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을 외치다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10) 김탁환 작가의 ‘살아야겠다’

“살려야 한다.”

5년 전 서울대학교 병원 39 병동 앞에는 하얀 A4 용지에 진한 궁서체로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당시는 국내 치사율이 20%에 이르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가 국내를 강타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엄중한 시기였다.

서울대학교 병원 측은 해당 문구를 보면서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려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진들의 절실한 마음과는 달리 ‘살려야 한다’는 문구는 ‘본의’와는 다르게 사회에 큰 논란과 파장을 일으켰다.

2015년 당시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퍼진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MERS-CoV). ⓒ 위키피디아

당시 정부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컨트롤 타워 부재와 초동 대처 실패 등 총체적인 대비 소홀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 못했다. 의료진들의 절박한 다짐을 나타내는 ‘살려야 한다’는 문구는 대중들 사이에서 희화화되며 수많은 패러디(parody)를 낳았다.

중동 바이러스가 왜 우리나라에서만 확산되었을까

김탁환 작가의 장편소설 ‘살아야겠다(도서출판 북스피어 펴냄)’ 또한 ‘살려야 한다’는 문구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소설 ‘살아야겠다’는 메르스 당시의 상황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사태와 닮았다.

김탁환 작가는 메르스 당시 실제로 고초를 겪었던 환자들을 취재해 당시 상황을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 김은영/ Sciencetimes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갔고 한 명의 확진자라도 나오거나 접촉 상황이 의심되는 학교들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휴교를 했다. 사람들은 비말로 확산되는 바이러스 특성상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된 병원 출입을 최소화하는 한편 외출을 삼갔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방안은 지금과 달랐다. 당시 정부는 한 명의 바이러스 감염자를 막지 못해 총 186명의 확진자와 36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김탁환 작가는 당시의 답답한 상황을 담담하지만 절망적으로 그려낸다. 그가 생각하는 당시 정부와 병원은 국민과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의지가 없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저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정부와 병원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깨어진 자리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사자성어가 가장 잘 어울렸다. ‘헬(Hell) 조선’이기도 한 시대였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는다

버스나 기차 그리고 지하철을 탈 때 마스크를 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났다. 마스크를 쓴 사람을 오히려 환자인 양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던 사람들도 있었다. 국민들은 19일이나 병원 명단을 감춘 정부를 믿지 않았다. 정부는 메르스 감염자가 나왔던 병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알파벳으로 공개된 병원의 이름을 추적하여 알아냈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감염 의심자를 최초 신고 접수한 지 33시간이 지난 뒤에야 검체를 채취했고 검사 결과도 44시간이나 소요됐다. 질본의 이러한 소극적인 대응 탓에 역학조사는 항상 뒷북을 쳤다. 뒤늦은 역학조사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었다.

메르스는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였다. 코호트(cohort isolation) 격리가 필요했지만 병원들은 일정 기간 동안 코호트 격리를 하게 되면 병원 수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며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코호트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밀접 접촉자만 우선 격리하시죠.”

병원들은 코호트 관리를 비롯해 메르스 환자 관리에 소홀했다. “아니, 메르스 환자가 또 오겠어?”라는 방심이 주요 원인이었다. 방심을 부수고, 중첩된 우연을 가르면서 메르스 바이러스는 서울에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전야(前夜)였다.

응급실에 들어간 환자들은 생사를 오가며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메르스 당시 환자들은 고통과 싸우면서도 국민들에게 잊히며 외롭게 사투를 벌여야 했다. ⓒ 게티이미지뱅크

전염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인간다운 예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태어난 순서대로도 아니지만 누구나 죽을 때에는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길 바란다.

하지만 메르스로 인해 병동에 갇힌 환자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지병이 있는 특수 사례 환자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중환자로 분류되면서 면회가 철저하게 금지되었고 홀로 힘들게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도 가족은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따르지 못했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8조 사망자 장례 관리 지침에 따라 시신은 방수용 비닐 백에 넣고 밀봉한 후 표면 소독하고 또 다른 비닐 백에 처음의 비닐 백을 넣어 이중 밀봉되어 전용 화장시설로 운구됐다. 소설 속 마지막 사망자로 나오는 환자 김석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 김석주의 서사는 당시 메르스에 감염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번호 80번으로 분류된 그는 초기 메르스에 감염되어 완치가 되었으나 다시 증세가 발현해 병원에 실려 간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메르스 환자가 아니었음에도 전파력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에서 전염병 환자처럼 격리돼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김석주를 통해 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죽음으로 몰고 간 의료 시스템과 매뉴얼에만 치중하는 무능력한 사회 체계를 비판한다. ‘살아야겠다’는 바로 ‘살려야겠다’는 문구에 대응하며 끝까지 ‘살고 싶다’며 국민들이 외치던 염원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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