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로봇들이 나를 대신한다

로봇이 바꾸는 세상(7) 텔레프레즌스 로봇

지난해 6월 미국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 행사에 놀라운 인물이 등장했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과 프리즘(PRISM)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해 러시아에서 임시망명 중인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내부고발자로 체포에 대한 불안감과 신변 위험 때문에 미국을 떠난지 오래된 스노든이 어떻게 대중 앞에 섰다는 얘기일까. ‘스노봇’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 로봇을 통해서다.

비록 몸은 러시아의 어느 건물에 있었지만 화면을 통해 청중들에게 인사하고 눈을 맞추고 강연장을 돌아다니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그는 2014년에도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통해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TED 2014 행사에 강연자로 나선 적이 있다.

사건 이후 은신하며 주로 언론을 통해 대중을 만났던 스노든이 텔레프레즌스 로봇 덕분에 원하는 곳에 나타나 직접 대중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노든의 행동을 지지하든, 비난하든 망명자인 그의 활동에 로봇이 날개를 달아준 것은 분명하다. 스노든은 “나라를 떠나있지만 미국에 있을 때 갖지 못했던 영향력을 지금은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TED 강연에 러시아에서 망명 중인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통해 깜등장했다. ⓒ 로봇신문

지난 2014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TED 강연에 러시아에서 망명 중인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통해 깜짝 등장했다. ⓒ 로봇신문

스노든이 정치적인 이유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건강상의 이유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뉴욕 델라웨어 카운티에 사는 중학생 옥스티는 2014년 여름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뇌동맥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장기 입원이 불가피해진 옥스티가 학교를 장기 결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담임교사 재닌 로즈너는 옥스티가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냈다. 브이고(VGo)라는 텔레프레즌스 로봇를 통해 수업에 참여토록 한 것이다.

옥스티는 브이고 사용법을 간단하게 익힌 후 몸은 병원에 있지만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선생님께 질문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었다. 그의 부모는 “내 아들을 위해 이런 로봇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며 “브이고가 있어서 결석을 하지 않게 돼 천만다행”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뇌동맥류 수술과 치료때문에 학교 출석이 어려워진 옥스티 군은 브이고 로봇을 통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 데일리스타

뇌동맥류 수술과 치료때문에 학교 출석이 어려워진 옥스티 군은 브이고 로봇을 통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 데일리스타

스노든과 옥스티의 사례는 여러가지 이유로 ‘있어야 할 곳’, ‘있고 싶은 곳’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내 아바타 역할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나, 바로 텔레프레즌스 로봇이다.

최근 텔레프레즌스 로봇에 대한 개발과 적용 사례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화상 회의, 영상 회의가 시공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의 모습을 원격으로나마 보여준다면 텔레프레즌스 로봇은 현실 공간에서 마주보고, 툭툭 치고, 눈을 맞추는 등 보다 실체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텔레프레즌스 로봇의 형태나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모니터 화면에는 이용자의 얼굴이 나타나고 스피커와 마이크가 있어 대화를 하고 들을 수 있다. 바퀴가 달려있어 주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마치 고개를 돌리듯 모니터를 돌려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어떤 장면을 응시할 수 있다.

스탠딩 파티의 소모임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지역 커뮤니티 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은 딱딱한 모니터 얼굴에 어설픈 몸체를 갖고 있어 참여의 기능만이 강조되고 있지만 보다 정교한 디자인이 갖춰진다면 또 다른 내가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곳에 자신의 아바타격인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대신 보내 대화를 나누고 사교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 ⓒ 러셀 홀리

갈 수 없는 곳에 자신의 아바타격인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대신 보내 대화를 나누고 사교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 ⓒ 러셀 홀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UCI) 소속의 연구팀은 질환 등으로 집에만 있는 아이들을 위한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UCI의 교육학 박사 베로니카 뉴하트는 “유치원에서 12학년에 이르는 학생 가운데 질병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이는 학문적, 사회적, 의학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학업의 실패, 친구들로부터의 고립감, 우울증으로 인해 회복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뉴하트 박사가 개발 중인 로봇은 인터넷을 통해 양방향 비디오 스트리밍이 자동 지원되며 바퀴가 달려있어 어디든 갈 수 있다. 학생들이 집에서 랩톱으로 로봇을 제어하면서 학교 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암, 심장병, 면역결핍 등으로 집에만 있는 어린이 5명을 비롯해 아이의 부모 5명, 교사 10명, 학급 친구 35명, 지역 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실험연구를 한 결과, 실험 대상 모두가 마치 아이가 학교에 직접 간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꼈고 만족도와 효과가 매우 높았다고 밝히고 있다.

뉴하트 박사는 “학생의 건강과 복지를 고려한 학교 참여를 위해 로봇의 활용에 대한 보다 더 심화된 연구가 필요하다”며 “특히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 분야만으로는 부족하며 교육팀과 기술팀, 의료팀간 협업이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스위스연방공대가 개발한 뇌파로 작동하는 텔레프레즌스 로봇 ⓒ 유렉알럿

스위스연방공대가 개발한 뇌파로 작동하는 텔레프레즌스 로봇 ⓒ 유렉알럿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뇌파로 움직이는 텔레프레즌스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호주 브리스번타임즈는 뇌파로 제어하는 텔레프레즌스 로봇 ‘텔레포트’를 개발한 27세 마리타 쳉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멜버른대학교에서 메카트로닉스 및 컴퓨터과학을 공부한 쳉은 상부운동이 제한된 사람들을 위한 로봇팔 등을 설계하면서 텔레포트를 구상했다.

‘마인드웨이브’라는 두뇌 제어 인터페이스(BCI)를 이용해 이용자가 왼쪽, 오른쪽 앞뒤로 이동할 수 있으며 스크린 태블릿, 카메라 및 안드로이드폰 컨트롤이 있어 쳐다보며 대화가 가능하다. 텔레포트는 지난해 11월부터 캔틴 등을 비롯해 여러 단체와 조직에 제공돼 암투병 등으로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다. 텔레포트의 가격은 약 3800달러이다.

스위스연방공대(EPFL) 연구진도 생각으로 원격 제어할수 있는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개발했다. 호세 델 R.밀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전극이 여러 개 박힌 모자를 쓰고 뇌의 신호를 분석해 원격지에 있는 로봇을 제어할 수 있다.

아직 상용화 전이지만 완제품으로 출시될 경우 움직임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유용한 로봇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밀란 교수는 “9명의 장애인들이 10일 미만의 훈련만으로 로봇을 제어할수 있게 됐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교 활동, 고객 응대, 건강 도우미로도 활약

텔레프레즌스 로봇이 최근에는 주로 환자들을 위해 연구되고 있지만 쓰임새는 다양하다. 공항이나 마트 등에서도 안내원 역할을 하며 손님들을 이끌기도 한다.

2015년에는 미시간주립대학 교육심리 및 교육공학 박사과정을 대상으로 멀티 텔레프레즌스 로봇 실험이 진행됐다. 한 명이 아니라 실험에 참여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액정화면이 움직이는 탁상형 로봇 큐비(Kubi)를 대리 참석시키고 봄학기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들이 고개를 돌리는 방향으로 로봇의 시야가 움직였으며 수강생끼리 화면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실험에 참여한 학생 사라 그레터는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과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소속감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크리스틴 그린하우 교수는 “‘로봇을 사용하면 기존의 전통적인 웹이 갖지 못하는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며 “텔레프레즌스 로봇으로 교육과 학습의 기회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으로 분석했다.

EU는 로봇의 거리, 높이, 시선 등 동작에 관한 부분은 동화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보다 주안점을 둔 테레사를 개발하고 있다.  ⓒ 로보허브

EU는 로봇의 거리, 높이, 시선 등 동작에 관한 부분은 동화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보다 주안점을 둔 테레사를 개발하고 있다. ⓒ 로보허브

유럽연합(EU)은 기본 동작 기능은 자동화하고 소셜 참여기능에 집중하도록 고안된 반자동 텔레프레즌스 로봇 ‘테레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U가 자금을 지원하고 유럽 4개국, 6개 기관이 수행하는 3년짜리 테레사 프로젝트는 로봇의 ‘동작 기능’보다는 ‘사회적 지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사실 텔레프레즌스 로봇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함께 있는 사람에게 너무 바싹 붙어있거나 멀리 있지 않고, 적정한 시선을 유지하는 등 사회적인 매너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패턴은 제어를 하는 원격 참여자에게는 몹시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로봇의 위치, 거리, 시선 등을 신경쓰다가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거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테레사는 지능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그룹을 알아서 탐색하고 주변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비디오 화면의 높이, 방향 및 기울기를 스스로 설정해준다. 프랑스의 노인센터에서 수십 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테레사를 테스트 한 결과 원격 상호작용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뉴질랜드의 한 회계법인은 직원을 대신해 회의와 교육에 참석하는 로봇을 고용해 화제다. 와이즈어드바이스는 약 3300달러의 비용을 투입해 텔레프레즌스 로봇 조지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했다.

원격으로 조종하면서 화면에 자신을 드러내고 교육이나 세미나, 워크숍 등을 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내용물을 보여주는 용도로도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 브래드 골친 대표는 “이 로봇을 회계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는 용도로도 사용하고 있으며 자선활동 등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트머스 대학 풋볼팀이 선수들 안전 및 건강관리요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텔레프레즌스 로봇. ⓒ로봇신문

다트머스 대학 풋볼팀이 선수들 안전 및 건강관리요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텔레프레즌스 로봇. ⓒ로봇신문

미국 다트머스 대학은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이 대학 풋볼팀의 건강 관리자로 활용하고 있다. 과격한 태클과 충돌, 터치라인으로 질주하는 아메리칸 풋볼의 매력은 흥미진진함 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미국 신경외과학회에 따르면 대학 풋볼 선수 3분의 1이상이 적어도 한 번은 뇌진탕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트머스대학은 텔레프레즌스 로봇인 브이고를 구장에 투입시켜 수마일 떨어져있는 병원의 뇌전문의에게 선수들 경기상황이나 연습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한다. 의사는 이 정보를 기초로 자격증을 가진 트레이너에게 선수들의 건강상태를 알려주고 훈련과 경기에 참고하도록 한다. 브이고는 앞서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옥스티를 학교 수업에 참여하게 만들어준 바로 그 로봇이지만 다트머스대학에서는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로봇 전문매체 로보허브는 텔레프레즌스가 텔레이그지스턴스(Tele-existence)로 진화하고 있다며 일본 오사카대학 등이 개발한 텔레노이드, 겐타로 요시후지가 개발한 오리히메, 사람의 어깨에 탑재돼 어깨로봇으로 불리는 MH-2, MIT미디어랩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을 얼굴로 사용하는 미봇 등을 대표주자로 꼽기도 했다.

텔레프레즌스 로봇의 가격은 대당 2000~4000달러 선으로 책정되고 있지만 앞으로 상용화가 더 진전되면 훨씬 더 다양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로봇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보허브가 선정한 4대 텔레프레즌스 로봇에 포함된 오리히메.  ⓒ 로보허브

로보허브가 선정한 4대 텔레프레즌스 로봇에 포함된 오리히메. ⓒ 로보허브

머리털을 뽑아 분신을 만들어내는 손오공처럼 이제 인간에게도 아바타가 생길 날이 멀지 않았다. 아바타가 꼭 하나일 이유도 없다. 몸은 출장지에 있지만 회사에 한 대, 집에 한 대 등 여러 대를 두고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 하나의 텔레프레즌스 로봇을 여러 명이 공유할 수도 있다.

텔레프레즌스 로봇끼리 파티를 벌이거나, 서로 언쟁하는 장면도 상상해볼 수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이들 아바타 로봇들이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에 등장해 상반된 구호를 외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이를 더 나은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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