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연합군의 진격을 막은 튀니지의 겨울비

[기후와 전쟁] 비에 젖은 고지 연합군엔 `살인적 뻘'

“히틀러가 암살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독일이 구원되는 겁니다.” 게르만족의 전투여신 ‘발키리’의 이름을 딴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 나오는 주인공의 말이다.

▲ 연합군과 독일군이 겨울비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튀니지 전투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독일 육군 대령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그 백작(톰 크루즈 분)이다. 독일의 명문 귀족 출신으로 미남에 만능 스포츠맨이다. 초고속 승진해 34살에 대령으로 진급했다. 아프리카 제10기갑사단에 배속돼 튀니지 전투에서 오른손, 왼쪽 눈과 왼쪽 손가락 2개를 잃었다.

그는 튀니지 전투에서 전쟁의 비참함과 히틀러의 무모한 야욕을 깨닫는다. 히틀러를 죽이지 않고는 처참한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이 히틀러를 암살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다. 튀니지 전투는 아프리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독일과 연합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전투이다.

1942년 11월 4일 몽고메리의 연합군은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사막의 여우’ 로멜이 이끄는 독일군을 격파했다. 그리고 나흘 후 영국과 미국의 연합군은 아프리카 북부해안으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한다.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1천500㎞에 걸친 해안선에 10만7천 명의 대규모 병력을 투입했다.

작전의 목적으로 첫째, 9개의 주요 작전지역을 점령해 전쟁의 주도권을 쥔다. 둘째, 북아프리카의 3대 항만도시인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알제리의 오란과 알제이를 장악한다. 셋째, 알제리에서 병력을 튀니지로 동진시켜 튀니스와 비자르테를 점령한다. 넷째, 엘 알라메인에서 퇴각 중인 로멜을 포위해 섬멸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아프리카는 연합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야심적인 이 작전의 이름은 처칠 수상이 직접 ‘토치(횃불) 작전’이라고 붙였다.

2주일 내 튀니지 진격 목표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은 튀니지로 동진하기 시작했다. 튀니지까지 700㎞를 진격하는 데 2주일 이내를 목표로 했다. 연합군이 속도전을 감행해야 했던 이유는 11월부터 3월까지 우기가 닥치기 때문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히틀러도 서둘러 소련 전선에서 지휘하던 위르켄 폰 아르님 대장을 사령관으로 지명했다. 11월 말까지 1만5천 명을 증강시켰고 독일이 자랑하던 타이거 전차부대도 투입했다.

연합군의 앤더슨 사령관은 12월 22일 튀니지 총공세를 감행했다. 영국의 제6기계화사단이 튀니스 공격을 맡았다. 다른 부대는 제6기계화사단을 좌익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연합군이 튀니스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먼저 튀니스가 내려다보이는 롱스톱 힐이라고 불리는 고지를 점령해야만 했다. 롱스톱 힐은 길이 3㎞, 높이 240m의 작은 언덕이었다. 만약 롱스톱 힐을 점령하면 40㎞ 북쪽의 튀니스까지 뻗어내린 골짜기를 제압할 수 있었다.

영국군 기진맥진 독일군엔 적수 안돼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영국군이 롱스톱 힐의 사면을 기어 올라갔다. 비에 젖은 고지를 기어 오르는 동안 기진해버린 영국군은 위에서 공격해 오는 독일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영국군은 미군 제18보병연대에 의해 간신히 구출됐다. 그날 저녁 영국군은 다시 롱스톱 힐로 진격했다. 이번에는 미군이 공격하다가 독일군에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군이 롱스톱 힐에 다시 도착했을 때 비는 전보다 심해져 억수같이 퍼부었다. 진창이 된 수렁은 살인적인 뻘이 되어 있었다. 병사들이 한 발 움직이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영국군의 도움으로 미군은 간신히 후퇴했다.

다음날인 성탄절 이브에 연합군은 다시 총공격을 감행했다. 고지에 있는 독일군의 박격포와 기관총 공격이 매서웠다. 독일군의 공격과 비로 인해 연합군은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성탄절 아침, 연합군 수뇌부는 어떤 작전도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연합군은 총 534명의 사망자를 낸 채 철수를 결정했다.

수렁에 빠진 오토바이도 못 건질 판

튀니스 공격을 포기한 배경에는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전날 전투지역을 시찰한 그는 험악한 지형과 혹독한 날씨 때문에 병사들이 고전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았다. “도로에서 10m쯤 떨어진 밀밭 안에서 오토바이 1대가 수렁에 박혀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었다. 병사 4명이 그것을 건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사들이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튀니스를 겨울에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아이젠하워는 봄철까지 공세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우세한 장비와 병력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튀니지의 비와 얼어붙은 진창에 손을 들고 말았다. 연합군의 진격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비와 수렁이었던 것이다.

튀니지가 연합군 수중으로 넘어가지 않은 덕분에 엘 알라메인에서 2천 ㎞나 후퇴해 온 로멜 장군이 1943년 1월 튀니지 국경 안으로 들어왔다. 로멜이 천연적 방어선인 마레트 라인에 진을 치고 연합군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튀니지의 날씨 덕분이었다.

남이 원하지 않는 일 도맡아 하는 겸손 갖춰

비로 공세를 멈췄던 연합군은 이듬해인 1943년 3월 봄이 돌아오자 대공세를 펼쳤다. 연합군 사령관은 영국의 알렉산더 중장이었다. 전형적인 군인으로 불리는 그는 다국적 연합군을 뛰어난 리더십으로 지휘해 튀니지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그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첫째, 그는 전쟁영웅의 영예를 얻기 위해 필사적 경쟁을 벌이는 장군이 아니었다. 그는 남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하는 겸손한 장군이었다.

둘째, 영국은 위기의 순간에서 미얀마 철수 작전을 그에게 맡겼다. 그에게는 동원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을 슬기롭게 조정할 줄 아는 리더십이 있었다.

셋째, 자기 병사의 능력을 최상으로 만들어 통솔하는 능력이 있었다. 누구도 칭찬하지 않는 몽고메리 장군조차 그의 탁월한 지휘능력을 평가했을 정도다.

넷째, 합동공격에서 영국군과 미군의 공격을 잘 연결하고 조정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다섯째, 그는 상대편 적군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고 적의 의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

여섯째, 다른 사람들이 쓴 숱한 저서·회고록·글에서 그를 비판하거나 나쁘게 표현한 곳이 단 한 구절도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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