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색 소품에 유행가까지…화려함 뛰어넘은 기본기 ‘우승’

‘2020 페임랩코리아’ 본선서 부가연 씨 대상 수상

“신약을 만들기 위한 임상실험 과정은 일종의 신호등과도 같습니다. 동물실험을 통해 부작용을 관찰하는 1상은 빨간불,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최적의 용량 등을 검증하는 2상은 노란불, 수 천 명을 대상으로 안정성과 효능을 최종 확인하는 3상은 초록불에 비유할 수 있죠.”

검은 원피스를 입은 정윤주 씨가 자신의 몸에 3색 종이를 붙여가며 임상실험의 단계를 흥미롭게 전달했다. 약물 후보물질이 치료제가 되기까지의 길고도 험한 여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한편 산부인과 전문의인 조민애 씨는 생소한 ‘세포유리 DNA(cell-free DNA)’라는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투명한 풍선공 속 곰인형을 꺼내들었다. 풍선은 엄마의 몸, 곰인형은 태아라는 설명이다.

페임랩의 특징 중 하나가 PPT 등의 별다른 자료 없이 소품만을 활용해 짧은 시간 내 발표를 진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참가자들은 특이한 소품을 준비하거나 색다른 시도를 하면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 사이언스올 캡처

이는 모두 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 페임랩코리아’에서 전개된 장면. 세계 최대 과학커뮤니케이터 발굴 프로젝트인 페임랩(Famelab)은 제한 시간 3분 동안 과학, 공학, 수학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는 경연 대회로서, 국내에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주한영국문화원의 공동 주관으로 2014년부터 진행 중이다.

본선 경연에 나선 10명의 참가자들은 다양한 소품은 물론, 밤새워 연습한 자신만의 장기를 맘껏 동원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약 3개월간의 예선을 거쳐 선발된 이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에서부터 최신 연구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학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이날 사회는 페임랩코리아 선배인 목정완, 이가진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맡았으며, 심사위원으로는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은희 작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참여했다.

액자식 구성 통해 교훈과 생태지식 동시 전달

페임랩의 특징 중 하나가 PPT 등의 별다른 자료 없이 소품만을 활용해 짧은 시간 내 발표를 진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참가자들은 특이한 소품을 준비하거나 색다른 시도를 하면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사로잡곤 한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수상을 차지한 김준연 참가자는 ‘수상한 생물선생님의 재미있는 생물 이야기’라는 콘셉트를 준비했다. ⓒ 사이언스올 캡처

우수상을 차지한 김준연 참가자는 ‘수상한 생물선생님의 재미있는 생물 이야기’라는 콘셉트를 준비했다. 그는 먼저 ‘대학도 가지 않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발표를 이어갔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김 씨가 택한 개념이 ‘생태적 지위’다. 김 참가자는 “생물들은 각자 고유한 영역을 가지며 살아가는데, 이를 생태적 지위라고 한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살아가는가 등의 영역이 여기 해당한다”며 딱따구리를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딱따구리는 일정한 먹이와 환경만 있다면 어디에서도 살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동나무와 사시나무류가 우거진 숲속에서도 5~8미터 높이에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딱따구리의 생태적 지위다.

이는 다른 곳에는 다른 새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지위가 겹치는 곳에선 자연스럽게 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진 종(種)은 멸종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만의 생태적 지위를 찾는다는 설명.

김 씨는 “딱따구리는 단단한 부리로 나무속에 있는 벌레를 먹고, 그 빈 공간에 집을 꾸린다”며 경쟁을 피해 자신만의 생태적 지위를 찾은 딱따구리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교 분석했다.

결국 지원자만 20만 명에 달하는 9급 공무원 시험 도전이 잘못은 아닐지언정, 현명한 선택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다. 그는 “자신만의 생태적 지위가 어디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과학적 사실과 교훈을 동시에 던지며 발표를 마쳤다.

한 편의 연극 같은 유쾌한 발표

최우수상을 수상한 안민혁 씨는 쇼맨십 넘치는 발표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재치 있게 “우뇌, 좌뇌, 두뇌”라며 단어를 센스 있게 나열하고 노래를 부르는 등 한 편의 연극 같은 발표를 통해 심사위원과 시청자의 관심을 주목시켰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안민혁 씨는 쇼맨십 넘치는 발표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사이언스올 캡처

“찾았다 찾았어!”라는 단말마와 함께 인기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노래가 이어지며 발표는 시작됐다. 안 참가자가 호들갑스럽게 찾은 존재의 정체는 바로 ‘향기’. 이는 특정한 향기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프루스트 현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전기 신호로 변환돼 뇌로 향한다”며 그 과정을 정거장에 비유했다. 이러한 전기 신호가 ‘편도체’ 정거장과 ‘해마’ 정거장을 거치며 ‘감정’과 ‘기억’이라는 손님을 태운다는 설명.

안 참가자는 이어 “감정과 기억이란 녀석이 합쳐지면 잊을 수 없는 ‘감정의 기억’이 된다”라며 ‘어머니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하는 된장찌개’ 등을 예로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입고 있던 실험 가운을 벗어던지며 “이처럼 과학이라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나 실험에서만 볼 수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향기처럼 일상의 모든 것들이 바로 과학”이라 강조했다.

심사위원 마음 조종한 강렬한 눈빛

한편 기본에 충실한 모습으로 좌중을 압도한 이도 있었다. 최신 연구 분야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 부가연 참가자다.

부가연 씨는 기상천외한 소품, 화려한 쇼맨십에 의지하지 않고 올곧이 콘텐츠를 전달하는 능력으로만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들으며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 사이언스올 캡처

그는 등장하자마자 “여러분을 눈빛으로 조종하려는 중”이라 선언하며 강렬한 눈빛을 보여줬다. 당연히 실패로 끝난 이 시도는 ‘빛으로 만들어진 집게’라는 생소한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한 부 참가자의 장치.

부 씨는 “빛으로 뭔가를 조종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라며 뒤이어 “하지만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케 하는 열쇠는 ‘빛의 굴절’이다.

그에 따르면 빛은 어떤 물질에서는 빠르게, 어떤 물질에서는 느리다. 이러한 성질을 잘 이용하면 빛으로 물체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 그는 이를 달리기로 비유하며 “갯벌과 아스팔트에 한 발씩 두고 달리면 똑같이 한 발씩 나아가도 갯벌 쪽이 뒤처지기 마련이다. 그럼 우리 몸은 갯벌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빛 또한 마찬가지. 속도가 빠른 물질과 느린 물질의 경계면에서 방향을 바꾸어 굴절되는 데, 이를 잘 활용한 도구가 바로 렌즈다.

신기한 것은 빛을 굴절시키는 렌즈 역시 ‘작용-반작용 법칙’에 의해 빛으로부터 힘을 받는다는 점. 이 점을 활용해 “아주 작은 구슬에 강력한 빛을 쐬어 준다면 ‘빛 집게’로 잡은 것처럼 구슬을 마음대로 조종 가능하다”는 것이 부 씨의 결론이다.

이는 ‘세포 속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운반하는’ 모터 단백질 등 작은 것들을 연구하는 생물학 연구에 특히 유용하다. 부 씨는 “이렇게 빛의 굴절이라는 익숙한 현상도 원리와 쓰임을 잘 생각해보면 새로운 분야에 새로운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대상을 차지한 부가연 씨는 하반기 영국서 진행될 페임랩 국제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며, 10명의 본선 진출자 모두 향후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활동할 예정이다. ⓒ 사이언스올 캡처

결국 부 씨는 기상천외한 소품, 화려한 쇼맨십에 의지하지 않고 올곧이 콘텐츠를 전달하는 능력으로만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들으며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부 씨는 하반기 영국서 진행될 페임랩 국제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며, 10명의 본선 진출자 모두 향후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활동할 예정이다.

(534)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