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쉬운 문제 풀었더니 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기분”

[과학과 기술 인터뷰대담]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글: 류준영 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과학과기술 편집위원)

올해 막을 내릴 수 있고, 아니면 그의 못다 한 이야기의 시즌2가 전개될 수 있고, 2017년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아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혁신 정책을 이끌어온 염한웅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과의 대화는 끝이지만, 끝이 아닐 것만같은 회고에서 시작됐다.

과기자문회의는 국가 과학기술 분야 중장기 정책 방향 설정과 주요 정책에 대한 대통령자문을 수행하는 과학기술계 최고 기구다. 보통 핵심 요직을 꿰찬 이들의 임기 말 인터뷰는 으레 자화자찬이 쏟아지는 법인데 염한웅은 달랐다. 이를테면 과기자문회의의 실질적인 위상에 대한 ‘직설’에서부터 “PBS(연구과제중심운영방식) 개선, 연구자 중심 개혁 등은 진전을이루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작심한 듯 그러면서 애써 태연해 보이려 하는 듯, 표현의 수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시쳇말로 ‘셀프 디스’를 잇는다. 과학기술계를 위해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올곧은 성품, 뚜렷한 주관을 지닌 책략가답게 과학기술계 현안 비판에 꾸밈 혹은 포장이 없다. 그래도 굳이 잘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기초연구예산을 2.5조 원 정도로 두 배가량 늘리고, 예산 배분을 분야별 수요에 맞춰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연구자 주도로 했다는 점 정도를 든다. 국가 R&D100조 원 시대, 전체를 놓고 볼 때 2.5조는 그리 큰 숫자는 아니지만, 한 분야에서 이뤄낸 결과로는 결코 작지 않다.

이번 인터뷰는 염 부의장 측 요청으로 성사됐다. 묻게 된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을까. 3년의 임기 동안 염 부의장이 방점을 둔 대목은 무엇이고 그가 놓은 묘수와 악수는 무엇이었나. 지금 과학기술계에서 이뤄지는 첨예한 논의는 해법이 있긴 한가. 포스트 코로나, 탄소중립, 한국판 뉴딜 등 국가적 숙고가 필요한 묵직한 과제가 던져짐과 동시에 과학기술계패러다임이 거친 변화의 한가운데에 놓였다. 대전환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염 부의장을 과학과기술‘이 만났다.

염 부의장은 1989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포항공대에서 이학석사 학위를받았다. 1996년 일본 도호쿠(東北)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0년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2010년 포스텍(옛 포항공대)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재직 중이다. 제30회 인촌상, 제15회 한국과학상, 한국물리학회 학술상(2007년) 등을 수상했다. 2010년엔 미국물리학회 최우수 논문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2기 과기자문회의 과학기술기반분과 자문위원을 역임,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 캠프에 영입돼 과학기술 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 원자제어저차원전자계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기자문회의를 이끄신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는데, 소회가 어떠하신지요.

기초과학 진흥과 연구자 중심의 연구제도 혁신을 깃발로 내세우면서 과기자문회의를 크게 확대하고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욕심을 크게 내고 시작했습니다. 기초연구예산 확대와 연구제도 개선, 청년연구자 지원 확대 등 계획대로 잘된 부분들도 있으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연구자 부분이나 과기자문회의의 실질적인 위상 확보 등 적지 않은 과제를 남기게 됐습니다.

또 미세먼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 감염병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이 직접 관련되고 어느 정부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 위기를 지나오게 되면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의식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쉬운 문제들을 풀어 숙제를 제출했는데 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기분입니다.

한국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과기자문회의만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의 정부 구조를 보면 과학기술 분야의 최상위 컨트롤타워는 정책 방향과 중장기계획, 예산심의를 다루는 통합 과기자문회의와 단기 및 중장기 계획수립·실행을 담당하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이하 과기관계장관회의)가 있습니다. 후자는 정부 초기에 계획한 것이 아니고 부처의 필요에 의해 현 정부 임기 중반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구조와 이에 따른 역할 분담이 제대로 돼 적절하게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다 해결된 것이 아니고 시간이 걸립니다. 문제는 정부가 바뀌면 이런 구조가 또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기 어렵고 하나의 시스템을 안정되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부처에서 담당하는 실행 부분과 중장기적인 계획수립 부분을 분리하고 실행 부분에 대해서도 예산·법정계획의 심의를 통해 일정 정도 견제 또는 제어하는 현재의 구조는 상당히 진보적인 구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과기관계장관회의가 중장기계획에 잘 부합하게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 있고 두 컨트롤타워가 적절히 상호작용하고 있지 못한 것도 현재의 한계입니다.

3년간 중점적으로 노력한 부분과 결과는 무엇입니까.

연구자 중심(과제공모형) 기초연구예산을 두 배로 2.5조 원 정도 지난 3년간 늘려왔습니다. 놀라운 성과입니다. 또 기초연구예산의 배분을 각 분야별 수요에 맞춰 완전히 바꾸는 작업을 연구자 주도로 현재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변화는 앞으로 장기적이고 폭넓은 파급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에 제약이 돼온 다양한 관리형 연구행정 제도를 연구자들이 직접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다만 애초에 계획했던 PBS(연구과제중심운영방식)의 획기적 개선 등 출연(연)을 연구자 중심으로 개혁하는 문제에 진전이 없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직 방향성과 방법론에서 합의된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기초연구지원예산이 2017년 약 1조 2600억 원에서 2020년 2조 300억 원, 2021년 2조 3500억 원으로 빠르게 증액됐습니다. 기초연구사업 투자 확대를 위해 과기자문회의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그 성과는 무엇입니까.

정부의 기초연구예산 전체를 보면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이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고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습니다. 공약이거나 국정과제라 하여 다 제대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든 분들이 잘 이해하고 경험해오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초연구지원 확대라는 국정과제가 잘 이행되도록 하기 위해 과기자문회의는 과기기본계획, 기초연구 5개년 계획, 그리고 각 년도의 예산 심의를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과적으로 공약 및 국정과제 중에서 가장 잘 실현된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성과로 기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지원체계 혁신에 있어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는 사항이 부처 간 칸막이 R&D 지원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지적해온 문제입니다. 과기자문회의는 모든 부처의 R&D 계획과 예산을 심의하므로 이 문제를 일정 정도 해결할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도 특히 R&D 계획을 통해 지속적인 피드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과 예산의 심의라는 것이 가지는 한계 또한 있어 그 효과가 크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실행의 컨트롤타워인 과기관계장관회의와 같이 연계되어 있는데 저는 일차적으로 부처의 협력은 과기관계장관회의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제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저는 부처 간 협력이나 중복성의 문제를 우리가 너무 기계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오래되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이 중요하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기계적 중복성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프로젝트의 완성도와 성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들면, 미세먼지나 기후변화 문제와 같이 광범위한 부처협력이 필요한 과제들의 경우 원론적인 부처협력 이슈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각 과제가 잘 안되는 원인이 무엇이고 잘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처방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모든 안 되는 과제에 다 적용되는 만능처방으로 부처 간 협력 부족을 습관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으며 문제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공공 R&D 투자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오셨습니다. 다양한 연구 분야 중 공공연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초연구를 확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국가 전체 R&D 투자가 100조 원에 달하고 삼성그룹의 R&D 투자 총액이 정부 R&D 예산과 맞먹는 시대입니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분명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정부 R&D는 주로 주력산업 경쟁력 확보와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산업과 경제 분야에 집중해왔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투자의 비효율성이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따라서 정부 R&D가 산업, 경제 ‘올인’에서 기초, 공공, 산업의 균형을 갖추는 시대가 되어야 하고 민간이 할 수 없으며 특히 그동안 소홀했던 기초연구와 공공연구의 확대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2010년 OECD가 우리나라의 R&D 정책에 대하여 한 권고이며, 타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전에 갖춘 포트폴리오입니다.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인터뷰 대담을 통해 과기자문회의의 실질적인 위상에 대한 ‘직설’에서부터 “PBS(연구과제중심운영방식) 개선, 연구자 중심 개혁 등은 진전을이루지 못해 안타깝다.”는 의견을 전했다.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최근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과기자문회의는 이미 2018년에 미세먼지 대응에 대한 논의와 자문을 했고, 2019년엔 포괄적인 탄소중립 선언의 필요성과 이를 뒷받침할 국민소통, 제도, R&D 투자 확대 등에 대해 자문했습니다. 조금씩 이해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미세먼지 문제와 기후변화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 2020년 말에는 대통령의 탄소중립 비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R&D 투자 확대와 관련 수행체계혁신에 대해 보다 큰 틀의 공공분야 R&D, 그러니까 미세먼지, 감염병, 기후변화 등의 거시적인 정책을 자문했습니다. 올해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장기적인 기술개발 로드맵에 대한 자문을 하려고 합니다. 이미 좀 시기적으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의장직을 수행하시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중점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정부 수립 초기에 국정과제를 통해 분명하게 목표가 설정된 이슈들이 아닌 새로운 이슈, 특히 미래지향적인 이슈에 대해 컨센서스(의견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취임 초부터 계속 제기해온 문제입니다만 여러 가지 중요한 국가적인 어젠다에 대해 정부, 청와대 그리고 자문기구들을 아울러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할 플랫폼이 절실한데, 현재까지도 잘 만들어져 있지 못합니다.

올해 국내 사회변화와 과학기술정책을 주도할 어젠다로 ‘뉴노멀’과 ‘한국판 뉴딜’을 꼽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한국판 뉴딜이라는 것은 우리 과기자문회의와 소통 없이 청와대와 부처가 만든 작품입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 측면에서 신속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디지털과 그린을 중심으로 하는 뉴딜의 기본 틀에는 물론 개인적으로 두 손을 들어 환영하는 바입니다. 이후 이 틀에 구체적인 내용을 넣어가는 부분, 특히 그린 뉴딜의 측면에서 과기자문회의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전논의에 있어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과기자문회의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혜를 모아서 뉴노멀이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대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고, 과기자문회의도 과학기술의 측면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2021년 한 해 더 제가 과기자문회의를 맡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제 본업이 연구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그만큼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좀 더 좋은 연구 성과에 욕심이 납니다. 사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은 2012년경에 큰 틀의 그림을 그린 것이어서 올해는 앞으로의 10년을 보고 새로운 연구 또 현재까지 진행해온 연구의 새로운 단계를 위한 밑그림을 새로 그리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의장직을 맡지 않게 되면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제 개인의 과학기술 정책과 인재 육성에 관한 생각들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큰 변화의 시기에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지혜가 매우 부족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생각과 콘텐츠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를 제공하는 리더들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AI가 업계의 주류가 된 후에야 AI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AI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지혜와 통찰이 아니지요.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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