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속에서 성공을 찾는다

유대인의 창조정신 후츠파 (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과대학들이 몰려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과 비교했을 때 약 80배에 달한다. 그런데 지금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바이오벤처는 대부분 이스라엘 기업들이다.

연세대 글로벌융합공학과 윤종록 교수에 따르면 성공한 바이오벤처 중 약 70%가 이스라엘에서 탄생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뻔뻔하면서도 당돌한 후츠파(chutzpha) 정신이 학문과 산업의 장벽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최대 군수기업인 IAI 홈페이지. 우주산업은 물론 항공, 선박, 전자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원천기술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IAI


이스라엘 군부대 안에는 탈 피오트 부대가 있다. 보통 엘리트 부대라고 부른다. 이 부대는 입대하는 젊은이들 가운데 최고의 엘리트라고 판단되는 병사들로 구성돼 있다. 엘리트 병사들은 불과 1년 만에 대학 교과과정 전부를 이수하고 연구에 참여한다.

이스라엘 전쟁 교본은 실패의 교본

국방과학연구원이 이 부대를 관리하고 있는데 병사들의 복무기간은 9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군 부대를 거친 650명의 대원들이 미국 나스닥 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이 됐다는 점이다. 8200부대도 있다. 이 부대는 수학 영재들로 구성돼 있으며 보안기술을 개발, 현재 세계 인터넷 보안기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군부대 R&D가 이처럼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 역시 ‘뻔뻔스러움’, 즉 후츠파 정신 때문이다. 이스라엘 군대의 가장 큰 전통은 존경할 만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다.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 군인의 전통이다.

▲ 성공적인 벤처기업 베터플레이스의 전기차 충전시스템 ⓒ베터플레이스

과거의 어떤 작전이나 해법이 잘 먹혔다고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도 마찬가지다. 정부조사단이 작전수행 중인 군 간부를 3일간이나 불러 (작전방식에 대한) 진상조사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특별한 전쟁교본은 없다. 매일같이 새로운 전쟁교본이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군대 전쟁교본은 실패를 기록한 교본이다. 그러나 이 끝없는 실패 속에서 세계 최강이라고 일컫는 교본이 탄생하고 있다. 후츠파 정신 중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실패의 정신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경우에든 의도적인 실패가 아니라면, 그래서 건설적인 실패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다가 실패를 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해주는 분위기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벤처기업 전선에 과감히 뛰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벤처 창업의 큰 돈을 대고 있는 곳은 이스라엘 정부다. 학생들이 벤처를 창업할 경우 정부가 자금의 70%를 지원해준다. 만일 창업한 벤처가 성공을 거뒀을 경우 정부에서는 투자한 비용만 받고 사업 전체를 창업자에게 넘겨준다.

벤처창업 비용 정부가 70%까지 부담

윤종록 교수는 자신의 체험담을 소개했다. KT 임기를 마치고 뉴욕 벨연구소에 도착한 지 11주일 정도 지난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메일을 보내왔다는 것. 뉴욕에 와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주 토요일 맨해튼 32번가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윤 교수에게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그들은 거의 반 강제적으로 승낙을 얻어낸 다음 윤 교수를 찾아온 경위를 설명했다. 이스라엘 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보고 이스라엘에서 직접 윤 교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28세, 31세 젊은이들이었다. 벤처를 창업해 두 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돈이 없어 거의 신용불량자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기업 이사장(사외이사)은 히브리 대학 기술지주회사 이솜(Yissum) 이사장이었다.

윤 교수 역시 2005년 이스라엘 방문 시 만난 적이 있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물들이 젊은이들의 창업을 무보수로 자진해 돕고 있는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젊은이들은 윤 교수의 중재로 벨연구소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양사 공동으로 미국을 포함, 세계 주요 인터넷 기업들과 공동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넷 트래픽이 집중되는 병목기간을 재빨리 예측하고, 소프트웨어를 가동해 즉시 다른 연결통로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벤처기업이 대성공을 거두는 과정이었다.

이런 벤처기업들이 지금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 원천기술의 약 40%를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후츠파 정신이 이스라엘 벤처산업을 일으키고,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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