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여성이 배란기를 감춘 진짜 속내는?

[금요 포커스] 남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을 속이도록 진화해

개코원숭이 암컷은 배란기가 되면 빨갛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흔들어대며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수컷들에게 자신의 발정기를 알리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이처럼 별도의 발정기가 있어서 매혹적인 냄새와 색깔로 수컷에게 성적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발정기를 잃어버렸다. 때문에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자신의 배란기를 알 수 없게 됐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가임기를 확인하려면 면밀하게 차트를 작성하거나 검사 기구 또는 웨어러블 장치 같은 보조 기구에 의존해야 한다.

여성이 배란을 은폐하게 된 것은 남성들로부터 그들의 배란기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을 속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생물학에서는 이를 ‘배란 은폐(concealed ovulation)’라고 하는데, 동물과 인간을 구별 짓는 주요 특성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사실 생명체에 있어서 배란기의 표시는 매우 중요하다. 짝짓기가 가능한 시기를 공공연하게 알려야 번식의 효율이 높아지며, 그만큼 생명체의 존재 이유인 유전자의 존속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인간은 배란을 은폐하게끔 진화했을까?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가설 중 하나는 ‘남성 투자 가설’이다. 여성이 배란일을 숨기게 되면 임신의 가능 여부를 남성이 알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동안 다른 남자의 접근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고 여성이 자기 후손을 임신하는 것을 확인해야 하므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여성의 곁에 남아 결국에는 양육까지 도와주게 된다는 것이다.

배란 은폐하면 다른 여성들의 공격성 피해

이 가설은 경험적 테스트를 거의 거치지 않았으며 공식적으로 모델화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여성들의 배란 은폐 현상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여성이 배란을 은폐하게 된 것은 남성들로부터 그들의 배란기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을 속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실 여성들은 남성하고만 교류하지는 않는다. 여성은 여성하고도 서로 교류하며 때로는 협력하거나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과의 아테나 아크티피스(Athena Aktipis) 교수를 비롯한 공동 연구진은 여성들 간의 갈등, 즉 여성 경쟁 가설이 배란 은폐의 진화를 주도했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행위자 기반 계산 모델(agent-based computational model)’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과의 아테나 아크티피스(Athena Aktipis) 교수. ⓒArizona State University

행위자 기반 계산 모델이란 복잡한 거시적 현상에 대해 주체적 대상인 미시적 행위자와의 상호 작용에 대한 이론을 컴퓨터로 설명하기 위한 모델이다. 즉, 여기서 행위자는 배란 은폐 행동을 프로그래밍하고 분석할 수 있는 개인을 나타낸다.

여성 경쟁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개발된 모델에서 행위자로 참여한 남성과 여성은 생식 행동과 매력을 지배하는 등의 특정 규칙에 따라 서로 교류하며 양육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연구 결과 배란을 은폐한 여성들은 더 많은 아이를 가지는 것은 물론 다른 여성들의 공격성을 피했으며, 남성들과 육아 관계를 맺는 데도 성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류 진화, 남성 위주로 가정하는 경향 있어

그 후 연구진은 이 모델로 여성들이 서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나리오를 실행해 ‘남성 투자 가설’을 시험했다. 그 결과 이 시나리오에서는 배란을 은폐함으로써 여성이 얻을 수 있는 뚜렷한 이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

다시 말하자면 여성의 배란 은폐는 남성과의 상호작용 때문에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진화된 것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r)’ 1월 25일 자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그동안 남성의 인식과 행동을 기본으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여성들 간의 사회성이 남성 행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여성의 배란 은폐 현상을 설명하는 또 다른 가설로는 ‘영아 살해 가설’과 ‘남성 협동 가설’ 등이 있다. 영아 살해 가설은 난혼이던 시절에 여성이 배란일을 숨김으로써 아이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아이의 살해를 막았다는 설명이며, 남성 협동 가설은 여성이 발정기를 감춤으로써 남자들끼리의 싸움을 막고 수렵할 때 협동심을 고취했다는 주장이다.

내용에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배란 은폐를 설명한 기존의 가설은 모두 남성 위주의 관점이었다. 어쩌면 인류 진화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이처럼 남성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추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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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허혜경 2021년 1월 30일7:11 오전

    다양한 연구 내용. 재미. 인류의 진화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 남성 위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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