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알파고 이후, 한국기원이 해야 할 일

공정한 룰과 새로운 심판제도 만들어야

이세돌 9단이 9일 충격적으로 패했다. 사람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인 구글 알파고에게. 그것도 돌을 던져 불계패를 기록했으니, 가뜩이나 기계의 발전과 컴퓨터의 위세에 갈수록 초라해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여파를 가져왔다.

지고도 환하게 웃는 ‘이세돌 인간’의 승리

다행히도 바둑이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세돌 9단은 너무나 의연했다.

“이렇게 잘 둘 줄 몰랐다.
초반의 실패가 계속 이어졌다.
프로그램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대국이 끝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호탕하게 웃는 이세돌 9단 ⓒ 연합뉴스

대국이 끝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호탕하게 웃는 이세돌 9단 ⓒ 연합뉴스


그러면서 환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돌멩이로 만든 괴물같은 기계에게 밀렸는지 모르지만, ‘인간 이세돌’은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심어준 미소였으며, 과학자들에 대한 헌사였다.

만약 이세돌 9단이 “컴퓨터에게 졌다”고 생각했다면 너무나 비탄에 빠져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니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패배의 쓴 기분을 전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이세돌은 웃으면서, 컴퓨터가 아닌 컴퓨터를 만든 과학자들에게 존경심을 표시했다.

알파고는 자기를 만들어준 과학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시할 줄도 모르고, 좋아서 웃거나, 아니면 패자를 위로해주는 그런 인간미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그저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의 첫판 결과는 한국기원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줬다. 인간과 컴퓨터 프로그램 사이의 바둑 대국에 대한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프로기사와 과학자들 사이의 대국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국은 불공평했다.

이세돌은 한 명이 싸웠지만, 알파고는 수 십 명 또는 수 백 명의 과학자들과 프로그래머, 세계 최고의 돈 덩어리, 수 천 년 동안 축적된 과학적 지식과 싸웠다고 할 수 있다. 알파고는 전세계에 퍼져있는 엄청난 프로그램을 동원했지만, 이세돌은 자기 혼자의 두뇌만 이용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모습. ⓒ 연합뉴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모습. ⓒ 연합뉴스

이세돌 9단은 혼자 싸웠지만, 알파고는 지금까지 기보를 남긴 수많은 고수들로 부터 간접적으로 엄청난 훈수를 받았다.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불공평하다.

경쟁하는 모든 게임은 누구나 수긍하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는 룰이고 두 번째는 심판이다. 이번 대국에서는 기계와 인간이 겨루는 과정에서 필요한 새로운 차원의 경기규칙은 없었고, 새로운 기능에 대비한 심판이 없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겨루는데 필요한 룰과 심판이 갖춰야 할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공정하고 새로운 룰 제정의 필요성

알파고 개발관계자들은 이번 대회를 위해서 광케이블을 대국장에 추가로 설치했다. 이는 정보처리 속도를 최대한 올려서 짧은 시간안에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서 이세돌 9단이 둔 수에 대응하는 착점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에서 이세돌 9단이 둔 수에 대응하는 수를 발견하기 위해 알파고는 미국에 있는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를 동원했다. 구글이 가진 거의 무제한의 컴퓨팅 능력을 이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정보처리 능력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룰이 정해져야 한다. 전세계의 모든 컴퓨팅 능력을 사용하는 대신, 처리속도와 동원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2. 컴퓨터 심판 제도의 필요성

새로운 룰이 제정되면 당연히 이 룰이 지켜지는지를 체크하고 감시할 심판이 있어야 한다. 이 심판은 분야별로 나눠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규정대로 작동하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바둑게임이 점점 많아질 경우, 컴퓨터 대신 바둑 고수가 훈수를 하거나, 대신 두는 것 같은 부정대국이 발생하지 말하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기원은 국내외 기사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여기에 컴퓨터 및 통신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통합해서 경기 규칙을 새로 만들고, 심판이 해야 할 일을 규정해야 한다. 격투기에서 체급별로 겨루듯이 실력별로 구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대국이 끝난 뒤 열린 회견장에 모인 내외신 기자들. ⓒ 연합뉴스

대국이 끝난 뒤 열린 회견장에 모인 내외신 기자들. ⓒ 연합뉴스

이 같은 제도를 통해서 시대에 맞는 ‘두뇌 놀이판’이 규정될 때 바둑은 더욱 세계를 향해서 새로운 도약을 할 것이며, 인공지능도 제한된 자원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낳는 발전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같은 제도의 확립이야 말로,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대결이 구글의 돈잔치 놀이판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진정한 인공지능 고수들을 찾는 무대로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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