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라는 학문을 예술로 담아내다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 전시회 열려

‘세계수학자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됐다. 그런데 이를 기념하고자 기획된 전시회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1월 11일까지 진행될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 전(展)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예술로 담아냈다는 데 있다. 예술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우리 삶에 내재한 수학적 사고와 현상을 바라보고 있어서 ‘수학’의 어떻게 예술로 형상화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숫자의 이미지화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 전에서는 총 11점이 소개되고 있는데 전시는 3,4전시실과 프로젝트홀 중층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3층 입구를 들어서기 전 복도에서 ‘베르나르 브네’의 ‘Saturation with a Large Curve’ 라는 첫 번째 작품을 만나게 된다. ‘베르나르 브네’는 세계적인 개념 미술가이다.

개념미술은 미술작품의 물질적 측면보다 관념성의 비물질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경향이다.  좁게는 기호나 문자 등의 비물질에 의한 표현양식을 말하지만, 넓게는 퍼포먼스나 비디오 아트와 같은 새로운 미술형태를 포괄하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바로 이런 작가의 성향을 잘 나타나 있다. 함수인지, 미·적분 공식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학적 기호들이 전시실 거대한 벽면에 가득 차 있는데, 이는 수학 기호와 공식들에 내재한 의미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순수한 이미지로서만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이다.

 

 ‘에카테리나 에레멘코’는 영화를 통해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수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에카테리나 에레멘코’는 영화를 통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수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제3전시실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하나의 입구가 있다.  ‘에카테리나 에레멘코’의 ‘Color of Math’가 상영되고 있는 공간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수학적 지식을 토대로 영화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에카테리나 에레멘코’는 영화를 통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수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3전시실 왼쪽에는 ‘슬기와 민’의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이라는 작품이 있다.  100분간의 수능 수학시험에 대해 ‘슬기와 민’은 느낀 비장한 아름다움을 시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0문항 하나하나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는데, 30개 패널로 구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각 패널에는 알 수 없는 도형과 선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기괴함마저 느껴지는 기하학적 모양도 보인다. 마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학생의 답안 같다는 느낌을 준다.

 

‘랜덤웍스’는  서울시를 움직이는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랜덤웍스’는 서울시를 움직이는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30번째 패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보게 되는 작품은 ‘랜덤웍스’의 ‘City DATA: Seoul Daily Expenditure’이다.  서울시의 재정지출 데이터를 시각화한 이 작품 역시 전시실 한 벽면을 화면으로 삼고 있다. ‘교육행정지원, 운행차량제한, 기본경비, 성설전시 운영비’ 등 2014년 3월 21일부터 서울시가 지출하고 있는 비용이 끊임없이 나온다. ‘랜덤웍스’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현재 어떤 이슈에 주목하고 있고, 어떤 도시가 되어가고자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를 움직이는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제3전시실과 제4전시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공간이 있다. 보는 순간, 수학자 연구실임을 알 수 있다. ‘송희진’의 ‘진리의 성’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모티브와 자료를 제공한 사람은 고등과학원 수학과 최재경 교수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지난 30여 년간 기록하고 보관해온 자신의 수학연습노트 10권과 그가 틈틈이 지었던 시, 에세이 등의 아카이브들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예술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가의 아카이브 오브제들도 함께 있다. 딱딱하기만 한 수학공식들이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틈틈이 이 아카이브들에게서는 수학자의 고뇌도 엿볼 수 있다. ‘존재의 문제, 논리와 무(無)모순, 모순의 아름다움, 존재의 그림자’ 등  연습장에 쓴 수학에 대한 수학자의 정의가 그것이다.

재해석된 수학, 아트(art)로

‘자비에 베이앙’의 ‘Standard Meter’, ‘Air Hockey Table’는 제4전시실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진열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미터법. 프랑스는 측정 단위 통합을 위해 대리석으로 16개의 미터기를 만들었는데, 현재 단 2개만 남아있다. 그런데 ‘Standard Meter’가 이 미터법의 개념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과거의 유산을  재해석하여 간결한 형태와 정교한 기술을 집약시켜 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Air Hockey Table’은 일종의 고리 던지기 놀이에 사용되는 탁자의 원리가 적용된 작품이다. 어두운 색의 디스크들이 마찰력이 덜한 바닥에서 공기의 흐름을 따라 미끄러져 내린다. 무작위적인인 움직임들이 우리로 하여금 무한수의 가상적인 형체와 궤적을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가 사운드 작업을 할 때나 미디어 작업을 할 때 청각이나 시각적 현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시각화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작가가 사운드 작업을 할 때나 미디어 작업을 할 때 청각이나 시각적 현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시각화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카스텐 니콜라이’의 ‘Grid Index’와 ‘Moire Index’는 제4전시실 왼쪽 한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격자무늬나 간섭 물결 패턴으로 이루어진 이 두 작품은 48개의 액자에 구성되어 걸려 있다. 사실 이 작품들은 전자음악 뮤지션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작가가 사운드 작업을 할 때나 미디어 작업을 할 때 청각이나 시각적 현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시각화했기 때문이다.

국형걸의 ‘Part to Whole’은 건축에서 집합과 원소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만든다. 건축가이기도 한 작가는 하나의 조형물을 총체적인 하나의 대상이 아닌 개별 요소들이 이룬 하나라고 보는데, 이런 시각이 이번 작품에도 드러나고 있다. ‘나무 쌓기’를 무한 반복해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건축적 구축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건축적 소재들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 간격을 두면서 나무를 쌓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공집합도 집합인 것처럼 ‘비움 또는 빈 공간’이라는 요소도 건축물이라는 집합을 이루는 부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유지원의 ‘단위와 배열: 동아시아 수학과 일상의 공간’은 동양 수학을 조망하는 작품이다. 각 작품들이 시트지 출력 되어 걸려있는데, 여러 점이다 보니 마치 제4전시실의 비밀의 방 같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구구단(석구수법), 가장 복잡한 10차 방정식 수식’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동안 잘 몰랐던 동아시아 전통수학이라는 틀을 통해 우리 주변과 의식 깊숙한 곳에 잠재되었던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발견되는 엔트로피 현상을 영상과 음향으로 구현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우리 삶에서 발견되는 엔트로피 현상을 영상과 음향으로 구현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선택의 계(系)’는 프로젝트홀 중층에 있다. 뉴미디어 아티스트, 프로그램 엔지니어, 사운드 아티스트로 각각 활동하고 있는 ‘김경미, 이상민, 고병량, 이강성’이 임시적으로 가변적인 팀을 이루어 만든 작품이다. 전시 공간 내에 다양한 크기로 구성된 육면체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인터렉티브 프로젝션 맵핑을 설치한 ‘선택의 계(系)’는 전시장 내 관람객의 수와 움직임 및 분포를 데카르트 좌표계에 적용시켜 계산되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화한다. 영상도 평온한 자연풍경에서 산불이나 거센 바람 혹은 웃는 얼굴로부터 우울한 얼굴 등으로 계속 변화하는데, 이는 데카르트 좌표계에 나온 값과 상응하는 엔트로피 지수를 산출하여 그 정도에 따라 우리 삶에서 발견되는 엔트로피 현상을 영상과 음향으로 구현하고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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