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살아 있는 닭을 시한장치로 사용했다?

[밀리터리 과학상식] 영국의 황당한 핵지뢰 블루 피콕

영국의 ‘블루 피콕’ 핵지뢰 시제품 ⒸGetty Images

1980년대만 하더라도 소년 잡지에 단골로 나오던 얘기가 있었다. 바로 미국-소련 간 전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멸망 시나리오가 그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와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권이 몰락하면서 강대국 간의 핵전쟁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On The Beach)’,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페일 세이프(Fail Safe)’, ‘혹성 탈출(Planet Of The Apes)’ 등의 SF 영화들에서도 나타나듯이 당대인들에게 핵전쟁의 공포는 엄존하고 있었다.

냉전이 종결된 지도 근 30년이 지나오면서 당대의 기밀문서가 하나둘씩 공개되고 있다. 그런 자료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긴박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을까?’ 싶은 얘기들이 한둘이 아니다. 영국의 ‘블루 피콕(Blue Peacock, 푸른 공작)’ 작전 역시 당황한 작전 중 하나다.

냉전 당시 소련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구 서독 등 서유럽 주요 국가들 역시 미국을 위시한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일원으로, 유사 시 소련을 위시한 바르샤바 조약군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NATO의 군사력은 바르샤바 조약군에 비해 수적으로 명백히 열세였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핵무기 만능주의 사상이 퍼지면서 유사시 핵무기를 아낌없이 사용해서라도 적군의 진격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핵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은 물론 항공기에서 적기에 발사하는 공대공 핵미사일, 해군 군함에서 적함에 발사하는 핵어뢰, 심지어는 육군의 야포에서 발사하는 핵 포탄, 자체 이동능력이 없는 고정식 핵폭탄인 핵지뢰까지도 개발된다. ‘블루 피콕’ 작전은 그러한 핵지뢰 개발 계획 중 하나였다.

‘블루 피콕’ 작전에서는 서독 북부 평야에 핵지뢰를 매설했다가, 유사 시 NATO군이 바르샤바 조약군에게 밀리게 되면 이것들을 격발시켜 바르샤바 조약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최대한의 타격을 입히고자 했다. 이에 따라 1957년 7월 영국 육군은 폭발력 10킬로톤급(나가사키 원폭의 약 절반), 중량 7톤의 핵지뢰 10발을 주문했다. 격발 시 직경 375m의 화구를 만들어내고, 상당한 면적에 방사능 낙진을 뿌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이 핵지뢰들은 당연히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고도 원격으로 격발되어야 했다. 영국 육군은 핵지뢰로부터 5km 이내에서 원격조종식으로 기폭, 또는 수동 안전장치 해제 8일 이후에 시한식으로 기폭되는 기폭장치를 요구했다.

문제는 이 핵지뢰들이 매설될 현지의 기후였다. 서독 북부의 지하는 의외로 온도가 낮았다. 특히 겨울에는 매우 추워졌다. 그리고 전자 기술이 걸음마 단계이던 당시로서는, 그러한 저온 환경에서도 멀쩡하게 작동할 원격조종식 기폭장치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폭탄의 기폭장치의 신뢰성을 높일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중에서 가장 황당한 방식은, 닭의 체온을 시한장치의 타이머로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유사 시 폭탄의 기폭장치 내에 있는 새장에 닭을 넣는다. 이 닭에게는 8일간을 버틸 사료와 물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닭이 들어간 기폭장치는 닭이 사료를 다 먹고 굶어 죽어서, 체온의 공급이 끊어지면 기폭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블루 피콕’ 작전은 2발의 시제품이 생산된 이후 1958년에 영국 국방부에 의해 취소되었다. 우선 세계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서독 북부와 영국 본토는 비교적 지척이다. 핵지뢰가 격발되어 대량의 방사능 낙진이 발생할 경우, 영국 본토에도 낙진이 떨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우방국인 서독 영토 내에 핵지뢰를 매설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및 윤리적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이 모든 사실이 공개된 것은 소련이 붕괴하고도 무려 13년이 경과한 지난 2004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핵지뢰의 공포는 상존하고 있다. 냉전기 당시 소련 역시 다양한 핵지뢰를 개발했고, 이 중에는 1인 도수운반이 가능한, 옷가방 크기의 초소형 핵지뢰(폭발력 최대 10킬로톤)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이후 혼란기에 이러한 초소형 핵지뢰 중 일부가 불법 유출되어, 오사마 빈 라덴 등 테러리스트의 손아귀에 넘어갔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물론 러시아 정부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구 소련의 핵무기가 도난당했다는 이러한 주장은 게임 ‘배틀필드 3’ 등 다양한 문화 상품의 중심 아이디어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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