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살아있다는 기쁨, ‘삶은 계속된다’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11) 데이비드 맥킨지 감독 영화 ‘퍼펙트 센스’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한 중년 남성이 병원을 찾았다. 트럭 운전수인 그는 갑자기 냄새를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의사들을 그를 격리시키고 ‘감염’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를 찾았다.

지난 2011년도에 개봉한 데이비드 맥킨지 감독의 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와 닮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모든 사람들이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잃어버리는 전염병에 걸린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영화 ‘퍼펙트 센스’는 그 과정을 그린다. ⓒ 아트서비스

후각과 미각이 차례로 사라지는 신종 바이러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 의심 증상에 인후염, 두통, 근육통, 오한을 동반한 호흡기 증상에 후각과 미각 소실 여부를 포함했다.

질병관리본부(KCDC)도 5월부터 코로나19 대응지침을 개정하고 후각 및 미각 소실을 코로나19 임상증상에 추가했다.

영화 ‘퍼펙트 센스’에 등장하는 신종 바이러스도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세를 보인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후각과 미각을 잃게 된다.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먼저 슬픔을 느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 일 등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버스에서, 시장에서, 상점에서 홀로 흐느껴 울었다. 그렇게 몸서리치게 슬픔을 느끼고 난 후에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전염병이 퍼지면서 이 병에는 ‘고도 후각 장애 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인류는 서서히 후각이 상실됐다. 요리사는 더 이상 재료가 신선한지 어떤지 냄새로는 알 수가 없다. 음식의 향도 느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냄새를 기억하려 한다. ⓒ 아트서비스

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됐다. 냄새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요리가 준비됐다. 후각을 잃은 사람들은 더 짜고 더 맵고 더 달고 더 시큼하고 더 강렬한 맛을 요구했다. 그렇게 일상이 돌아갔다.

고약하고 지저분한 냄새를 맡지 않는 것은 행운이었지만 냄새와 함께 과거도 사라졌다. 수많은 냄새에서 떠올릴 수 있는 추억도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약간은 매캐한 디젤 기름에서 생각나는 유년 시절 ‘페리호의 추억’이나 할머니 앞치마에서 슬며시 나던 계피 향이 주던 그리움을 잊어갔다.

후각을 잃고 추억도 잃었지만 사람들은 또 살아갔다. 새로운 삶에 적응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공포감을 느끼며 발작을 일으켰다.

한 명이 발작을 일으키면 주변 사람들을 모두 감염시켰다. 전염 속도는 빨랐다. 두려운 감정이 사라지고 찾아온 것은 지독한 허기였다. 사람들은 얼음 위에 놓인 냉동생선을 물어뜯었고 바닥에 떨어진 꽃다발을 주어 입에 쑤셔 넣었다.

감각이 사라진 세상,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공포감이 사라지자 미각이 상실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레스토랑과 시장은 초토화가 됐다. 하지만 몇 주 만에 일상은 다시 돌아갔다. 사람들은 예전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슬픔, 공포, 광기 등 각 감정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초토화된 도시가 남았다. ⓒ 아트서비스

하지만 광기에 차오르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태국에서 시작된 또 다른 바이러스로 인해 거리는 화가 나 상점을 부시고 약탈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세계 모든 도시가 아수라장이 됐다. 그렇게 한바탕 광기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청각을 잃었다.

세상은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과 그래도 세상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양분됐다.

세상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일터로 복귀했다. 시장과 상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밴드들도 악기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지만 사람들은 진동으로 음악을 느꼈다.

후각도 미각도 잃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는 것. 따스한 온도로 마음을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닥쳐올 마지막 최악의 상태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초토화된 도시 속에서도 주인공 마이클(왼쪽 이완 맥그리거)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는 “삶은 계속 된다”고 말을 건넨다. ⓒ 아트서비스

사람들의 감정을 일깨우고 감각을 사라지게 하는 이 신종 바이러스는 원인도, 감염경로도 알 수 없다. 치료법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또 살기 위해 일터로 향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고단한 삶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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