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억지웃음 지으면 행복해질까?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안면 피드백 가설, 재연 실험 실패

지난 2009년 영국 카디프대학 연구팀은 보톡스를 맞은 여성들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및 불안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보톡스를 맞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우울증과 불안감이 적었으며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톡스를 맞을 만큼 부유해서 더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보톡스 때문에 행복해진 것일까. 연구진은 그 정답이 얼굴 표정에 있다고 밝혔다. 즉, 보톡스를 맞은 여성들의 경우 나쁜 일이 있어도 얼굴을 찌푸릴 수 없으므로 자기도 모르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과 똑같은 개념인 셈이다. 대개 사람의 감정은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화가 나면 인상을 쓰고 즐거우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런데 보톡스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지 못하면 행복한 감정을 더 느낀다는 건 감정이 표정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표정이 감정을 유도한다는 말이 된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단단히 뒤바뀌었다.

웃는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게 안면 피드백 가설이다. ⓒ Pixabay Public Domain

웃는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게 안면 피드백 가설이다. ⓒ Pixabay Public Domain

이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안면 피드백 가설(Facial feedback hypothesis)’이 있다. 표정을 바꾸면 감정 상태가 달라진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이 가설을 제일 처음 주창한 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약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월리엄 제임스다. 그는 표정이 개개인의 감정을 좌우하게 되며, 행동하는 대로 느끼게 된다고 주장했다.

표정이 감정을 지배한다

이 가설은 1988년 독일의 심리학자 프리츠 슈트라크와 레너드 마틴, 자비네 스테퍼의 실험에 의해서 증명됐다. 이들은 실험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눈 후 A집단에는 볼펜을 위아래 어금니 사이에 물게 하고, B집단은 볼펜을 코와 윗입술 사이에 문 채 ‘더 파 사이드(The Far Side)’라는 만화를 보게 했다.

즉, A집단은 억지웃음을 짓게 하고 B집단은 불만이 있을 때의 표정을 짓게 한 것. 그런데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얼마나 만화를 재미있게 봤는지 조사한 결과, A집단이 B집단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보았다고 답했던 것이다.

즉, 웃는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를 이끈 슈트라크 박사조차도 애초엔 표정이 기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지 않았으나 실험 결과를 보고 놀라웠다고 고백했다. 이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얼굴 표정을 강제한 실험들이 여러 번 재연되면서 안면 피드백 가설은 점차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1988년 슈트라크 박사팀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실험에서 그 결과가 다르게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 에릭-얀 바겐메이커가 주도한 이 재연 실험에는 17개 연구실에서 1894명의 참가자들이 참여했다.

또한 1988년 실험의 당사자인 슈트라크 박사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각 연구실의 연구진들에게 실험 조건에 대한 조언을 했다. 만화 역시 1988년 실험과 같은 ‘더 파 사이드’가 이용되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실험 참가자 맞은편에 연구진이 앉는 방식이 아니라 대신 비디오카메라로 그들의 반응을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연구진은 이 재연 실험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떤 연구실의 실험 결과도 통계적으로 웃는 표정이 만화를 더 재미있게 한다는 것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억지웃음 지으며 일하면 우울감이 오히려 높아져

재연 실험의 실패가 곧 안면 피드백 가설의 거짓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억지웃음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결과가 2014년 미국 경영학회 저널에 게재된 미시간주립대 브렌트 스캇 교수팀의 논문이다.

연구진은 버스 회사의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억지웃음이나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 등이 감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운전을 하는 동안 더 즐거움을 느꼈으며 퇴사율도 낮았다.

그러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기사들의 경우 우울감이 더 심했으며 퇴사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 또한 일에 대한 생산성과 능률도 떨어졌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억지웃음을 짓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더 지치고 조직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화상담사나 판매원, 승무원 등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감정 노동자들은 거의 모두 회사로부터 항상 억지웃음과 상냥함을 강요당하고 있다. 하지만 스캇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것이 오히려 감정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는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방의 의도적인 이상 행동이나 공격적인 언행에 대해 억지웃음을 보이는 건 오히려 잘못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럴 땐 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색을 지어보이는 게 억지웃음보다 원만한 관계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7646)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