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싫어한다고? 진짜 이유 따로 있다

암세포의 당 분해 부산물 폭주→미토콘드리아 운반 적체

음식물에 들어 있는 글루코스(포도당)는 우리 몸이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데 쓰인다.

암세포도 자기 복제를 하는 데 엄청난 양의 포도당이 필요하다.

종양이 성장하려면 암세포의 복제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합성 작용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포도당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암세포가 흡수한 포도당에서 가능한 한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지 않고 대부분 폐기물로 반출한다고 여겼다.

암세포의 이런 역설적 행동은 물질대사의 생화학적 기본 원칙에 반하는 것이지만, 100년 넘게 많은 과학자를 이를 믿었다. 실제로 이런 믿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암을 진단하고 진행 정도를 판단하는 데 이용됐다.

심지어 암 환자의 포도당 흡수를 제한하면 암세포를 굶겨 죽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과학계 일부의 이 오랜 믿음이 완전한 오류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암세포의 특이한 포도당 대사 패턴은, 암세포가 보내는 당(糖) 부산물을 미토콘드리아가 미처 처리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암세포의 폭주하는 에너지 수요를 미토콘드리아가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발견은 암세포의 포도당 대사에 초점을 맞춘 암 치료 전략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5일(현지 시각) 저널 ‘몰레큘러 셀'(Molecular C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포도당 대사를 통해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뽑으려면 ‘세포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세포는 포도당 분해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을 미토콘드리아로 운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에 드나드는 물질은 엄격히 통제된다.

암세포의 특이한 당(糖) 분해 과정(glycolysis)은 ‘바르부르크 효과'(또는 와버그 효과)로 알려져 있다.

1920년대에 이를 처음 발견한 독일의 생화학자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는 193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암세포의 포도당 대사 경로가 비정상으로 커져 산화적 인산화 경로, 즉 시트르산 회로나 전자전달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대신 암세포는 당 분해 부산물인 피루브산을 젖산으로 발효해 배출한다.

발견자인 바르부르크는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손상이 원인일 거로 추측했다.

그런데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는 멀쩡한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오히려 대부분의 암에서 미토콘드리아의 활발한 활동이 관찰됐다.

하지만 암세포가 흡수한 포도당의 일부만 미토콘드리아 대사에 쓰이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이 산화되는 걸 꺼린다는 관념이 혼란을 키웠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크다.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의 포도당 대사를 싫어하지 않으며, 힘이 미치는 한 미토콘드리아에 의존한다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게리 패티 화학 교수는 “만약 암세포의 포도당 흡수를 제한한다면 대부분의 포도당이 미토콘드리아에서 처리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포도당 분해가 증가하면 (피루브산 등) 부산물을 미토콘드리아로 운반하는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암세포가 포도당을 헛되이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다.

암세포의 당 분해 속도보다 그 부산물이 미토콘드리아로 운반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욕조의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배수되는 양보다 많으면 바닥으로 흘러넘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한다.

그러나 급진적인 물질대사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 건 아니라는 게 연구팀의 입장이다.

패티 교수는 “대부분의 세포가 포도당을 헛되이 배출하기보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산화하는 걸 선호한다”라면서 “암세포도 다른 세포와 똑같은 생화학적 패턴을 따른다는 게 확인됐다”라고 부연했다.

패티 교수팀은 지난 10여 년간 눈부시게 발전한 대사체학(metabolomics)과 질량 분석(mass spectrometry) 기술의 덕을 톡톡히 봤다.

비(非)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안정 동위원소 추적자'(stable isotope tracer)와 대사체학 기술을 묶어 포도당의 세포 내 이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포도당의 여러 부위에 붙인 ‘추적자’를 보고 당 분해 부산물이 미토콘드리아 내로 들어가는 속도를 관찰했다.

암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로 들어가는 포도당 부산물이 적체돼 포화 상태에 빠진다는 건 이렇게 확인됐다.

패티 교수는 “암세포의 포도당 대사를 표적으로 삼는 최선의 방법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라면서 “암세포가 필요 이상의 포도당을 흡수해 헛되이 쓰는 바람에 병이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와버그 효과’로 알려졌던 암세포의 포도당 대사는 생각했던 것만큼 매력적인 치료 표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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