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영웅이기를 거부한 브레히트의 갈릴레오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35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했던 강연 자리에서 교사 한 분이 과학자 중에 행복한 삶을 산 과학자가 있냐고 물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맡고 계셨던 그 교사는 자기 반 학생이 그 질문을 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학자가 없어 난감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왜 그 초등학생에게 과학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을까? 불행한 과학자의 아이콘 갈릴레오가 당장 생각이 났다.

종교재판으로 상징되는 갈릴레오의 극적인 삶은 워낙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종교와 권력에 의해 진리를 포기하도록 강요받은 과학자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태양중심설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종교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하는 일화는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한 비극적 영웅으로서 갈릴레오를 그려냈다.

▲ 갈릴레이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독일의 유명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가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그려낸 갈릴레오는 자신을 과학의 순교자로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거부한다. 브레히트의 이 유명한 작품은 브레히트가 나치를 피해 덴마크로 망명했던 1938~1939년 무렵 씌어졌다.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은 <지구는 움직인다>였다고 하니, 아마도 원래 작품은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확고하게 지키고자 했던 비극적 영웅으로서 갈릴레오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하지만 1947년에 이 작품이 미국 무대에 오르게 되었을 때, 브레히트는 원래의 작품을 대폭 수정했다고 한다. 원자폭탄의 투하를 목도하기 전과 후,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그리고 그것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브레히트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재탄생한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수호하려는 신념의 과학자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회의하고 확신에 차지 못한, 훨씬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이 작품에서 브레히트는 대략 1610년 무렵 망원경을 만들 때부터 1638년 <새로운 두 과학>을 완성할 때까지의 갈릴레오의 삶을 시간 순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부분은 역시 지동설로 종교재판을 받게 되는 13번째 장면과 <새로운 두 과학>을 제자에게 비밀스럽게 넘기는 14번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장면은 또한 원래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수정이 된 부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브레히트의 복잡한 속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두 장면에서 극을 이끄는 것은 안드레아라고 하는 갈릴레오의 제자이다. 그는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가 끝까지 지동설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차 있다가 스승의 변절에 분노하여 “술고래! 달팽이나 먹는 식도락가!”라고 갈릴레오를 향해 소리치고 “영웅을 갖지 못한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탄식한다.

가택 연금 중인 갈릴레오를 찾아갔다가 그가 새로운 역학 이론을 쓴 책을 몰래 넘겨주자 갈릴레오의 철회를 “오로지 학문의 본래 과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희망 없는 정치적 폭력에서 퇴각하셨을 뿐”이며 “선생님께선 진실을 감춰 두고 계셨습니다. 적 앞에서”라며 갈릴레오의 철회를 과학연구를 진전시키기 위한 계획된 행동으로 칭송하는 것 또한 안드레아이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오는 과학자를 영웅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스스로 거부한다. 영웅을 갖지 못했다는 안드레아의 말에 갈릴레오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탄식한다. 갈릴레오의 철회를 계획적인 행동으로 칭송하는 안드레아에게 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고문이 두려워 지동설을 철회하고 권력자들에게 지식을 양도하고 천직을 배반했다고 말하는 것도 갈릴레오 자신이다.

왜 갈릴레오는 영웅이 되기를 거부했을까? 왜 브레히트는 안드레아의 비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갈릴레오의 고백을 통해 이 이야기를 끌어냈을까? 갈릴레오 스스로의 고백을 통해 브레히트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격변 속에 놓여 있었던 과학자의 현실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권력 앞에서 신념을 포기했지만 과학 연구를 포기하지도 못하고 지식을 추구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충분히 책임도 지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영웅처럼 여겨지지만 스스로는 영웅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런 과학자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것은 2차 세계대전과 같은 큰 변동 속에서 영웅이 되기를 요구받았지만 영웅이 되지 못한 브레히트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무능에 대한 반성이자 회한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차경아 옮김, <갈릴레이의 생애: 진실을 아는 자의 갈등과 선택>, 두레,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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