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벌의 기구한 운명 닮은 ‘초기 드론’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47)

‘무인 비행체’를 뜻하는 드론이 심심찮게 우리 눈에 띄고, 아이들의 장난감이 된 것은 근래의 일이지만, 드론의 역사는 무려 한 세기에 이른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에서 만들어져 투석기(catapult)로 발사되거나 무선 조종된 비행체로 드론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영국은 1920년대에 정찰용 복엽기인 ‘페어리 III(Fairey III)’를 개조해 무선으로 원격 조종 비행이 가능한 ‘페어리 퀸(Fairey Queen)’을 내놓았다.  처음으로  ‘드론’이란 이름이 쓰인 페어리 퀸은 사격 연습 표적기였다.

영국은 1930년대 ‘드하빌랜드82 퀸 비(DH.82 Queen Bee)’,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에어스피드 퀸 와스프(Airspeed Queen Wasp, 와스프는‘말벌’)’, 1952년에는 호주와 합작한 ‘GAF 진디비크(Jindivik, ‘사냥감’이란 뜻의 호주 원주민 언어)’를 내놓으며, 드론의 계보를 이어갔다.

초기 드론인 DH.82 퀸 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처칠 수상 ⓒ 위키백과

초기 드론인 DH.82 퀸 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처칠 수상 ⓒ 위키백과

영국인들은 무인 비행체에 영어로  ‘수벌(male bee)’을 뜻하는  ‘드론(drone)’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수벌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수벌은 여왕벌과 한 번의 찬란한 밀월 비행을 마치면 죽는다. 마찬가지로 드론 비행체들은 한 번의 비행 즉, 모의 적기가 되어 대공포 사격의 표적이 되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이다. 공중에서 표적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것으로 제 몫을 다하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 표적 비행체의 기구한 운명을 수벌의 삶에 빗대어 드론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드론은 사격용 표적 비행체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드론은 UAV(Unmanned Aerial Vehicle, 무인비행체)이다. 비행체에 사람이 타지는 않지만 원격 무선 조종이나 자율 운행으로 비행한다. 앞에서 언급한 드론과 달리 UAV는 일회용이 아니고 쓰임새도 다양하다.

일회용 대공포 사격 표적 비행체가 아닌 정찰용 UAV 가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것은 베트남전쟁 때였다. 미군은 UAV를 이용해 정찰은 물론이고 상대방 눈속임용으로 이용하기도 했으며, 전단을 살포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UAV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고정된 표적을 파괴하기도 했다. 공격용 UAV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 미군이 UAV를 다목적으로 사용하자 다른 나라들도 UAV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군용 드론. 제너럴 아토믹스 MQ-9 리퍼(Reaper).  ⓒ 위키백과

군용 드론. 제너럴 아토믹스 MQ-9 리퍼(Reaper). ⓒ 위키백과

20세기 초에는 미국 CIA가 운용하는 드론들이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오지에 숨어 있는 알카에다 게릴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측에는 인명 손실이 없는 안전한(?) 폭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으며, 무인 폭격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드론을 무선 조종 장난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것을 실내에서 날리기 시작했으나, 곧 바람에도 날려가지 않을 정도의 무게와 성능을 갖춘 드론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초소형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일반인들도 띄우는 드론은 변형된 헬리콥터에 가깝다. 헬리콥터처럼 회전날개를 달고 있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다. 하지만 100년 전 처음 하늘을 날며 대공포 사격의 표적이 된 드론은 물론 최근 무인 폭격기로 쓰이는 드론은 비행기 자체이거나 적어도 비행기를 많이 닮은 형상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사용한 드론의 경우 초창기에는 쿼드콥터(quadcopter), 쿼드로터(quadrotor), 쿼드로터 헬리콥터(quadrotor helicopter)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쿼드(quad)나 쿼드로(quadro)는 모두 숫자 4를 뜻하므로 이런 이름들은 ‘날개가 넷 달린 헬리콥터’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날개가 8개 달린 드론도 있는데 ‘옥토콥터(octocopter)’라 부른다.

옥토콥터. ⓒ 박지욱

옥토콥터. ⓒ 박지욱

한편 ‘헬기’라 부르는 헬리콥터(helicopter)는 ‘꼬인 helix + 날개 pter’란 뜻을 지니고 있다. 헬리콥터를 하늘로 띄우는 회전 날개가 꽈배기처럼 꼬여있기 때문인데, 이를 고려하면 헬리콥터는 ‘나선익기(螺旋翼機)’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나선익을 회전시켜 비행하는 헬리콥터를 ‘회전익기’도 번역하는 지금의 이름도 나쁘진 않지만, ‘헬기’는 국적불명의 이름에 가깝다.

우리 몸 안에도 ‘꼬인 것’을 뜻하는 ‘헬릭스(helix)’라는 단어가 있다. 먼저 이중 나선(double helix) 구조의 DNA 가 우리 세포 속에 있다. 위장에는 비비 꼬인 모양의 헬리코박터(Helocobacter pylori)균도 있다. 귓속에는 나선형 구조의 달팽이관의 맨 꼭대기에 헬리코트레마(helicotrema)라는 구조물이 있다.

‘날개’를 뜻하는 ‘-읖테르(-pter)’가 들어간 이름도 드물지 않다. 가장 유명한 것은 날개가 달린 공룡인 프테로소어(pterosaurs) 즉 익룡(翼龍)이다. 인간 두개골 속 나비 모양의 뼈(蝶形骨)에는 나비의 날개에 해당하는 곳에 익상(pterygoid) 돌기가 있다. 안과 질병 중에는 눈시울 근방의 결막에 군살이 생겨 각막 쪽으로 자라는 병이 있는데 날개를 닮았다고 익상편(pterygium)이라 부른다. 그리고 한동안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했던 비행 기구 ‘오르니솝터(ornithopter)’도 있다.

다빈치의 설계에 따라 제작된 오르니솝터 '일 시뇨(Il Cigno)'. 시애틀항공박물관,

다빈치의 설계에 따라 제작된 오르니솝터 ‘일 시뇨(Il Cigno)’. 시애틀항공박물관, ⓒ 박지욱

오르니솝터는 ‘새 ornithos + 날개 pter’ 가 합쳐져 지어진 이름으로 새처럼 퍼득이는 날개가 달린 비행기다. 다빈치도 이런 비행기를 연구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인간의 몸으로는 새처럼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미용 소형 오르니솝터는 주변에서 볼 수 있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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