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아파트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

[아파트 속 과학] (18) 아파트 공간의 심리학

“하나의 건물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루이스 칸(Louis Isadore Kahn)이 남긴 말이다. 사람의 인생은 그가 사는 공간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칸은 “건축은 방을 만드는 것으로, 방은 건축의 기원이며 마음의 장소이다”는 말도 남겼다.

흔히 건축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물의 높이나 모양 등 외부 형체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실제 관계를 맺고 생활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곳은 건축 공간으로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는 바로 이 내부 알맹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매개체로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피할 수 없는 마음의 적 ‘스트레스’ 

아파트는 한정된 토지에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잘 부합했기 때문에 한국인 최적의 주거유형으로 사랑받고 있다. 오늘날 아파트는 토지이용 효율을 극대화하고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첨단 공법을 적용하면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아파트가 제공하는 공간은 과연 이전 주거공간보다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파트의 공간은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5층 이상의 공동주택으로 정의되는 아파트는 ‘고층’과 ‘고밀’이라는 두 가지 대표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런데 수직으로 뻗는 고층은 기존 주거방식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인공적인 공간이며, 고밀은 서로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갈 때 사람의 마음이 필요적으로 느끼는 것은 스트레스(Stress)다.

스트레스는 ‘팽팽하게 죄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Stringer)에서 유래했는데, 해로운 인자나 자극을 받을 때 나타나는 긴장된 상태와 그에 따른 생리적 반응을 지칭하는 말이다. 원래는 의학용어였는데 요즘에는 일상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이 주거공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스트레스는 다양하다.

아파트 거주자는 층간 소음 등 다양한 이유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 국토교통부 ‘층간 소음 예방 관리 가이드북’

무엇보다 아파트는 위, 아래, 옆으로 여러 세대들이 서로 붙어있다 보니 발생하는 소음이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걷거나 뛸 때 쿵쿵 울리는 발자국 소리부터 한밤중 청소기와 세탁기 등을 돌리는 소리, 화장실의 급배수 소음, 부부싸움 시 발생하는 고함 등이 우리의 마음을 옥죈다.

여러 사람이 살기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도 커다란 스트레스를 느낀다. 세대 내 베란다나 욕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엘리베이터나 계단 내에서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불법주차를 하는 사람 등을 만나면 심장이 쿵쿵 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내 집안이 밖에서 들여다보이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 집안이 들여다보일 때, 이웃이 취미활동이나 운동, 종교를 권유할 때, 내 집안일을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화제로 삼을 때 우리의 마음은 불편하다.

이 외에도 아파트의 건축구조 자체로 인해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고장나 추락하지 않을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여성의 경우 지하주차장 이용 시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낙하물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근심이 늘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아파트 고밀의 영향

아파트의 주요 특징인 고밀로 인한 스트레스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파트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느끼는 스트레스는 공간적인 밀도보다 인간 상호 관계의 접촉 빈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내 영역 안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불쑥불쑥 침투하기 때문에 느끼는 스트레스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의할 때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4가지 인간관계 거리가 자주 활용된다. 그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 공간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설정한다고 주장했는데, 몇 년 전 한 치약회사가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숨결이 닿는 거리 46cm’라는 카피로 TV 광고를 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홀은 사람의 주변 46cm 이내는 가족이나 연인을 위한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로, 46cm에서 1.2m까지는 친한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로 분류했다. 재밌는 점은 모르는 사람이 개인적 거리 안으로 침투하면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반대로 가족이나 연인이 이보다 떨어져도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사람은 상호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이와 같은 인간관계 거리를 활용해 인기를 모은 한 치약회사 광고. ⓒ LG생활건강

1.2m부터 3.6m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이다. 3.6m보다 멀어질 때는 공적 거리(Public Distance)라 하는데, 무대 공연이나 연설을 들을 때 떨어져 있는 거리로 사교성을 전혀 갖지 않는다.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좁은 면적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개인 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장소는 엘리베이터 안. 특히 인적이 뜸한 시간, 단둘만 탈 경우 원치 않더라도 상대방을 의식하게 되며 마음은 상당히 긴장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대인 간 상호작용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혼잡하거나 신체가 지나치게 가까워질 때 상당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마음이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면 대뇌 밑 시상하부에서 호르몬이 분비돼 교감신경계는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계는 억제된다. 전신에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심장은 더 빨리 뛰지만 혈관이 수축돼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불안한 심리 상태가 지속되면서 신체는 그 스트레스에 계속 대처하기 위해 코티솔(Cortisol)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이러한 상태가 누적되면 심신이 피로하게 되고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초고층의 빛과 그림자 

고층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마찬가지이다. 한평생 시골에서 살던 부모님이 모처럼 아파트에 사는 자녀 집에 찾아왔는데, 심장이 쿵쿵 울린다며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 손주들 보면서 며칠 편히 쉬다 가셨으면 하는 바람인데, 마음이 불편하다며 서둘러 짐을 챙겨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지면에 닿은 공간에서 수백만 년을 살던 인류에게 고층은 대단히 낯선 공간으로, 지면과의 격리감은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심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평소 땅을 접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면 심리적으로 흥분하며 추락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심리적 흥분에 의해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리현상이다. 문제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금방 적응해 별다른 흥분이나 긴장을 느끼지 않는데, 노약자 등 허약한 사람은 적응하기 쉽지 않고 스트레스가 마음에 계속 축적된다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1970년대부터 초고층 주거공간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는데, 상당수 연구들이 초고층 주거공간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초고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저층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비율로 불안하고 우울하며 공격성을 보이는 등 정신건강 차원에서 취약하다는 결과들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초고층 주거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2019년 발표된 세종대 김영욱 교수의 논문이 눈에 띈다.

김 교수는 국내 A시의 아파트의 자살률을 전수 조사했는데, 임대 아파트를 기준으로 6층 이상 고층의 자살률이 5층 이하 저층 자살률보다 무려 60%나 높다는 점을 밝혀냈다. 고층 자살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지상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는 사회적 교류 감소, 고립감,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의 약화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저층 주거 단지 사례. 임대 아파트의 경우 고층보다 저층으로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 국토교통부

하지만 일반 아파트의 경우는 고층과 저층 자살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고층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로열층으로 거주자에게 자부심을 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는 것으로 추정했다.(김영욱 외, ‘고층 아파트의 저층과 고층의 자살률 비교 연구’ 참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한정된 토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고밀, 고층의 주거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다만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상당수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이는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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