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기계로 변한 착한 유전자

[2019 우수과학도서] 2019 우수과학도서 - 진화의 배신

진화의 배신 ⓒ 부키

인류의 유전자가 진화하면서 인간은 비만, 고혈압, 우울증 등의 질병도 함께 얻었다. 착한 유전자가 우리 몸속 살인 기계로 변한 유전자의 비밀, 인류 진화의 역사로 현대병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의 배신’은 현대병의 해결책을 함께 제시한다.

인류 진화로 얻게 된 현대병

인간이 20만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멸종을 면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경이로울 정도로 훌륭한 유전자 덕분이었다. 진화의 여정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어 두고, 소금을 간절히 원하고, 불안해하거나 우울해지는 전략을 취하고, 신속하게 혈액을 응고시키는 보호 체계를 발달시켰다. 이런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인간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형질들이 최근 겨우 2세기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목숨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빼앗아 가는 주요 현대병의 원흉으로 돌변해 우리의 건강과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도왔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장악하는 근원이 된 바로 그 특징들이 어째서 오늘날 이토록 치명적인 독이 되어 버린 것일까?

저자는 역사와 진화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유익한 유전자들이 어떻게 자연 선택되고 실제로 작동해 왔는지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이제 어째서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불안과 우울증, 심장 질환과 뇌졸중을 부르는지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입증해 보인다. 나아가 유전자가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류 역사상 이 초유의 사태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한다.

유전자가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못 따라잡고 있다

살찌기보다 살빼기가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체중이 감소할 경우 우리 몸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최소 일곱 가지의 호르몬과 분자의 분비가 상승한다. 게다가 이 물질들의 분비 수준은 한번 높아지면 몇 년간 지속된다. 여기에 비만증의 ‘허용’ 인자라고 불리는 육체 활동량 감소와 고열량의 값싼 음식이 넘쳐나는 상황이 어려움을 더욱 부채질한다. 또 현대인이 먹는 고기에는 수렵·채집인들이 먹었던 고기에 비해 지방이 훨씬 많이 들어 있다. 게다가 우리 몸은 지방 저장 능력까지 탁월하다.

상황은 달라졌는데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몸을 작동시키는 것은 다른 유전 형질들도 매한가지다. 우리 조상들은 하루에 0.7그램의 나트륨만 섭취하고도 잘 살았다. 반면에 현대 미국 성인은 일일 평균 3.6그램, 세계적으로는 평균 5그램을 섭취한다. 사실 우리는 하루에 1.5그램 이상의 나트륨은 필요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몸의 탈수 방지를 위한 과잉보호 조절 장치는 어김없이 작동하고, 나트륨 보존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고혈압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본태성 고혈압’이 발생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목숨을 건 폭력 투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우리는 이제 육체적 폭력을 동원한 생사를 건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나 비즈니스에서 경쟁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위상을 확보한다. 그럼에도 폭력과 비명횡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생존 본능은 두려움, 불안, 공포, 순종적인 태도, 슬픔, 우울함이라는 보호 전략을 변함없이 작동시킨다. 그리하여 살해당하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가 불안과 우울증을 유발해 원래 피하려 했던 폭력 자체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과다 출혈로 죽을 위험이 낮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봉합술, 수혈, 줄어든 폭력, 그리고 향상된 산과 의료 기술 덕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혈액 응고에 아주 능했던 사람들의 자손인 탓에 그 유전적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고, 이는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과 직결된다. 오늘날 미국에서 혈전으로 인한 질병은 모든 사망 원인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는 외상, 살인, 자살, 출혈성 뇌졸중, 궤양 등 출혈 증상으로 인한 사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네 배 이상 많다.

이 모든 역설적 상황이 빚어진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다시 한번 예리한 진단을 내놓는다.

“우리는 뇌를 사용해 환경에 대단한 변화를, 그것도 이전에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속도와 방향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반면에 세대가 흘러도 이전 세대의 DNA를 ‘복사기로 복사하듯’ 완벽하게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우리 신체는 계속해서 느린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의 변화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인류는 진화 역사상 처음으로 맞이한 이 사태를 극복하고 또다시 생존에 성공할 수 있을까?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인간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형질들이 최근 겨우 2세기라는 짧은 기간 사이에 목숨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빼앗아 가는 주요 현대병의 원흉으로 돌변해 우리의 건강과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현대병의 해법과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2030년에 이르면 고소득 국가의 평균 수명은 여성 85세, 남성 80세로 높아질 전망이지만, 주요 현대병은 더 한층 위세를 떨치며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리라 전망된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 골드먼 박사는 의지력에서부터 최첨단 기술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해법을 살피고 대안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먼저 과잉보호 형질을 확산시키는 유전자가 문제라면 원인이 되는 그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돌연변이 유전자로 그것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유전자라는 본성이 아니라 양육(후천적 학습)이라는 환경 적응 과정에서 타개책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몸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의지력(정신력)으로 우리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도 길이 될 수 있다.

다이어트, 운동, 소금 섭취 줄이기, 심리 치료, 공공 프로그램 등에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고 때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와 노력이 완전히 가망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한계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부디 오해 없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죄책감과 가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는 대신 우리는 뇌를 써서 우리의 체질을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현대 과학과 의학, 즉 약과 수술이다. 예를 들어 비만 치료제로 공식 승인된 약이 다섯 가지가 있으며,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또 빛으로 미각 세포를 속이거나 지방 세포를 조작하는 방법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장 속 박테리아를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바이옴 조작 기술 같은 것도 있다. 그리고 ‘비만 대사 수술’은 병적 비만과 비만 관련 당뇨병에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최첨단 기술들의 성공 가능성도 존재한다. 자연 선택보다 더 빨리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유전자 치료법, 불리한 DNA와 RNA를 직접 수정・수선하는 방법, 유전자를 후성유전학적으로 변화시켜 기능을 바꾸는 방법 등이 그런 예다.

저자는 정밀 의학 시대의 도래에서 긍정적인 전망을 엿본다. 현대 생물학과 의학의 발달로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법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으며, 태어나기 전부터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맹신과 남용은 금물이다.

목표는 우리 모두가 약에 취한 좀비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와 있거나 미래에 개발될 치료법을 신중하게 활용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한 삶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야기하게 된 것도 우리 뇌의 힘 때문이다.

그러니 “20만 년에 걸쳐 살아남은 인류가 성공적으로 헤쳐 온 모든 어려움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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