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 도전, 국가별 대응방식 달라

[2019 우수과학도서] 2019우수과학도서 /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

생명과학의 혁명에 국가는 어떻게 대응할까?  ⓒ게티이미지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 ⓒ동아시아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최초로 ‘유전자 편집’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세계는 충격에 빠졌었다. 중국 생물학자 허젠쿠이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에이즈 감염 가능성을 차단한 쌍둥이 아기를 탄생시킨 것. 이 보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중국 당국의 태도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전자 편집 아기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불법연구’를 한 허젠쿠이 교수에 대한 처벌을 시사했다.

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한 생명과학의 발전은 일종의 도전이었고, 국가는 그에 대응해야 했다. 이처럼 생명과학은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거대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생명과학은 사회 질서의 근간으로 간주되던 범주들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범주에는 자연과 문화, 도덕과 부도덕, 안전과 위험, 주어진 것과 만들어진 것 같은 근본적인 구별이 포함되어 있다. 생명과학이 그럴 의도로 기술을 발전시킨 건 아니었겠지만, 국가는 이러한 법과 제도, 정책이라는 방식으로 이러한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생명과학의 혁명에 국가는 어떻게 대응할까?  ⓒ 게티이미지

생명과학의 혁명에 국가는 어떻게 대응할까? ⓒ 게티이미지

실라 재서노프는 ‘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에서 미국, 영국,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며 생명과학의 도전에 국가와 민주주의 체계가 대응한 방식을 분석한다.

생명과학의 도전은 그야말로 근본적이고 혁명적이었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근본적인 주제를 성찰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내용에서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입법부, 사법부, 시민사회 모두 국가가 생명과학의 도전에 대응하는 데 개입해야 했다.

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하다는 점이다. 생명과학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조건을 갖추면 지구 반대편에서 입증된 실험 결과를 이곳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 또한 과학에서 나타난 성과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전파된다. 유명한 말처럼,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미국, 영국, 독일이라는 세 국가를 다룬다. 한 가지 중요한 사례를 살펴보는 게 아니라 세 국가에서 각각 어떤 방식으로 생명과학의 도전에 대응했는지 비교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왜 그랬을까?

비록 과학에는 국경이 없을지라도, 법과 정책에는 국가별로 환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이는 단순히 국가의 제도나 운영 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소송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연구원 차크라바르티는 분자 기술로 조작에 성공한 슈도모나스 속 균에 특허권을 신청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특허를 줄 수 있느냐에 관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다가 결과적으로는 차크라바르티의 특허가 인정받는 판결이 나왔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의회 대신 사법부가 생명과학의 새로운 발견에 관한 특허법의 적합성을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영국은 전문가의 권위가 인정받는 사회 가운데 하나였지만, 광우병 사태 때문에 전문가의 권위가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 10년 뒤, 오랜 정치적인 논란 끝에 영국 생명공학 정책은 대중이 더 많이 참여하고 안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독일은 나치 시대의 기억 때문에, 국가가 인간 존엄의 신성함을 손상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하는 독일 철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인간 문명에 등장한 야만성과 잔인함을 개탄하면서 유전공학으로 인간의 가장 추악한 특성을 제거하는 바이오 유토피아(bio-utopia)를 예견했다.

그러자 독일의 주요 신문과 잡지들은 격렬하게 슬로터다이크를 비난했다. 이러한 주장이 우생학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비판이론의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까지 논쟁에 참여하면서, 이 사건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중요한 윤리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아직 많은 과학자와 일반인은 과학이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한 활동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 실제로 수행되는 과정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허젠쿠이의 사례에서처럼 법·제도와 갈등을 일으키는 과학 연구가 일어난다. 그 갈등은 국가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을 비교해서 연구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다양한 이론적 도구를 사용해 수많은 사례를 분석하면서 이러한 까다로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저자는 생명과학에서 도전이 나타났을 때 국가가 생명과학을 규제할 뿐 아니라 생명과학도 국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책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생명과학에서 나타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우리는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논의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도 다양한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과학기술에 무지하고 정보가 결핍된’ 대중이 아니라, 과학기술 정책 담론에 참여하고 실행하는 시민의 등장이 필요하며, 이런 시민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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