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목제 항공기 H-4 허큘리스

[밀리터리 과학상식] 독일 U보트에 대한 공포가 낳은 초대형 군용 수송기

시험 비행을 앞둔 H-4 ⒸPublic Domain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추축국은 영국, 스페인 등을 제외한 사실상 유럽 전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수의 U보트(잠수함)를 동원해, 아직까지 저항을 벌이고 있는 영국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영국은 대잠수함전 장비와 전력을 확충하고, 독일 잠수함의 통신용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결국 독일 잠수함의 위협을 상당 부분 해소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전쟁이 중반을 넘어선 1943년 5월 이후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 영국은 독일 잠수함들의 해상 봉쇄에 시달려 국가 존망의 위기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번에 다룰 특이한 항공기인 H-4 허큘리스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기획되었다. 상선을 통해 영국에 보급 물자를 전달하는 것은 독일 잠수함 때문에 위험하다. 그렇다면 미 본토를 출발해 독일 잠수함의 위협이 없는 하늘을 날아 영국에 바로 도착하는 초장거리 수송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1942년 미 육군부는 이러한 개념의 항공기 개발 및 생산을 휴즈 항공기 제작사와 카이저 조선소의 합작회사에 맡겼다. 이 항공기에는 휴즈(Hughes)와 카이저(Kaiser)의 머릿글자를 딴 HK-1이라는 형식 명칭이 붙었다. 육군부가 이 항공기에 요구한 작전 요구 성능은 실로 대단했다. 순항속도 시속 400km, 항속거리 4,800km, 화물 탑재량 68톤(완전무장 병력 750명 또는 M-4 셔먼 전차 2대에 상당), 운용고도 6,400m 등이었다.

그러나 육군부는 알루미늄 소재의 사용은 안 된다는 조건도 걸었다. 알루미늄은 다른 항공기 제작에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 귀중한 전략 물자이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요구를 맞추기 위해 목재를 주재료로

사실 항공기는 꽤나 소재를 가리는 기계물이다. 자동차나 배와는 달리 항공기는 공중에 떠야 한다. 뜨려면 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벼운 소재로 만들수록 같은 양력으로도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비행시킬 수 있다. 또한 항공기의 소재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한다. 고속 비행 시의 공기 저항에 필요 이상으로 변형되어서는 안 되고, 내부의 탑승자와 탑재물을 고공의 외부 환경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키는 소재는 의외로 많지 않다. 개발진은 고민 끝에, 결국 전통적인 항공기 소재였던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승강기와 방향타 등의 조종면은 섬유를 주재료로 만들어졌다. 이미 전금속제 항공기가 첫 등장한 지 근 3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고객의 요구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덕분에 이 항공기는 스프루스 구스(Spruce goose: 가문비나무 거위), 플라잉 럼버야드(Flying lumberyard: 나는 제재소) 등의 우스꽝스러운 별명들을 얻게 되었다.

또한 HK-1은 대량의 화물을 싣고 장거리를 날기 위해, 그 이전까지 나온 그 어떤 수송기도, 아니 그 어떤 항공기도 가볍게 능가하는 장대한 동체(길이 66.65m)와 날개(폭 97.82m)를 갖추었다. 그 날개에는 프랫 앤 휘트니 R-4360 엔진이 8개나 설치되었다. 덕분에 한동안 이 항공기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크기의 항공기로 남아 있게 되었다. 특히 이 항공기의 날개폭 기록은 70여 년 후인 2019년에 첫비행한 스트라토런치(날개폭 117m)가 등장하고서야 비로소 깨졌다. 하지만 주재료가 목재이기 때문에 최대 이륙 중량은 181톤으로 의외로 가벼웠다. 비슷한 수송 능력을 지닌 현대의 C-17 항공기는 265톤이다. 일반적인 수송기와는 달리, 물 위에서만 뜨고 내릴 수 있는 수상기라는 부분도 특이했다. 주로 배를 많이 만들어 온 카이저 조선소 측의 아이디어였다.

 

단 한 번만 비행한 세계 최대의 항공기

그러나 그 결말은 꽤 싱거웠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항공기의 소요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제기되었다. 그리고 개발사 휴즈 항공기 제작사의 사장인 하워드 휴즈는 평소의 완벽주의를 고집하다가 종전 시까지 항공기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사업 파트너인 카이저 조선소가 이 사업에서 철수하고, 그 때문에 항공기 이름도 H-4 허큘리스(Hercules,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의 영어식 발음)로 바뀐 이후였다.

결국 그는 항공기 개발에 투입된 국가 예산 2,300만 달러(2019년 화폐가치로 2억 1,100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상원 청문회에까지 나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는 자신이 결코 돈을 빼돌리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이 항공기를 뒤늦게나마 완성하고, 1947년 11월 2일 비행까지 시켰다. 하지만 그 비행 고도가 불과 20m, 비행 거리는 1.6km, 비행 시간은 26초에 불과했다. 그리고 항속거리, 비행 고도, 비행 속도, 화물 탑재량에 대한 시험은 공개적으로 진행된 바 없다. 이 때문에 이 항공기가 과연 요구조건대로 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니 이 항공기를 양산해야 할 필요성도 없어졌고, 휴즈도 이 항공기를 더 이상 비행시키지 않았다. 항공기를 발주했던 미국 정부는 이 항공기의 소유권을 휴즈 그룹의 자회사인 섬마 코퍼레이션 사에 70만 달러에 매각했다. 이후 이 항공기는 1976년 휴즈가 사망할 때까지 언제라도 비행 가능하도록 최상의 상태로 정비 유지되었다. 휴즈의 사후인 1980년, 이 항공기는 남캘리포니아 항공 클럽에 매각되어, 캘리포니아 롱 비치에 여객선 <퀸 메리>호와 함께 전시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문을 연 에버그린 항공우주 박물관에 이전되어, 현재까지 그곳에 전시되어 있다.

(4582)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