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암, 선택적으로 똑똑하게 고친다

[과학자의 연구실] [인터뷰] 강병헌 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암 세포의 특정 부분만 선택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됐다. 강병헌 UNIST 교수와 유자형 자연과학부 교수, 이창욱 생명과학부 교수, 공동 연구팀이 개발한 ‘항암 스마트 약물(SMTIN-P01)’의 연구결과가 ‘미국 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3월 17일자 온라인 속보로 발표됐다.

그 동안 ‘스마트 약물’ 기술이 연구돼 왔지만, 이번 연구는 항암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상태다.

(오른쪽부터) 강병헌 교수, 이창욱 교수, 유자형 교수, 박혜경 연구원 ⓒ UNIST

(오른쪽부터) 강병헌 교수, 이창욱 교수, 유자형 교수, 박혜경 연구원 ⓒ UNIST

암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 약물을 침투시키다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이 발병할 경우, 이를 치료할 때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암세포가 발병한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약물이 투입되도록 하는 일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약물침투가 과다하게 진행되면서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환자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이 발병할 경우 세포 내의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손상되고 변형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의 대사와 스트레스에 의한 세포의 죽음 기전을 조절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세포소기관으로, 그동안 연구를 통해 암을 비롯한 만성난치질환 환자에게서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및 물질대사’와 ‘세포죽음’ 기전이 변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회복해야 하지만 그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약물을 투입한다고 해도 미토콘드리아 내부로 치료약물을 침투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침투된 약물이 미토콘드리아가 아닌 다른 부분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끼쳐 약물 부작용(off-target effect)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강병헌 교수팀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암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 선택적으로 약물을 침투시키는 ‘스마트 약물’ 기술을 암세포가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TRAP1’ 단백질의 기능 억제제를 개발하는데 적용한 것이다. 그 결과 새로 합성된 ‘항암 스마트 약물’의 항암효과는 높아지고 약물의 부작용은 줄어든 셈이다.

강병헌 교수는 “암세포에서 선택적으로 과발현 돼 있는 TRAP1 단백질을 억제하는 물질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기존연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번 연구는 미토콘드리아로 약물을 선택적으로 보내는 전략을 활용함으로써 세포질, 핵, 기타 다른 소기관에 대한 약물의 비특이적 효과는 최소화할 수가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기존 연구와 달리 투입되는 약물이 문제가 되는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만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TRAP1 단백질은 Hsp90 단백질과 유사하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Hsp90은 대장균에서 사람에 이르는 모든 생물에 존재하는 중요한 열충격단백질이에요. 또한 TRAP1 단백질은 다른 단백질과 결합해 활성과 안정성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 및 물질대사’와 ‘세포죽음’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다기능 단백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TRAP1 단백질이 Hsp90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생각 때문에 특별한 저해물질을 개발하지 않고도 기존 Hsp90 저해물질로도 TRAP1의 억제가 가능하다고 여겨지기도 했죠.

하지만 저희는 이번 논문을 통해 기존약물은 TRAP1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규명했어요. 또한 미토콘드리아로의 약물전달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즉 이러한 부분이 TRAP1 저해물질을 개발하는 어려움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겠죠.”

강병헌 교수는 “많은 화합물에서 관찰되는 미토콘드리아에 대한 ‘낮은 약물침투능’은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을 타깃으로 신약개발을 할 때 공통으로 겪게 되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제기됐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이 규명한 타겟단백질 저해제 모형 ⓒ UNIST

연구진이 규명한 타겟단백질 저해제 모형 ⓒ UNIST

항암신약의 가능성을 열다

이러한 기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에 선택적인 약물전달체를 TRAP1과 강하게 붙는 저해물질과 결합시켰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약물들이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로 들어가서 TRAP1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도록 한 것이다.

강병헌 교수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미토콘드리아 항암약물타깃을 TRAP1으로 특정했을 뿐 아니라 항암약물타깃인 TRAP1 단백질에 대한 구조분석까지 진행했다. 강 교수는 “단백질 구조기반으로 약물을 개발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약물로 사용할 저해물질과 타깃단백질간의 복합체 구조”라며 “TRAP1의 경우 인간 TRAP1 단백질 구조가 밝혀진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저해물질과의 결합구조 역시 알려진 바가 없다. 이번 연구에서는 최초로 인간 TRAP1의 저해물질과의 결합구조를 규명해 저해제 디자인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동안 알지 못했던 TRAP1의 작용기전을 분자수준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만큼 연구팀은 TRAP1 구조기반의 스마트 약물까지 디자인 할 수 있었다. TRAP1과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Hsp90 저해제인 ‘PU-H71’을 선발하고 이를 화학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부위를 발굴한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러한 분석 정보를 기반으로 미토콘드리아로 선택적으로 전달되는 스마트약물 ‘SMTIN-P01’을 합성했다”며 “더불어 ‘SMTIN-P01’이 기존의 ‘PU-H71’과 대비했을 때 월등한 항암활성을 보여주는 결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해당 연구결과는 아직 임상 단계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매우 밝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논문에 제시된 ‘SMTIN-P01’ 개발에 사용된 저해물질과 미토콘드리아 전달체 모두 임상단계까진 진입해 안전성 연구가 이미 진행된 물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임상에 적용했을 경우에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강병헌 교수의 설명이었다. 무엇보다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능의 TRAP1 억제 항암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 만큼, 향후 후속 연구가 항암신약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 받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신약개발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TRAP1에 대해 보다 강한 결합력을 가지는 물질을 발굴해서 스마트약물개념을 적용한 우수한 활성을 갖는 약물을 추가로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실제 신약개발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어요. 또한 아직 TRAP1의 기능에 대한 기초연구가 부족한 상황인데 다른 질병에서 TRAP1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후속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TRAP1 저해제가 다양한 질병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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