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어둠 속에서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15) 코맥 매카시 소설 ‘로드’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로드(문학동네 펴냄)’는 폐허로 변해버린 세계에서 생존을 위해 길을 떠난 한 남자와 소년의 이야기다.

‘로드(The Road)’는 소설의 제목 그대로 모든 일이 ‘길(road)’ 위에서 시작해서 ‘길(road)’에서 끝이 난다. 이들은 남쪽으로 이동한다. 남쪽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쪽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이들은 과연 무사히 남쪽에 갈 수 있을까. 소설 ‘로드’는 인간의 잔인함과 사랑을 동시에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살육을 하는 인간과 선의를 가지고 서로 보듬어 안아주는 인간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야할 ‘길’을 묻는다.

불을 운반하는 자, 남쪽으로 이동하다

남자가 깜깜한 숲에서 잠이 깼다. 그는 손을 뻗어 옆에 소년이 잘 자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남자와 소년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 두 사람은 매일 길 위에서 자고 아침을 맞는다.

이미 세상은 낮에도 태양이 보이지 않는 더러운 잿빛으로 변한 지 오래다. 지구에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세상은 온통 재로 덮여 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색이 있는 모든 것은 죽어 비틀어 나동그라졌다.

소설 ‘로드’는 2009년 존 힐코트 감독이 영상으로 재현했다. ⓒ ㈜누리픽쳐스

황폐하고, 고요하고, 신조차 없는 땅. 계절도 날짜도 알 수 없다. 남자는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났다. 남자는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애썼다.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 무엇이든 희미하게나마 색깔이 있는 것을 찾았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야.”

남자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두려움을 가질 아들을 위해 남자는 자신들이 ‘불을 운반하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보다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남쪽으로 걸어갔다.

만약 이들처럼 모든 것을 잃고 길에서 살아야 한다면 생존을 위해 무엇을 챙겨 떠나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최소한의 음식도 필요하다. 약간의 의약품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방수포’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됐다. 길 위에서 잠을 자는 그들에게 빛바랜 파란 방수포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파란 방수포는 바닥의 찬기를 막아 그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마른 콘플레이크를 먹을 때 식탁보 대신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파란 방수포와 식량은 이들에게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지옥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서로 나눌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다. ⓒ ㈜누리픽쳐스

이러한 물품은 다른 생존자들을 만나면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하게 간직해야 했다. 남자는 파란 방수포를 곱게 접어 카트에 넣고 카트를 밀었다. 카트 옆에는 오토바이 거울을 매달았다. 다른 생존자들이나 들짐승 등이 쫓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면 무거운 카트는 포기하고 달아나야 한다. 그래서 두 남자는 배낭을 멨다. 배낭 안에는 부피가 작지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었다.

표지의 그림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나타내준다. ⓒ 김은영

마지막 장에서 느끼는 전율은 바로 희망

지구를 이렇게 만든 것은 핵전쟁 때문인지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의 여파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지금 지구는 몹쓸 병에 걸렸고 그래서 사람들도 대부분 죽어 사라진 지 오래다.

길 위에는 남자와 소년이 있을 뿐이다. 아니, 사실 남자와 소년만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온통 폐허가 된 길 위에도 생존자는 있었다. 물건을 빼앗는 생존자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두려운 존재들은 ‘사냥꾼’이었다. 사냥꾼들은 다른 생존자들은 포획했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음식’으로 활용했다.

남자는 총을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도구로 간직한다. ⓒ ㈜누리픽쳐스

이러한 처절한 현실 앞에 남자가 택한 결론은 ‘총’이었다. 남자에게는 총이 있었다.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아들과 자신에게 겨눌 소중한 총이었다. 남자는 인간 사냥꾼에게 잡히기 전에 아들에게 입안에 총구를 넣어 방아쇠를 당기는 방법을 다시 숙지시킨다.

총이라는 무기가 적이 아닌 나와 내 가족에게 사용될 정도의 처절한 환경이다. 죽는 것보다 잡히는 것이 더 두렵고 무서운 상황의 세계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들이 걷는 길 위는 불행과 재난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다행히 소설의 끝은 달랐다. ‘서광’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희망이 있다. 같은 인간에게 거는 마지막 희망. 그 실 날 같은 희망이 소설 내내 느껴지는 좌절과 어둠을 걷어내기에 충분하다. 소년이 길을 떠나게 되는 마지막 장은 이 소설을 읽어야 할 가치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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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한얼 2020년 8월 3일12:47 오전

    읽고 싶은 소설입니다. 사람들이 사라진 후 남쪽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지구에 어떤 재앙이 닥쳐서
    지구는 몹쓸 병에 걸렸고 그래서 사람들도 대부분 죽는다는 것은 허구이지만 있을 수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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