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의 한계를 시험하지 마라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51)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가 조만간 도입 예정인 24시간 운용 가능한 닥터헬리콥터의 콜 사인(호출 부호)을 ‘아틀라스(Atlas)’로 새겼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아틀라스는 2019년 설 연휴에 순직한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기리는 호출 부호로 이 교수는 하늘을 떠받친 아틀라스처럼 고 윤 센터장이 응급의료를 떠받쳤다고 평가하며, 늘 그와 함께 응급 의료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틀라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티탄(Titan) 그룹에 속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ea)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의 자녀로 태어난 티탄은 하나같이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티탄이나 아틀라스는 강력한 힘을 상징할 수 있다. 초콜릿 과자, 배터리, 로켓에 붙은 아틀라스는 바로 힘을 의미한다.

하지만 티탄은 조카뻘인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푸스 신들과 권력투쟁에서 밀려나고 만다(티탄전쟁). 권좌에서 밀려난 티탄들은 땅속 깊은 곳에 갇혔다. 하지만 제우스는 티탄 봉기의 우두머리였던 아틀라스에게는 특별히 ‘무거운’ 벌을 내린다. 바로 비할 바 없이 무거운 하늘을 짊어지고 있도록 한 일이었다.

티탄이든 올림푸스 신들이던 신으로 태어난 존재들은 죽지 않으므로 아틀라스의 벌은 영원한 벌이었다. 죽을 수도 없는 아틀라스는 세상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단 한 발자국도 꼼짝하지도 못하고 하늘을 짊어져야 했다.

그리스인들은 아틀라스가 지중해 서쪽 끝,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중심의 세계에서는 그곳은 세상의 끝자락이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지브롤터 서쪽에는 큰 바다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 바다에 아틀라스의 딸들도 살고 있다고 믿었다. 딸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틀란티데스(Atlantides, 복수형)로 불렀다. 딸 하나하나를 가리킬 때는 아틀란티스(Atlantis, 단수형)로 불렀다.

아틀라스의 딸인 아틀란티스를 유명하게 만든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다.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플라톤은 지브롤터 서쪽 바다에는 아주 큰 대륙이 있었고, 뛰어난 문명을 누리던 사람들이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그 대륙의 이름은 ‘아틀란티스’라고 플라톤은 밝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아틀란티스 대륙이 있었던 곳은 지금도 ‘아틀란틱 오션(the Atlantic Ocean)’으로 불린다. 이렇게 아틀라스는 서양의 큰 바다에 이름을 남긴다.

아틀라스와 헤스페리데스(아틀란티데스). 싱거 사전트 그림.  ⓒ 위키백과

아틀라스와 헤스페리데스(아틀란티데스). 싱거 사전트 그림. ⓒ 위키백과

그리고 하나 더, 아틀란티데스는 서쪽을 뜻하는 헤스페리데스(Hesperides)로도 불린다. 그녀들이 살던 곳이 세상의 서쪽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틀란티데스 자체가 서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우리는 아틀란틱 오션을 서쪽 큰 바다라는 뜻인 대서양(大西洋)으로 부르는데 여기서 서쪽이라는 기준은 유럽이다.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의 이야기는 후세에게 큰 영향을 남긴다. SF나 영화에 종종 등장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 아틀라스의 이야기도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아틀라스가 하늘을 지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조각으로 남겼는데 넓은 하늘은 둥근 천구(天球, celestial sphere)로 처리했다.

신화나 조각 속에만 갇혀 있던 아틀라스가 대중들에게도 친숙해진 것은 지도책 덕분이다.

‘메르카토르 도법(圖法)’으로 유명한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는 16세기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지도 제작자이다. 그가 죽은 후 아들들이 아버지의 미발표 지도 등을 모아 세계지도 책을 펴냈는데, 책 이름이 ‘아틀라스: 아틀라스, 혹은 세상의 구조와 그 구조의 형태에 대한 우주적 해석(Atlas: Atlas Sive Cosmographicae Meditationes de Fabrica Mundi et Fabricati Figura, 1569)’로 다분히 철학적이다.

메르카토르-혼디우스의 아틀라스 표지(1637년).  ⓒ 위키백과

메르카토르-혼디우스의 아틀라스 표지(1637년). ⓒ 위키백과

물론 사람들은 지도 대가의 유고집을 환영했겠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 불편했기에 그냥 ‘아틀라스’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로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지도책의 표지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천구를 지고 있는 티탄신 아틀라스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덕분에 아틀라스는 아예 지도책의 대명사가 되었다. 더 나아가 지도는 물론이고 도해, 도식, 그림이 많이 들어가 내용을 한눈에 쉽게 볼 수 있게 만든 책들도 죄다 아틀라스로 불렸다. 우리는 도감(圖鑑)으로 번역한다.

아틀라스. 제주 그리스신화 박물관에서 촬영.

제주 그리스신화 박물관에 전시된 아틀라스.
ⓒ 박지욱

그런데 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는 하늘을 당당하게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개도 꺾인 채 너무나도 힘든 표정을 하고 있다.  저러다 하늘이 무너져내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깨에 간신히 짊어진 하늘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 쪽 무릎도 꺾였다. 오죽하면 자신을 찾아온 헤라클레스에게 하늘을 떠넘기고 달아날 생각을 했을까?

이처럼 아틀라스는 엄청나게 힘든 일을 혼자 감당하며 영원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존재를 뜻한다. 그리스어로 아틀라스(Ἄτλας)도 아예 ‘참고 견딘다’는 뜻이라고 한다.

닥터 헬리콥터 ‘아틀라스’를 타고 불철주야 하늘을 날아다닐 이국종 교수도 아틀라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응급 의료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625전쟁에서 구급 헬리콥터로 사용했던 미 육국 H-13 ⓒ 박지욱 사진.

625전쟁에서 구급 헬리콥터로 사용했던 미 육국 H-13 ⓒ 박지욱 사진.

한편 6.25전쟁에서 구급 헬리콥터로 사용했던 미 육군 H-13 (Bell 47)는 초기 형태의 닥터 헬리콥터다. 기체 외부에 침대를 설치해 부상병을 실었다. 전쟁 중에는 ‘날아다니는 앰뷸런스’, ‘하늘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며 병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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