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을까?

[과학기술 넘나들기] 과학기술 넘나들기(181)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영화 ‘테넷(TENET)‘이 최근 국내에서도 개봉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감독의 이전 작품인 인셉션과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거의 600만, 그리고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데 비해, 이번 영화의 경우 약 200만 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

관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영화의 장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탓도 있어 보이는데, 대중들에게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블랙홀이나 상대성이론보다 이 영화와 관련된 열역학 제2법칙 등이 더 난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영화 테넷(TENET)의 주요 단서로 등장하는 사토르 마방진 ⓒ 위키미디어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 바로 시간이 흐르는 방향이므로, 시간이 역전되면 엔트로피 역시 감소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시간 역행은 일반적인 타임머신과는 좀 다르다. 19세기 말 SF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즈(Herbert George Wells)가 처음 선보인 이래 숱한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등장했던 타임머신은, 비행체와 유사한 것에 탑승하여 먼 과거 또는 미래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시간을 순차적으로 거슬러 흐르게 해야만 과거로 갈 수 있다.

전체 에너지의 보존을 말하는 열역학 제1법칙과는 달리,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이 일정함을 의미한다. 즉 열은 전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과 일치되도록 항상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를 뿐, 스스로 온도를 거슬러 흐를 수는 없다. 다만 냉장고나 에어컨처럼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해 주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역시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통계역학을 확립한 볼츠만의 묘소 및 그곳에 적힌 엔트로피 공식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물리학자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19세기 말 통계역학의 관점에서 엔트로피의 개념을 구체화하여, 열역학 제2법칙을 공고하게 정립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확률, 통계론적으로 성립하는 열역학 제2법칙의 비가역성(非可逆性)이 항상 성립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 전후로도 있었고,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일부 물리학자들은 이를 미해결 문제로 여기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패러독스가 바로 ‘맥스웰의 도깨비(Maxwell’s demon)’라 불리는 것이다. 전자기학을 완성한 맥스웰 방정식으로 유명한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기체분자 운동론 등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겨 통계역학의 확립에도 크게 기여한 물리학자인데, 맥스웰의 도깨비란 이와 관련되어서 고안된 일종의 사고 실험(Gedanken experiment)이다.

이미지처럼 두 방 사이에 연결된 작은 문을 아주 작은 도깨비(Demon)들이 여닫으면서 기체 분자 중에서도 속도가 평균보다 빠른 것은 오른쪽으로, 속도가 느린 것은 왼쪽으로 모이게 한다면, 오른쪽 방의 뜨거운 기체와 왼쪽 방의 차가운 기체로 분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체 엔트로피가 감소된 셈이므로, 결국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지 않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맥스웰의 도깨비라 불리는 사고실험을 도시한 이미지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물리학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제아무리 작은 도깨비라 해도 뜨거운 기체와 차가운 기체를 분리하려면 에너지를 써야만 하므로, 열역학 제2법칙은 여전히 성립한다는 것이다.

즉 나노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초미세 나노로봇들이 실제로 맥스웰의 도깨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이 각 기체 분자의 속도가 평균보다 빠른지 느린지 인식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고, 또한 문을 열거나 닫으려면 당연히 에너지가 소모된다. 따라서 전체 엔트로피는 더욱 증가할 것이므로 냉장고나 에어컨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으며, 이는 현대에 와서 물리학자들의 계산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영화 테넷에도 시간 역행의 원리를 설명하는 물리학자의 연구실 칠판에 맥스웰의 도깨비가 잠시 등장한다. 또한 엔트로피 감소에 의한 시간 역행 및 이에 따라 에너지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장면도 자주 나오는데, 역시 맥스웰의 도깨비와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불길에 휩싸인 차의 유리창에 얼음이 끼고 그 안의 주인공은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바로 ‘불 위의 물을 얼리는 진즈(Jeans)의 기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맥스웰의 도깨비가 제대로 작동하여 엔트로피를 실제로 감소시킬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시간 역행을 포함해서 영화의 장면들이 실제로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저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 답하고 싶다. 영화에서도 타임머신의 불가능을 의미하는 인과율, 즉 할아버지의 역설 등을 거론하면서 최대한 모순을 피해 가려 노력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얼버무린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성능이 매우 뛰어난 양자 컴퓨터와 완벽한 딥러닝 알고리즘 등을 동원한다면, 부분적인 시간 역전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시간 역전이 가능해진다 해도, 영화의 장면처럼 동일한 공간 내에서 어떤 물건 또는 사람은 시간이 역행하고 다른 것들은 순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또한 제아무리 전체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시간을 역전시키려 한다 해도, 지구는 결코 ‘고립된 계’가 아니라 태양광 등 많은 에너지를 외부와 주고받는 시스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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