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수학 난제 풀기를 즐긴 논문 다작왕들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13) 레온하르트 오일러와 폴 에르되시

인류 역사상 수많은 천재들이 자신의 업적에 빛나는 많은 논문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쓴 과학자는 누구일까.

수많은 수학 천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논문 다작왕으로 18세기 가장 저명한 과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와 20세기 수학 천재 폴 에르되시(Paul Erdős, 1913~1996)를 꼽을 수 있다.

866편의 논문을 쓴 수학 천재레온하르트 오일러’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손꼽힌다. 그는 평생 약 92권의 전집과 866편에 달하는 논문을 남겼다. 오일러는 대수학, 미적분학, 정수론, 기하학 등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남긴다.

18세기 가장 저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오일러. ⓒ 김은영/ ScienceTimes

오일러는 오일러-라그랑즈의 방정식, 오일러의 정리, 오일러 항등식 등 수많은 수학 공식을 만든 주인공이다. 수학에서 함수(function)의 개념을 도입하고 f(x) 기호를 처음 쓴 것도 오일러다. 다방면에서 천재였던 오일러는 수학뿐 아니라 고전역학, 유체역학, 천문학, 광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학습 능력은 어린 시절부터 독보적이었다. 여러 학문에 재능을 보였지만 오일러의 가장 큰 관심 분야는 수학이었다. 그의 천재적인 수학 실력을 눈여겨본 또 다른 수학 천재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는 어린 오일러를 개인 교습을 해주며 수학 공부를 독려했다.

오일러는 불과 13세의 나이에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입학하는 실력을 보였다. 석박사 과정도 6년 만에 마쳤다. 당시 요한 베르누이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의 추천으로 러시아로 간 오일러는 샹트 페테르부르크 과학아카데미 물리학과 정교수로 발탁된다. 그의 나이 불과 24세 때의 일이다.

천재 오일러는 ‘난제 풀기’를 취미로 여겼다. 오랫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미지의 문제들을 그는 속속 풀어냈다.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도 그중 하나였다.

오일러가 밝힌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 7개 다리의 난제. ⓒ 김은영/ ScienceTimes

1736년 당시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에 사는 사람들은 강 중심 섬과 연결된 일곱 개의 다리를 건너 오갔다. 그때 이 다리를 딱 한 번씩만 지나 모든 다리를 건널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당시 큰 이슈였다. 이에 많은 논쟁이 오갔지만 증거를 제시하는 학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붓그리기(traversable network)’가 바로 이 난제를 푸는 열쇠였다. 한붓그리기는 연필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동일한 선을 두 번 이상 지나지 않도록 어떤 선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프 이론에서 이를 오일러 경로(Euler path, Eulerian path)라고 한다. 오일러는 쾨니히스베르크의 모든 다리를 단 한 번만 거쳐서는 절대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과학자 중 가장 많은 논문을 쓴 폴 에르되시

폴 에르되시(Paul Erdős)는 세 살에 암산으로 세 자릿수 곱셈이 가능했다. 네 살에 음수의 개념을 깨칠 정도로 신동이었다. 그는 오일러와 함께 역사상 가장 많은 책과 논문을 남긴 수학자로 이름을 남겼다. 에르되시는 1500여 편의 논문과 조합론, 그래프 이론, 정수론 등 모든 수학 분야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논문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폴 에르되시. ⓒ 위키미디어

에르되시는 누구보다 특이한 인생을 산 수학 천재였다. 그는 특정한 거주지 없이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를 떠돌며 500여 명의 학자들과 함께 공동 논문을 작업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협업을 했는지 에르되시 사후에는 그와 얼마나 가까웠는지에 따라 수학자를 분류할 수 있었다. 이를 ‘에르되시 수’라고 한다.

에르되시의 수를 의미하는 그림. ⓒ 위키미디어

에르되시와 직접 논문을 쓴 수학자는 511명이었는데 이들은 에르되시 수로 ‘에르되시 1’이 된다. ‘에르되시 1’로 분류된 학자와 함께 공저자를 하게 되면 그는 ‘에르되시 2’가 된다. ‘에르되시 2’의 학자들과 협업을 하면 그는 ‘에르되시 3’이 되는 식이다. 번호는 7까지 나왔고 이 번호는 경매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에르되시와 함께 공저를 하는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일러와 투톱으로 논문을 다작한 에르되시는 오일러와 닮은 점이 많았다. 그는 오일러와 마찬가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 풀이를 좋아했다. 방랑자처럼 떠돌며 공동 논문을 추구하던 그는 돈이 떨어질 때마다 상금이 걸려있는 ‘난제’를 풀어 자금을 해결했다. 논문을 많이 남긴 수학 천재들의 취미가 수학 난제 풀기였다니 천재들의 세계는 생각하면 할수록 오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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