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아틀란티스도 진화했다

이종호의 과학이 만드는 세상-과학이 찾은 아틀란티스 대륙(1)

오늘날 인류는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지구 내에서는 세계 구석구석에 인간의 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지구 밖으로는 새로운 행성을 정복하기 위해 우주 탐사에 나서고 있다. 콜럼버스가 1492년 신세계를 발견한 이후 유럽의 움직임과 흡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지상에서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변동(지각 격변, 빙하 등)으로 새로운 산맥이 형성되고 육지가 바다 밑으로 침몰하고 바다가 육지가 되는 와중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재난이 시작되면 동굴에 숨거나 높은 산으로 피난하거나 뗏목을 타고 표류함으로써 목숨을 건졌다. 생명을 건진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사람임을 자부하며 새로운 정착지에서 과거의 생활지에서 그들이 갖고 있던 문명을 계속 발전시키거나 변형시켰다.



이 중에서 사람들의 가장 큰 호기심을 끄는 것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347)이 처음으로 언급한 아틀란티스 대륙이다. 플라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해 거론한 이후, 수많은 저자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의 위치를 놓고 다양한 주장을 펼쳤는데 이렇게 발간된 책만 해도 무려 5,000종이 넘었다.



아틀란티스 대륙을 대서양이나 지중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있다는 설명도 있었고 심지어는 독일과 영국이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는 설까지 등장했다. 소련 학자 베렌진은 바크 부근의 카스피 해에 아틀란티스가 있었으며 앤드류 콜린스는 쿠바 지역이 아틀란티스라고 발표했다.



여하튼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틀란티스 대륙이므로 자신들이야말로 아틀란티스인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민족도 스물이 넘는데 필자를 찾아온 한 독자는 한국인들도 아틀란티스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가장 친숙한 아틀란티스의 이미지는 쥴 베르느가 1869년에 발표한 소설 『해저의 2만리』에서 잘 나타난다. 소설의 주인공 피에르 아로낙스는 노틸러스 호의 네모 선장의 안내를 받아 바다 밑을 탐사한다. 네모 선장은 아로낙스에게 두꺼운 해조류의 숲에 뒤덮인 웅장한 건물의 폐허와 줄지어선 돌기둥들을 보여준다. 아로낙스는 선사시대에 존재했던, 발달된 문명의 유적을 보고 흥분하는데 그 유적은 사라진 대륙이 있다는 곳으로 알려진 대서양의 해저에 있었다.



2004년 6월에는 스페인 남부 해안을 촬영한 위성사진 속에서 수천 년 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기록된 전설 속의 섬 아틀란티스로 믿어지는 지상 구조물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독일 부퍼탈 대학의 라이너 쾨네 박사는 “플라톤이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아틀란티스 섬이 사실은 기원전 800년에서 500년 사이에 홍수로 휩쓸려 나간 카디스 부근 늪지대 마리스마 데 이노호스 일대”라며 위성사진에서 두 개의 장방형 구조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진에는 2개의 정사각형 모양의 평평한 대지가 바다 속에 가라앉은 모습이 나오는데 이 정사각형 모양의 대지가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인들의 신전인 은의 신전과 금의 신전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두 유적의 면적은 대략 925제곱미터로 매우 작지만 플라톤이 말한 대로 주변을 동그란 원 모양의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유적은 기원전 800년∼기원전 500년 사이에 건설된 것이므로 적어도 1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라진 아틀란티스 대륙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적인 토픽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아틀란티스 대륙이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라진(잃어버린) 대륙의 문명’이 갖고 있는 특수함 때문이다. 이를 ‘문명을 갖고 있던 사라진 대륙’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지금껏 쌓아 놓은 문명이 갑자기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질병, 기후의 변화, 식량의 결핍 등으로 기존에 유지되던 생활 모두가 생명력을 잃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경우 적어도 문명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살았던 대지는 남아 있고 그들의 흔적도 조금은 남아 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사하라 사막이다. 사하라 사막의 기후가 바뀌어 현재는 불모의 사막지대이지만, 불과 몇 천 년 전만해도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은 바위그림 등이 증명한다.



만일 거대한 섬이나 대륙이 갑자기 바다 속에 잠긴다면 거기에 꽃피었던 문명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것도 단 하루 밤과 낮 사이에 사라진다면···. 이런 극적인 사건이 언젠가 지구 역사상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것이 바로 아틀란티스다.



대륙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 대륙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나아가 속물적인 근성으로 말하여 그들이 갖고 있었을 보물들은 어디에 있을까? 만약에 내가 그 보물들을 발견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이런 공상들을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사라진 대륙의 문명’이란 단어 자체에 인간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5,000권이 발간될 정도로 전 세계인들의 흥미를 끌었던 아틀란티스의 매력은 무엇이며 과학은 아틀란티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12회에 걸쳐 설명한다.



〈플라톤이 적은 아틀란티스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은 기원전 335년경 플라톤이 쓴 『대화편』 중 「티마이오스」와 「크리아티스」라는 철학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플라톤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아테네 사람으로 정치가인 솔론(기원전 615∼535)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었다. 또 솔론도 역시 직접 아틀란티스 문명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성직자인 손치스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이상 국가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아틀란티스 대륙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솔론이 이집트의 사이스를 방문하자 이집트의 손치스 사제가 솔론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9,000(기원전 9570년)년 전에 아주 강력한 고대 국가가 있었다.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이상 국가였다. 아주 예전에, ‘헤라클레스의 기둥’(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지금의 지브롤터 해협 동쪽 끝에 솟아있는 두 개의 바위를 말한다) 뒤편에 큰 섬이 있었다. 이 큰 섬을 아틀란티스 대륙이라고 불렀는데 이 섬을 지배하던 나라는 리비아(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 항해자들이 다른 섬으로 가는 해로가 있으며, 그리고 그 섬들로부터 시작해서 진정 바다라고 부를 수 있는 대양을 육지가 둘러싸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해역은 입구가 좁은 그야말로 하나의 만(灣)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다른 바다 그것은 진정한 대양으로 그 대양을 둘러싼 땅이야말로 대륙이라 이름 붙여 마땅하다.



이 국가는 당신의 나라(그리스)와 우리나라(이집트)의 해협에 이르는 리비아(이집트 서쪽에 위치한 아프리카 부분)와 티레니아(중서부 이탈리아) 지역도 점령하였다. 그러자 당신 국가에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그리스 전체를 총괄하는 동맹군을 만들었다. 그러나 동맹군 간의 이해가 서로 엇갈려 모두들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당신 나라 혼자만 싸워 승리자가 되어 기념비를 세웠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후에 엄청난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단 하루의 밤과 낮 사이에, 당신들의 전사 모두가 땅 속에 묻혔고 아틀란티스 대륙 역시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사라진 섬과 유적들이 수면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배가 항해하기 불가능하다. 그것은 침몰한 섬이 남긴 많은 이토(泥土)가 배의 항해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아티스」에서 플라톤은 아틀란티스와 아테네의 관계를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아주 오랜 옛날에 신이 대지를 갈랐다.



아테나 여신은 그리스에 와서 아테네인들의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포세이돈은 아틀란티스에 와서 국가를 건설하고 섬에 거주하고 있던 클레이토라는 여자에게서 10명의 아들을 낳았다. 아틀란티스는 큰아들 아틀란트(아틀라스)가 통치하였으며 그 섬과 대양도 그 이름을 따라 아틀란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나머지 아들들은 모두 섬의 각지에 분산되어 국가를 통치하였으며 섬의 최고 통치자의 소집이 있을 때는 언제나 부름에 응하여 회의를 하였다.



섬에는 어떤 도시 또는 어떤 땅에서건 생산의 대상인 것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섬 자체에서 자급하고 있었으나 많은 것이 국외에서 반입되었다. 특히 오리칼크가 많았고 코끼리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섬에는 향료가 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이 섬의 수도는 직경이 22킬로미터나 되는 원형으로 되어 있었고 그 중앙에 포세이돈과 클레이토가 살았던 800미터 길이의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다. 그곳은 포세이돈과 클레이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곳으로 항상 따뜻한 물과 찬물이 나오는 목욕탕이 있었다. 또한 포세이돈 개인에게만 봉헌된 신전도 있었는데 신전 전체가 금, 은과 오리칼크로 덮여 있었다. 신전 내부에는 금으로 된 원주들이 있었는데, 이 원주는 6마리의 말이 견인하는 전차를 타고 있는 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틀란티스 섬의 중심부는 폭 360미터의 환상운하(環狀運河)에 둘러싸여 있고 폭 360미터쯤 되는 육환대(陸環帶)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다시 그 둘레는 역시 폭 360미터의 수로가 에워싸고 있었다. 이 수로는 또 한 번 폭 540미터의 육환대에 둘러싸이고 마지막으로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같은 폭의 수로가 이 땅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도크에는 3단노가 설치된 군선이 가득하여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주위에는 물이 채워진 같은 모양의 통이 3개, 흙이 채워진 통이 2개 있었는데 이것은 터널과 우물이 연결되는 통로에 놓여 있었다. 이 통들은 신전, 정원, 체육관, 기숙사, 경마장에도 있었다. 도시를 둘러싼 여러 겹의 성벽이 주민들과 해안에 정박하고 있는 상선과 전함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군대는 전시에 구역별로 징집이 행해졌고, 한 구역의 인구는 6만 명에 달했다. 육군은 중전차 1만 대, 경전차 6만 대, 병사 100만이며 해군은 수병 24만 명의 대군이었다.



각 구역 지휘관은 전쟁에 대비하여 전차 한 대 비용의 6분의 1을 부담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지휘관은 이 밖에도 말 두 마리와 기병 두 명, 좌석이 없는 경전차 한 대, 작은 방패를 들고 전차를 따르는 보병 한 명, 경전차에 타서 말을 몰 전차병 한 명을 조달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중무장병 둘, 사격수 둘, 투석기 조종병 둘, 투석병 셋, 소규모 전투를 수행할 투창병 셋, 그리고 1,200척의 함선에 태울 선원 넷도 조달해야 했다. 이는 왕도(王都) 직속의 병사들이며 다른 아홉 왕국에도 각각 군대가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통치자는 10명이며 포세이돈 신전에 5∼6년마다 모여서 법을 위반한 자들을 재판하였다. 최종 선고를 내리기 전에 신전 안에 있는 소를 금속 도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매듭과 몽둥이만으로 죽여 제물로 바쳤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지금의 아테네인들과 같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정치 이념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욕심이 너무 많아서 제우스신은 이들을 징계하기로 결심하였다.’



여기서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까닭 없이 중단되어 있다.



〈레무리아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가설에 수많은 추측이 가미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원래 ‘사라진 대륙’이란 말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질학의 발전과정에서 학문적인 연구로부터 나온 말이다.



17세기 만해도 사람들은 물활론(物活論)을 믿었다. 땅에서 나오는 돌멩이들이 생물처럼 스스로 자란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광산에서 금을 캐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광산을 폐쇄하고 금이 다시 자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학자들을 가장 골머리 아프게 만드는 것은 도처에서 발견되는 화석이었다. 산 정상에서 조개나 물고기 화석이 나오기도 하며 인간이 살지 않는 사막에서도 화석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화석은 생물의 유해가 돌처럼 굳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알고 있었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를 부정했다. 사람들은 화석이 동식물의 유해가 아니라, 우연히 생물체의 모양을 닮은 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뭉친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표현에 걸맞게 화석도 ‘성경의 말씀’에 적합한 설명으로 풀이되어야 했다. 즉 산에서 발견된 조개의 화석은 노아의 홍수 때 산까지 떠밀려간 조개들이 죽어서 남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이미 멸종되고 없는 기이한 동물들의 화석은 ‘하느님이 흙으로 빚어서 창조하려다가 실수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잊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악마가 사람들을 혼란시키기 위해 화석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1859년에 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학자들에게 여러 가지 연구 과제를 주었다. 그의 학설대로 서로 비슷한 종(種)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면 그 증거가 어디엔가 남아 있어야 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확신을 갖고 있던 독일의 동물학자 에른스트 H. 헤켈은 지구가 격심한 변혁기를 거쳐 현재와 같이 되었는데, 그 여파로 생물의 진화와 적응에 큰 변화가 있었으며 지구는 계속 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의 여러 곳에서 어느 때는 천천히, 또 어느 때는 격심하게 지표의 침강과 상승이 일어났으며 대륙이나 섬들이 함몰되고 새로운 산맥이 출현했다. 섬들이 산맥이 되고 반도가 섬이 되었으며 섬이 대륙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헤켈은 영장류의 분포 상태를 조사한 결과, 각 대륙의 일부 생물들이 유사한 것을 보고 생물들이 자연적인 방법으로 인도양을 건널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헤켈은 ‘어떻게 생물들이 인도양이라는 대양을 건널 수 없는데도 현실적으로 여러 대륙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가장 명쾌한 대답은 이들 지역이 과거에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헤켈은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입증해 줄 만한, 즉 그 연관성을 증명할 만한 화석이 아무 데서나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사라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가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헤켈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줄 원인(猿人) 화석이 두 대륙에서 틀림없이 발견될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그 원인을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고 사전에 명명하기까지 했다.



헤켈이 추론한 사라진 미스터리의 대륙을 영국의 박물학자 필립 L. 스크레이터는 ‘레무리아 대륙’이라고 명명했다. 레무리아 대륙은 약 2억 년 전에 현재의 아프리카·남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남극 대륙을 한데 묶는 거대한 곤드와나 대륙이 있었다는 지역과 거의 일치하므로 일반적으로 레무리아 대륙으로 설명된다.



스크레이터가 사라진 대륙을 레무리아 대륙으로 명명한 이유는 여우원숭이 즉 마다가스카르 섬에 살고 있는 레무르의 진화과정을 조사한 결과 헤켈이 주장했던 대륙에 레무르가 살았다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스크레이터는 레무르가 마다가스카르 섬에 인접한 아프리카(근래에 아프리카에도 레무르류의 원숭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음)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고 인도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수마트라에는 서식하고 있는 점을 발견, 마다가스카르에서 수마트라에 이르는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큰 대륙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마다가스카르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이그너도 아프리카에는 없지만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 안틸 제도, 피지 제도 및 남아메리카에서는 발견된다. 이 외에도 프테로프스는 마다가스카르와 인도에는 살고 있지만 아프리카에는 살고 있지 않다.



동식물의 분포를 보면 마다가스카르 섬의 동식물은 인도의 동식물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인도에서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동식물이 유입되었든, 그 반대가 되었든 바다를 건너야 하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마다가스카르 섬의 동식물은 오스트레일리아, 나아가서는 남미의 그것과도 매우 유사하다. 스크레이터는 이에 대해 명쾌한 가설을 제시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흔적도 없이 물밑으로 사라져버린 ‘육교’가 있어야만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크레이터의 주장은 고생물학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의 주장은 헤켈 등이 주장한 고생물의 진화분포를 비교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무리아 대륙이 현재의 마다가스카르 섬, 모리셔츠 제도, 세이셜 제도, 코모로 제도를 포함한다는 가설은 프랑스의 에밀 프랑샬, 독일의 오스칼 페셜, 다윈과 진화론의 공동 발견자인 알프레드 윌리스 등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구소련의 지질학자인 리세톱은 인도양 해저 조사를 통하여 대륙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만한 지질상의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1972년 마다가스카르 섬의 남쪽 약 700마일에 걸친 해령을 조사한 학술조사선 ‘그로머찰렌지’호는 최근 2000만 년 사이에 이 지역이 1600미터 이상이 가라앉았다고 발표했다. 또한 세이셜 제도와 샤드마리아의 얕은 해양에서는 해저가 그 전 높이에서 2000미터나 침하한 것도 발견했다.



더욱이 마다가스카르 섬 북서부의 해저에서 10∼11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아랍인들이 건축한 건축물의 폐허가 발견되었다. 이는 불과 수 세기 전에도 육지의 침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인도의 전설은 해저에 가라앉은 몇몇 도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텍스트인 ‘마하바라타’, ‘마스쳐 프러너’ 등에는 신들의 적, 악마인 아르스가 살고 있던 도시인 트리플이 ‘바다 속에 가라앉았으며 신들의 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고 적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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