 오스카상 수상이라는 기쁨을 잊고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난적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 싸움도 끝이 날 것이다.

우리는 또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한마디에 250여 명 의료진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대다수 의심 환자는 자기희생적 자가격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회 감염을 막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적과 자기만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과학기술계도 각자 쥐고 있는 연구성과 주머니 속에 이 싸움에 도움이 될 무엇이라도 내어놓으려 한다.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연구에 돌입할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도 우리의 승리는 필연적이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김현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정책기획팀장(kimhyunu@kist.re.kr) / 박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정책기획팀 연구원(jepark@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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