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신화와 전설을 낳은 히틀러의 과학자들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28

나치와 과학은 항상 매혹적인 주제이다. 마치 어지러운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 마냥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들이 대립해왔다. 박해받아 탈출한 과학자들. 비합리적인 인종주의. 나치 치하 과학기술계의 이전투구. 이런 이미지들은 나치와 과학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그려낸다.

반면에, 기술적으로 빼어난 탱크들을 앞세운 전격전. 시대를 앞서간 V2와 Me262, 다행히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무시무시한 신무기들은 뛰어난 나치의 과학기술력을 상징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획적이며 나름 계산적 합리성을 갖추었던, 그래서 과학적으로 보이기조차 했던, 대량학살은 “합리적 존재인 인간”이라는 명제 자체에 두려움을 품게 한다.

무엇보다도 원자폭탄을 가능하게 한 현대물리학의 탄생지인 바로 그 독일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실패했다는 아이러니가 갖가지 상상을 하게한다. 쫓겨난 과학자들만이 원자폭탄 개발을 할 수 있었을까? 혹은 나치 치하에서 독일 과학자들이 영웅적인 비밀 저항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의문들은 갖가지 형태의 신화와 전설을 낳았다. 무엇보다도 2차 대전 전까지 과학 발달을 선도한 독일에서 나치와 같은 참혹한 존재가 등장하였다는 점 자체가 불편한 마음을 품게 한다.

 

2004년에 출판되고, 4년 후 번역된 존 콘웰의 <히틀러의 과학자들>은 히틀러 시대의 독일 과학기술에 대한 유일한 종합서이다. 영미권에서도 특정한 주제를 넘어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서적은 흔치 않다.

짐작컨대 저자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가능했던 책이지 않았나 싶다. 그는 1999년 나치와 교황청의 “협력”을 다룬 <히틀러의 교황: 비오 12세의 비밀역사 Hitler's Pope: The Secret History of Pius XII>으로 널리 알려진 저술가인 동시에 케임브리지대학 예수칼리지 펠로우로서 현재 동 칼리지의 “과학과 인간적 차원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 의료 그리고 윤리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교육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항하여 신의 존재를 옹호한 논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즉 콘웰은 과학, 종교, 나치의 관계에 대해 사색해온 저술가이자 지식인인데, 과학, 종교, 정치를 긴 안목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는 점에서 영국적 자연신학의 말예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자극적인 다른 대중서들과 달리, 콘웰은 절제와 넒은 시야를 잃지 않는다. 그는 나치 독일을 흥분한 어투로 악마화하지도 않고, 나치 과학과 ‘정상적인 과학’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한다.

예컨대, 독가스 문제를 영국 생물학지 J. B. 홀데인의 이야기로부터 풀어 나간다. J. B. 홀데인의 아버진 생리학자 존 스콧 홀데인은 아들을 실험동물 삼아 유독가스 연구를 했었음을 소개하면서 “나치의 의료 과학이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데 있어서도 그리 특이할 만한 점은 없었다. 충동은 항상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한계선이 어디까지이며, 이런 실험을 규제하는 일반 법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현대과학기술문명을 싸잡아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한계와 충동은 어디나 상존하고, 이 점에서 나치 과학자들을 정상적인 과학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 치부하면 우리는 중요한 그 무엇을 놓치게 된다는 뜻이리라.

인간 군상에 대한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절제된 묘사들이 이런 통찰들에 현장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무척 잘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전후의 변명들이 거짓인 이유를 보여준다. 근래 유행했던 팩션류와는 달리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은 그런 서술만이 가능함을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논증이 아니라 압축적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진행하는 솜씨는 아무래도 인문학 전통의 힘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바른 삶만을 조명하는 그런 도학자연하는 태도가 아니라 영국과 미국 과학계, 나아가 양국의 사회문화 전반이 나치와 공유하는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성실한 반성을 통해서. 즉 이 책은 나치가 아닌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치가 아니고자 할 때, 절실한 태도를 담고 있다.

짤막하면서도 판에 박히지 않는 묘사들이 중첩되어 인간 군상들이 처했던 딜레마들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강점이지만 때로는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에 공감해버렸다. 그래서 사람으로서의 하이젠베르크를 더 이상 혐오할 수 없게 되었다. 하이젠베르크가 전후에 각종 회고담을 통해 날조해낸 “양심적인 과학자”의 신화는 좀 더 객관적 연구들을 통해 이미 붕괴되었다.

콘웰의 서술은 이런 연구들을 잘 반영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저절로 만일 내가 그 상황과 입장에서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자문을 피할 수 없게 한다. 바이츠체커도 양심적인 과학자에서 양심적이고 싶어 했던 과학자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쉽사리 혐오하고, 쉽사리 영웅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콘웰의 의도였다면 그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 책은 히틀러와 과학기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재들을 빠짐없이 언급했기에 개별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논저들에는 담을 수 없는 넒은 시야와 찬양과 비난을 삼가는 태도와 어우러져 한 시대의 과학을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이 점에서 과학뿐만 아니라 시대를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성 싶다.
 



소개도서 : 존 콘웰 지음/ 김형근 옮김, <히틀러의 과학자들- 과학, 전쟁, 그리고 악마의 계약>, 
            크리에디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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