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랙시컬 갭 전시 열려…다양한 미디어 구현

‘랙시컬 갭(Laxical Gap) : 미디어어아트의 비언어적 해석’ 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금천예술공장에서 10월 17일까지 진행될 이번 전시회는 퍼포먼스, 사운드 조각, 웨어러블 컴퓨팅, 프로젝션 매핑 등 현대미술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미디어가 구현되는 이 전시이다.

1층 어둠 속에 미디어아트, 2층 실제 제품 같은 작품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은 3개 층에 걸쳐 전시되고 있다. 1층의 작품들 대부분은 칠흑 같은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부세계와 격리된 느낌이 강한 이유이다. 다른 세계로 이동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1층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작품은 정자영의 ‘12현의 파도, 그 후 After 12 String’이다. 붓놀림에 따라 사운드가 발생하는 작품이다. 전기저항이 약 106Ωcm 이하의 도료인 전도성 도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로잉과 사운드, 움직임 간의 인터랙티브가 벌어진다.

김병규, ‘에이필드-마비된 감각’

김병규, ‘에이필드-마비된 감각’
ⓒ 서울문화재단

혹시 ‘잼(jam)’을 아는가. 재즈에서 즉흥연주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서도 관람객들의 즉흥연주를 해볼 수 있다. 다다미스의 ’잼’이 그것이다. 암흑의 어두운 공간에 마치 버스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고리들이 길게 늘어져 있다. 엘이디(LED)로 만들어진 이 고리를 관람객들이 잡으면 불빛이 나오면서 각각의 음향이 나온다. 음높이마저 가지각색이어서 마치 실로폰 연주를 하는 듯해 보인다. 최근 전자기기 발달로 타인과 교감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데, 작가는 오히려 이 작품을 통해 전자기기로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김병규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2개 작품을 내놓았다. 그 중 하나가 ‘에이필드-마비된 감각’이다. 이 작품은 디지털 미디어의 매혹성이 잘 드러나고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위협성도  경험하게 한다. 사각형 큐브 공간에 정육면체의 의자가 놓여 있다. 분명 큐브 공간은 모두 뻥 뚫려 있다. 단순히 틀만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의자에 앉으면 연기가 흐르고 레이저로 보호막이 형성된다. 열려 있는 듯 하지만 닫혀 있는 세상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치앤칩스,  ‘라이트 베리어(Light Barrier)‘

김치앤칩스, ‘라이트 베리어(Light Barrier)‘
ⓒ 서울문화재단

천장의 4개의 프로젝터. 한 시퀀스마다 빛의 이동. 아래 설치물에 볼록 거울. 바로 김치앤칩스의 ‘라이트 베리어(Light Barrier)’이다. 연기로 채워진 공간에 수많은 눈동자들이 움직이는 착각을 자아낸다. 거울 반사각에 의해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영상이 만들어지는 등 환영적 이미지도 만들어낸다.

2층으로 올라가면 2개의 작품이 있다. 2층의 특징은 실제 제품이 이용됐다는 점이다. 양숙현의 ‘수퍼 크래프트 시리즈: 손’은 촉각의 청각화한 작품이다. 웨어러블 신디사이즈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목에 전도성 재질로 이루어진 둥근형태의 목걸이를 걸고 실 같은 소재로 이루어진 장감을 낀 후, 그 장갑을 만지면 소리가 난다.

후니다 킴의 작품을 보면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주인공이 광고판 앞을 지나자 한 제품 광고가 소리로 들리는 그 부분 말이다. ‘사운드스케이프 아파라투스 에이치 02(Sound Scape Apparatus H 02)’에서 사용된 초지향성 스피커 때문이다. 초지향성 스피터는 빛처럼 소리를 조준해 쏴줌으로써 특정 지역에서만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든 스피커이다.  이 스피커로 인해 온통 하얀 색으로 칠해진 하나의 방에 소리가 들리는 공간과 안 들리는 공간으로 나뉜다. 공기나 소리를 조각한다는 개념을 가진 작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 구별 짓기인 셈이다.

박물관 같은 3층 전시실

3층 전시실에는 많은 작품들이 있다. 분류를 해보자면 ‘키네틱, 관객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으로 나눠볼 수 있다.  마치 박물관 같다. 먼저 키네틱 관련한 작품을 보자. 하이브리드 미디어 랩의 ‘바이오키넨시스 투(Bio-Kinesis Ⅱ)는 독특한 면이 있다. 대부분 파사드 작품이 미디어아트인데 반해 키네틱 파사트 작품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는 미학적 움직임을 표출하는 이 설치물은 델타 로봇 기술을 활용하여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질 수 있는 모듈 120개로 구성되어 있다. 반대편에서 움직일 때 마다 색감이 알록달록하다.

지몬의 150 프리페어드 디시-모터(150 prepared dc-motor)는 최소의 아날로그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하고 기능적인 부품인 모터만으로 소리의 플랫폼이라는 건축학상의 실질적인 플랫폼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터들 아래로 긴 줄이 연결되어 있는데 퉁퉁 소리를 치면서 다양한 이미지도 만들어내고 있다.

김정환, ‘이미지-움직임’

김정환, ‘이미지-움직임’
ⓒ 서울문화재단

‘빛결’이라는 작품도 최소의 숫자와 최소의 색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흰색과 밝기의 움직임만을 사용하여 공감적이고도 입체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엘이디와 모터의 조합으로 생성된 패턴화된 움직임이 픽셀 같고 물결과 같은 착시를 이끌어낸다.

경험을 넘어서 인터랙티브할 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중 김정환의 ‘이미지-움직임’ 작품은 동화 속 마술 같다. 관람객이 앞에 서면 적외선 카메라가 인식을 한다. 2m 이상 떨어진 피아노와 그 앞을 가로막은  빛의 커튼으로 구성돼있다. 사람이 허공에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센서가 작동해 피아노가 연주된다. 그런데 건반은 다시 허공으로 푸른색 레이저들 쏘는데, 이는 청각을 다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도자기를 가상으로 빚어볼 수 있다. 한윤정·한병준의 ‘버추얼 포터리(Virtual Pottery)’가 그것이다. 핸드 제스쳐를 구동하는 프로그램과 키넥트라는 장치를 이용해 간단하고 직관적인 손 움직임으로 3D 도자기 오브젝트를 만들어볼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도자기를 만드는 동안 손의 움직임에 따라 디지털 음악영역으로 전환되면서 음악이 연주된다. 이는 도자기가 조각되면서 실시간으로 음악이 작곡된 설치작업이기 때문이다.

김용훈·신승백,  ‘아포시마틱 자켓’

김용훈·신승백, ‘아포시마틱 자켓’
ⓒ 서울문화재단

‘살’은 또 다른 김병규 작가의 작품이다. 사람의 살 모양을 한 육면체 덩어리 세 개가 덩그러니 상자 위에 올려 있다. 만지면 사람 피부와 같은 감촉과 체온, 맥박도 느낄 수 있다.

김용훈·신승백의 ‘아포시마틱 자켓’은 동글동글 매달린 게 장식인 줄 알았더니 재킷 표면에 장착된 카메라 렌즈다. 렌즈는 쉴 틈 없이 외부를 감시하며 타인의 공격이 예상될 때는 ‘당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 불상사를 막도록 돕는다. 게다가 착용자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재킷에 장착된 카메라가 현장을 360도로 촬영해 웹으로 전송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흐르는 미디어아트 작품들도 있다. ‘라이트 트리(Light Tree)’는 빛을 매개로 과학과 예술의 결합 가능성을 제시했던 미국의 미니멀리즘 예술가 ’댄 플라빈‘에 대한 오마주이다. 하이브의 작품으로 스토리텔링이 더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만짐에 의한 사물과 관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무가 빛으로 숨을 쉰다는 의미가 더해져 있어서이다.

조니 르메르시에, ‘후지(FUJI)'

조니 르메르시에, ‘후지(FUJI)’
ⓒ 서울문화재단

조니 르메르시에의 ‘후지(FUJI)’는 마카로 하얀 벽면에 그린 그림이다.  대상물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해 변화를 주는 프로젝션 매핑 1세대 작가인 그는 빛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 후지산을 묘사한 풍경화에 빛을 투영해 1000년 전의 민간 설화인 카고야 공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듯 대나무가 움직이는 듯 보인다. 손으로 그린 그림에 빛의 층을 투영·결합하여 새로운 감각의 풍경화의 재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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