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아파트가 깨끗한 물 보급에 영향 미쳤다?

[아파트 속 과학] (14) 아파트 내 수돗물 공급방식

시작은 인천 서구의 한 빌라에서부터였다. 이제 막 받았으니 응당 깨끗해야 할 수돗물 속에서 실지렁이처럼 생긴 기다란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노후 수도관으로 인해 붉은 수돗물이 나오는 적수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지 불과 1년. 끔찍한 벌레 발견자는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당국에 신고했다. 지난해 여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수돗물 유충 사태의 시작이다.

수돗물에서 발견된 벌레는 파리목에 속하는 깔따구의 유충이었다. 유충 발견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후 사람들이 수돗물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인지 수천 건에 달하는 유사 신고가 잇따랐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세종 등 주요 도시는 물론 멀리 제주까지 전국 곳곳에서 유충이 확인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전문가 합동조사단에 의해 수돗물 유충은 정수처리장으로 날아든 깔따구가 낳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돗물은 살균 소독을 위해 염소를 첨가하는데, 깔따구 유충은 염소에 대한 내성이 강해 생존할 수 있었다. 결국, 깔따구가 날아들지 못하도록 정수처리장 내 차단 설비를 보강하고 깔따구가 알을 낳은 활성탄 여과지 관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깨끗한 물 보급에 이바지한 아파트

새로 이사할 집을 구하러 간다고 하면, 예전 어른들은 물부터 틀어보라고 조언을 해주곤 한다.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지 반드시 확인하라는 것인데, 살림하는데 물이 가장 중요한 기본 바탕이라는 점을 몸소 깨우친 어른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있는 말이다.

인간은 자기 몸무게의 3분의 2 정도가 물로 이뤄져 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하루 2L의 물을 마셔야 하고, 음식을 만들 때도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 먹는 물뿐만 아니라 우리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씻고,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고,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도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평균수명이 연장된 가장 큰 이유는 깨끗한 물의 공급이라고 얘기한다.

우리나라는 깨끗한 물에 있어서 남부러울 게 없는 나라다. 환경부가 지난 1월 11일 발표한 ‘2019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99.3%에 달한다. 가정에 공급된 수돗물은 총 35억 6371만 톤으로, 우리나라 국민은 한 명당 하루에 189L나 되는 깨끗한 수돗물을 가정에서 공급받고 있다. 2019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수도관 총연장은 22만 2259㎞인데, 지구를 5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 추이. 도시지역에서는 사실상 100%이고, 농어촌 지역에서 수돗물 공급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 환경부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상식인 깨끗한 수돗물을 구할 수 없어 지구의 다른 한 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고 생명을 잃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아프리카에 1억 6400만 명, 아시아 1억 3400만 명 등 전 세계에서 3억 명 이상이 오염된 식수를 사용하고 있고, 이로 인해 매년 34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불과 반세기 전인 1960년대만 해도 아시아 최빈국으로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짧은 기간 동안 산업화와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상수도가 신속히 발달한 데에는 아파트라는 주거방식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발달한 아파트가 상수도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도록 해, 상수도 보급률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설명이다(임혜연 외 ‘한국은 어떻게 상수도 공급문제를 해결했는가?’ 참고).

아파트는 주택의 대량 공급을 위해 높은 주택 밀도로 건립되는데, 단독주택과 비교해 주택 수 증가에 따른 호당 상수관로의 길이가 감소하여 상수도 공급의 효율성이 증대된다. 아울러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독주택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큰 구경의 상수도관을 사용하는데, 상수도관 구경이 커지면 설치비용에 비해 공급량은 더 많이 늘어나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예산이 있어도 아파트에서는 단독주택보다 더 많은 세대에 상수도를 공급할 수 있다.

지는 고가수조, 뜨는 가압직결급수

아파트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20~30층 되는 높은 층수여도 수돗물은 거침없이 쏟아진다. 이 많은 물이 도대체 어디에서 만들어져 어떤 과정을 거쳐 도달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의 시초는 댐 등에서 취수한 강물이다. 취수장에서 취수된 강물은 정수 처리장으로 보내 정수 약품을 넣고 잘 섞은 다음(혼화), 약품과 부유물질이 서로 엉겨 덩어리가 되도록 한 후(응집) 가라앉히고(침전), 모래와 자갈층을 통과시키면서 깨끗하게 거른 후(여과), 염소를 투입해 미생물을 없애(소독) 깨끗한 수돗물을 만든다.

일반 정수처리장과 달리 고도정수처리장에서는 여과와 소독 과정 사이에 오존의 산화력과 활성탄의 흡착력을 이용해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고도정수처리 공정을 추가로 진행한다. 수돗물 유충 사태는 바로 이 활성탄을 깔아놓은 여과지에 깔따구가 유충을 낳아 번식했던 것이다.

정수처리장에서 만들어진 수돗물은 상수도관을 통해 배수지를 거쳐 가정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아파트는 높이가 높다 보니 개별 세대로 수돗물을 올려보내기 위해서 특별한 설비가 필요하다.

1990년대까지 아파트는 ‘고가수조방식’으로 수돗물을 공급했다. 아파트 지하에 저수조를 설치하고 옥상에 고가수조를 설치한 후, 펌프로 저수조의 물을 고가수조로 올린다. 고가수조의 물은 자연적인 수압에 의해 아래에 있는 개별 세대로 공급된다. 고가수조에는 수위를 측정하는 수위 센서가 설치돼 있어, 일정 수준 이하로 수위가 떨어지면 펌프를 가동해 물을 채우고 목표 수위에 도달하면 펌프가 자동으로 멈춘다.

고가수조 방식의 최대 장점은 수돗물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거대한 수조에 저장된 물 덕분에 단수가 되어도 이틀 정도는 차질 없이 물 공급 가능하다. 각 세대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수압이 일정하게 유지되며, 급수설비 취급이 용이하고 고장이 적다.

하지만 단점으로 수돗물의 품질 악화가 도드라져 보인다. 수조에 수돗물이 장시간 저장될 경우 잔류 염소량이 줄어드는데, 물탱크가 청결하게 관리되지 못할 경우 수질이 악화될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반기당 한 번씩은 수조를 청소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또 고가수조 설치로 건물 하중이 증가하고 공사비가 늘어난다.

예전 아파트에서는 옥상 물탱크에서 수돗물을 내려보내는 고가수조 방식을 사용했다(왼쪽). 최근에는 옥상 물탱크를 없애고 가압직결급수 방식으로 전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오른쪽). ⓒ 서울시

펌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지하 저수조나 옥상의 고가수조를 거치지 않고 부스터 펌프를 사용해 수돗물을 아파트의 각 층 세대로 바로 급수하는 ‘가압직결급수 방식’이 본격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는 대부분 이 방법으로 수돗물을 공급하는데, 기존 고가수조 방식의 아파트들도 옥상 물탱크를 없애고 가압직결급수로 전환하는 상황이다.

가압직결급수방식에서는 부스터 펌프를 2대 이상 병렬로 연결해 사용한다. 급수 사용량이 적을 때에는 1대의 펌프만 가동되다가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펌프가 순차적으로 가동된다. 반대로 급수량이 감소하면 펌프가 차례대로 멈추는데 마지막으로 정지되는 펌프는 물을 축압시킨 후 멈춘다. 덕분에 세대에서 소량의 물을 사용할 때는 펌프가 다시 가동되지 않고 축압된 물이 제공돼 에너지를 절감한다.

가압직결급수 방식의 장점은 무엇보다 수돗물의 수질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수돗물을 바로 공급하기 때문에 잔류 염소량이 높아 안전성이 확보되고, 수질오염의 우려도 적다. 고가수조처럼 수돗물을 굳이 옥상까지 올릴 필요 없이 해당 세대까지 올리면 되기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줄어들어 경제적이다. 설계비와 공사비, 에너지비, 유지 보수비가 모두 적게 든다.

하지만 단점으로 단수 시에는 담수량이 없어 수돗물 공급이 불가능하다. 또 정전이나 고장을 대비할 수 있도록 비상 전원과 예비시설이 필요하다. 다수의 펌프를 병렬 운전해야 하므로 자동제어가 복잡하고 설비가 차지하는 공간도 커서 지하기계실 면적이 증가한다. 소방법상 별도의 소화수조도 필요하다.

아파트 수돗물 급수 시 고려점들

아파트에 수돗물을 공급할 때 각 세대에 물이 도달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물을 사용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급수압력이다. 급수압력이 필요 수준보다 낮으면 소위 수도꼭지를 열어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아파트 세대 내 설치되는 수도꼭지와 변기 등 물을 사용하는 각 기구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 급수압력이 정해져 있는데, 일반 수도꼭지는 0.3kg/㎠, 샤워기는 0.7kg/㎠, 변기는 0.7kg/㎠의 급수압력이 필요하다.

고가수조방식으로 수돗물을 공급할 경우 최상층 세대는 고가수조와 높이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급수압력이 필요 수준보다 낮을 수 있다. 이때는 가압펌프를 설치해 수돗물의 급수압력을 높여준다. 반면 급수압력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용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소음이 들리는 수격(Water Hammer)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감압밸브를 설치해 급수압력을 낮춘다.

수돗물을 얼마나 공급할지 급수 사용량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전체 사용량은 물론 순간 최대사용량도 고려해야 하는데, 아파트에서는 기구급수부하단위(FU)를 기준으로 필요량을 산정한다. 세면기의 사용량(3.8LPM, Liter Per Minute)을 1FU로 하여, 욕조는 2FU, 주방 싱크는 2FU, 세탁기는 3FU, 양변기는 3FU로 적용해 설치된 개수만큼 합산한다. 단, 한 화장실에 설치된 세면기와 양변기, 욕조가 동시 사용될 가능성은 적으므로 동시 사용률 30%와 급수급탕 동시사용률 3/4을 곱한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세대 당 기구급수부하단위로 3FU에서 4FU 사이의 값을 사용하고 있다.

세대 당 수돗물 급수 사용량을 결정하면 이를 기준으로 급수관을 결정할 수 있다. 급수관은 순간 최대 유량을 기준으로 단위길이당 일정한 압력손실을 고려해 급수관 지름을 결정한다. 관내 유속도는 1.5m/s 이하로 하는데, 물의 흐름이 지나치게 빠르면 급수관 내부가 침식될 수 있어 유속에 제한을 둔다.

과거에는 급수관 재질로 저렴하고 만들기 쉽다는 이유로 아연도 강관을 많이 사용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아연 도금이 벗겨지고 쇠 부분에 물이 닿으면서 부식이 심각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재 아연도 강관은 사용이 전면 금지됐으며, 이보다 비싸지만 내식성이 강한 스테인리스 강관을 선호하는 추세다. 급수관이 낡으면 수돗물의 수질을 심각히 악화할 수 있으므로 수도법은 아파트 내 급수관 상태를 2년마다 검사하고 그 결과를 입주민들에게 게시판이나 유인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는 수돗물 품질 향상을 위해 아파트 내 낡은 급수관의 스테인리스 강관 교체(왼쪽)와 고층아파트의 직결급수방식으로의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오른쪽). ⓒ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아파트에서 세대에 풍부한 물이 쏟아지더라도 결국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먹는 물의 품질이다. 고가수조방식을 사용하는 아파트라면 걱정은 더 커진다. 최근에는 수돗물에 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고가수조에 센서를 장착해 pH, 잔류염소, 탁도, 용존산소, 중금속 등 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아파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차세대 IoT(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 기술을 활용해 수돗물의 수질 상태를 측정하고 실시간으로 전용앱을 통해 입주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첨단 기술도 등장했다.

수돗물의 품질을 자신하는 서울시는 2020년부터 신축 아파트에 ‘마시는 물 전용’ 수도꼭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마시는 물 전용 수도꼭지는 음용전용 배관을 분리해 냉수만 나오도록 만든 수도꼭지다. 법정 수질검사는 냉수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급탕 배관을 통해 데워진 온수가 먹는 물로써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3714)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