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실험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2019.12.17 07:09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1882~1977)가 지휘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환상적인 결합을 창조해낸 장편 음악 애니메이션 ‘판타지아(Fantasia, 1940)’는 디즈니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예술적인 명작으로 손꼽힌다.

예술에 대한 나치즘의 검열과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의 화가이자 애니메이터인 오스카 피싱거(Oskar Fischinger, 1900~1967)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Toccata and Fugue in D Minor)’를 배경 음악으로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디자인하고, 제작에 핵심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판타지아' 도입부

‘판타지아’ 도입부 Ⓒ public domain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1920년대 유럽의 예술가들은 전쟁의 광기와 파괴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가치와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고, 무의식을 해방시키고자 하면서 기존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전복(顚覆)을 시도했다.

이러한 새로운 예술운동인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 전위적인 예술로 이어졌는데, 이를 아방가르드 영화 혹은 실험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른다. 실험 애니메이션에서 필름은 기록 매체가 아닌 드로잉의 화폭이 되었고, 사운드는 무브먼트가 되었다.

실험 애니메이션과 ‘시각 음악(Visual Music)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스카 피싱거는 일찍이 기술과 수공업을 몸에 익혔고, 20대 초반부터 ‘잡다한 실험(Miscllaneous Experiment)’ 등과 같은 추상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전위적인 예술가로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프리츠 랑(Fritz Lang, 1890~1976) 감독의 SF 영화 ‘Woman in the Moon(1929)’의 특수 효과를 담당하였다.

'Studies' 연작

‘Studies’ 연작  Ⓒ Oskar Fischinger

특히 단순한 이미지와 사운드 운율과의 조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추상적인 이미지로 음악을 표현한 ‘연구(Studies, 1929~1933)’ 연작을 포함한 1930~40년대 오스카 피싱거의 작품들은 오늘날 MTV 뮤직 비디오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오스카 피싱거의 ‘시각적 음악’, ‘운동하는 추상’, ‘절대적인 애니메이션(Absolute animation)’ 등은 애니메이션이 현실의 단순한 ‘재현(再現)’이 아닌, 그로부터 분리된 순수한 이미지의 운동을 추구했던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Muratti gets in the act

Muratti gets in the act Ⓒ Oskar Fischinger

또한 오스카 피싱거는 실루엣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왜곡되고 변형되어 보이는 세계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한 ‘독일적 폭력에 대한 혐오와 명상’,  ‘정신구조(Spiritual Construction, 1927)’, 그리고 ‘판타지아’에서 ‘마법사의 조수’에 등장하는 빗자루들의 행진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파시즘에 대한 은유적 풍자로 보이는 ‘뮤라티 행동 개시(Muratti gets in the act, 1934)’ 등을 제작했다.

Motion Painting No.1

Motion Painting No.1  Ⓒ Oskar Fischinger

그리고 원래 파라마운트의 장편영화 삽입용으로 기획되었다가, 오스카 피싱거 독립 작품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도형과 색상으로 교향곡의 구조를 시각화한 컬러 애니메이션 ‘알레그레토(Allegretto, 1936)’,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randenburg Concertos)과 함께 추상 회화가 그려지는 과정을 다양한 색상과 이미지의 운동으로 표현하여, 브뤼셀 국제실험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모션 페인팅 No.1(Motion Painting No.1, 1947)’ 등은 50점이 넘는 그의 수많은 실험 단편 애니메이션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다.

9개월 동안의 추상 회화 제작 과정을 애니메이션에 담은 ‘모션 페인팅 No.1’은 NFR(미국국립영화등록부, United States National Film Registry by the Library of Congress)에 ‘문화적, 역사적, 미적으로 중요한 영화’로 등록되었다.

애니메이션의 기술과 미학을 오르피즘(Orphism), 신조형주의(Neo-Plasticism), 절대주의(Suprematism) 등과 결합시켜, 그 영역을 새롭게 확장한 오스카 피싱거의 활동을 담은 서적으로 ‘Oskar Fischinger: Experiments in Cinematic Abstraction’이 출간됐고, 그의 실험 애니메이션들을 담은 46분 분량의 DVD ‘Oskar Fischinger: Visual Music’은 2017년 재발매 되었으며, VIMEO에서 트레일러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관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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