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암호를 해독하고 세상을 구한 천재들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15) 앨런 튜링과 데이비드 차움

앨런 튜링(Alan Turing)은 훗날 ‘튜링 기계’로 불리게 되는 수학적 모형을 고안하며 현대 컴퓨터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은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암호화폐의 개념을 제안하고 사업화한 인물이다.

특히 튜링은 군사적인 목적에 맞게 개발한 암호체계로, 차움은 개인정보보호에 우선한 암호기술을 개발하며 각 시대에 적합한 암호체계를 정립한 암호학의 대가들이다.

해독 불가능한 암호를 푼 전쟁 영웅앨런 튜링’

앨런 튜링은 인공지능(AI)이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전에 벌써 AI의 개념을 제안하고 사용 범위를 예측할 정도로 미래를 내다보는 천재였다. 1950년 튜링이 고안한 논리를 토대로 만들어진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대화를 통해 기계인지 인간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AI 연구 분야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앨런 튜링은 뛰어난 암호학 체계를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구한 전쟁 영웅이자 인공지능(AI)를 앞서 생각해낸 천재였다. ⓒ 김은영/ ScienceTimes

튜링은 암호학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의 암호학 실력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모튼 틸덤 감독작, 2015)’이 개봉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절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화 기계 ‘에니그마(Enigma)’를 사용해 독일의 암호는 쉽게 풀 수 없었다. 영국 정부는 전국의 천재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차출해 암호 해독에 열을 올린다. 튜링도 1939년 영국의 암호해독 기관에 합류하게 된다.

‘에니그마’는 무려 18억 개에 달하는 경우의 수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사람이 수기로 암호를 해독하는 방식으로는 풀 수 없었다. 또한 매일 24시간마다 암호가 변동되었기 때문에 하루 안에 암호를 풀지 않으면 안 됐다. 튜링은 고심 끝에 암호가 변화되는 체계를 기계가 자동으로 인지해서 해석해 주는 기계를 만들기로 한다. 튜링은 동료들과의 함께 1944년 독일군의 암호를 풀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 전쟁 중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암호학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러한 뛰어난 재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튜링은 여러모로 비운의 인생을 살았던 불운의 사나이였다. 문제의 발단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동성애가 불법이었기에 튜링은 수감될 처지에 놓인다. 튜링은 수감 대신 여성호르몬을 투여받는 화학적 거세형을 선택한다. 스스로 모멸감에 지쳐간 튜링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나이 겨우 41세였다.

암호화폐의 아버지데이비드 차움’

튜링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나치군의 암호를 파악하기 위해 암호학을 연구했다면 데이비드 차움은 정부가 개인의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수 있는 디지털 암호 거래 방식을 개발했다.

익명 암호학의 대가로 불리는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 위기키미디어

차움은 1981년 ‘추적 불가 전자메일, 주소 그리고 디지털 익명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1990년 전자화폐 기업 디지캐시(DigiCash)를 설립하고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ecash)를 출시했다. 현재 암호화폐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비트코인보다 10여 년 앞선 결과다. 업계에서는 차움을 암호화폐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창시자로 보고 있다.

차움이 개발한 결과물들은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기능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특정한 집단에서 정보가 독점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화폐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라며 “정보의 통제는 사회 전체의 통제로 이어진다”라고 경고했다.

개인정보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차움이지만 익명성을 앞세워 범죄조직에 암호체계가 악용될 것을 경계했다. 차움이 만든 암호화 기술은 개인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익명성 속에서 테러나 범죄의 위협에서도 안전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그는 1992년 실비오 미칼리(Silvio Micali)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가 제안한 ‘공평한 공개키 암호화 시스템’을 실제 기술로 구현했다.

차움이 개발한 암호화폐 플랫폼 ‘엘릭서(Elixxir)’. ⓒ 위키미디어

차움이 개발한 ‘프리바테그리티(PrivaTegrity)’ 기술은 평소에는 보통 메신저 기능을 제공하지만 테러나 범죄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때에는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차움은 “누구나 개인정보 등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하지만 범죄조직이 암호기술을 악용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며 기술 개발 사유를 밝혔다.

양자 컴퓨팅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기존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차움은 이에 대응해 지난해 암호화폐 플랫폼 ‘엘릭서(Elixxir)’와 암호화폐 ‘프렉시스(Praxxis)’, 블록체인 SNS ‘엑스엑스 메신저(xx messenger)’를 공개하며 양자 컴퓨팅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블록체인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암호기술은 디지털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보보호 기반 기술 중 하나다. 과거 암호는 국가 간 비밀 기술이었다. 이제 암호기술은 민간 부문에서 없어서는 안 될 보안 기술로 확장됐다. 앞으로 우리는 정부가 암호기술을 독점했던 튜링의 시대를 넘어 차움이 경고한 것과 같이 양자 컴퓨팅 개발로 인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보안 기술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3226)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