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실험실 물병에서 나온 푸른빛의 정체

[노벨상 오디세이] 노벨상 오디세이 (126)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 중 일부는 눈앞에서 번쩍이는 빛을 본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연구진은 특수 카메라 이미징 시스템을 사용해 그 빛의 정체를 조사했다.

그 결과 그 빛은 방사선 빔이 눈의 체액이나 젤을 통과할 때 생성되는 체렌코프 방사선(체렌코프광)임이 밝혀졌다. 최근 ‘국제방사선종양학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는 미래의 방사선 치료기술을 개선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체렌코프 방사선은 이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러시아의 물리학자 파벨 알렉세예비치 체렌코프의 이름에서 명명됐다. 1904년 7월 28일 러시아의 보로네시 지역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체렌코프는 1928년에 보로네시주립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체렌코프 효과를 발견해 195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파벨 체렌코프. ⓒ public domain

이후 모스크바에 있는 레베테프물리학연구소의 선임과학자로 임명된 그는 1934년 어느 날 바빌로프 교수 밑에서 연구를 하던 중 방사선을 조사한 실험병의 물에서 청색 빛이 방출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사실 방사선이 액체를 통과할 때 희미하게 방출되는 푸른빛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서 관찰되었다. 그들은 그것이 잘 알려진 형광 현상이 푸른빛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체렌코프는 그 빛이 형광 현상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바빌로프 교수의 허락 하에 체렌코프는 실험을 계속한 결과 그것이 빛보다 빠른 속도의 하전입자로부터 복사되는 빛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체렌코프 효과’의 발견이었다.

빛보다 빠른 하전입자가 내는 푸른빛

사실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 그러나 진공이 아니라 빛이 액체나 투명한 고체 같은 매질을 통과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물과 같은 매질에서 빛의 속도는 진공상태보다 약 75% 떨어진다.

따라서 그런 매질에서는 에너지가 큰 다른 입자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때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이던 입자는 푸른빛을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고 광속 이하의 속도로 돌아가게 된다.

쉽게 말해서 체렌코프 효과는 이 현상을 일으키는 입자의 에너지가 높다는 걸 말한다. 원자로나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처럼 방사능이 높은 물속을 보면 푸른빛의 체렌코프 방사선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방사능 물질에서 나오는 고속 전자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하며 물 분자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용후 핵연료에서 나오는 체렌코프광은 핵연료를 태우는 시간과 저장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즉, 핵연료를 덜 태우거나 자주 교체하면 빛이 약하고, 오래 태우거나 늦게 교체하면 빛이 세다.

때문에 체렌코프광을 측정하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했는지와 핵연료를 어느 정도 태웠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사용후 핵연료 드럼을 가짜로 바꾸었는지도 확인된다.

체렌코프 효과는 음전하를 띠는 수소핵인 반양성자 등 새로운 소립자의 발견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효과에 기초하여 단일입자들의 거동을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체렌코프 검출기는 고속 입자의 존재 및 속도를 관찰하기 위한 원자 연구의 표준 장비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성미자의 검출이다. 중성미자는 우주에 엄청난 양이 흩날리지만, 물질과 거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관측이 어렵다. 그러나 수백조 개 중 하나쯤은 물 분자에 부딪쳐 물 원소의 핵에서 전자가 튀어나오게 한다. 그 전자가 물이라는 매질에서 빛의 속도보다 빠를 때 발생하는 체렌코프광을 관측하면 중성미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된다.

단순한 관찰이 이루어낸 중요한 발견

이처럼 체렌코프 효과를 통해 중성미자를 포착하는 대표적인 시설은 지하 1000m 아래의 폐광에 만들어진 일본의 슈퍼 카미오칸데다.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슈퍼 카미오칸데에서 검출한 중성미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중성미자가 다른 형태로 변하는 중성미자 진동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곧 중성미자가 질량을 지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질량 없이는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의 대표적인 이론인 표준모형은 중성미자의 질량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진동 현상의 발견은 표준모형이 완결적 이론일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는 캐나다의 서드베리 중성미자 관측소에서 슈퍼 카미오칸데 실험 결과를 뒷받침한 아서 맥도널드 교수와 함께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파벨 체렌코프는 체렌코프 효과의 일반적인 특징을 모두 밝혔으나, 수학적으로는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모스크바에 있던 동료 교수 일리야 프란크와 이고리 탐이 체렌코프 효과를 수학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체렌코프는 체렌코프 효과를 발견한 지 24년 후인 1958년에 프란크 및 탐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발견은 단순한 관찰이 적절한 연구를 통해 중요한 발견과 과학 연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좋은 사례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6085)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