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사회의학의 창시자 ‘루돌피 피르호’

[TePRI Report] 세계사 속 과학기술

20세기의 위대한 미술가를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대다수 사람들이 피카소를 지목할 것이다. 미술계 내부의 평판도 유사한 듯하다.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락의 삶을 다룬 영화 ‘폴락’의 앞부분에는 피카소의 이름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화폭을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 허공에서 물감을 듬뿍 찍은 붓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심지어 휘둘러서 화폭에 떨어진 물감이 자유분방한 패턴을 형성하게 만드는 특유의 기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폴락이 술을 잔뜩 마시고 허름한 집으로 돌아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젠장, 그놈이 다 해버렸어! 다 해버려서 남아있는 게 없다니까. 그놈, 그 피카소라는 놈이 벌써 다 해버렸어!”

과연 피카소는 미술가들을 겁먹게 하고 절망시키는 미술가다. 피카소 본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음을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파블로, 네가 군인이 된다면, 틀림없이 장군이 될 거야. 성직자가 된다면, 틀림없이 교황이 될 거야. 나는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피카소가 되었다.”

혹시라도 이 발언을 흉내내지 말기 바란다. 피카소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당신을 외면할 테니까 말이다.

혹시 자연과학계에도 피카소 같은 인물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다.

과거 독일의 10마르크 지폐에 등장했던 가우스는 ‘수학의 왕’으로 불린다.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도, 동료 수학자들을 절망시키곤 했다는 점에서도 가우스는 피카소를 닮았다. 그리고 또 한 명, 동료 의사들로부터 ‘의학의 교황’이라는 엄청난 칭호를 받은 루돌프 피르호가 있다.

루돌프 피르호 ⓒ 위키피디아

루돌프 피르호 ⓒ 위키피디아

피르호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이 느슨한 연방 체제 아래에서 보수적 질서로 복귀하던 1821년에 태어나 유럽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나던 1848년을 몇 년 앞두고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활동 무대인 베를린에서는 1848년 3월에 시민들이 봉기했는데, 공교롭게도 피르호는 그해 2월에 병리학자로서 슐레지엔 동남부로 파견되었다가 3월에 사회개혁가로 변신하여 돌아왔다.

파견 목적은 그 지역에서 티푸스가 창궐하는 원인을 알아내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피르호의 진단은 명확했다. 그 유행병의 원인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정치의 실패로 많은 주민이 동물처럼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티푸스가 창궐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피르호는 ‘사회의학(social medicine)’이라는 새로운 의학적 관점의 창시자가 되었다. 슐레지엔의 교회를 비판하고 관료들을 비난하고 귀족들을 조롱하며 돌아온 피르호가 곧바로 마주친 베를린 시민들의 바리케이드를 외면했을 리 없었다. 그는 의사로서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 전단을 뿌렸다. 이런 문구를 포함한 전단이었다.

“의학은 정치적·사회적 삶에 개입해야 한다. 의학의 과제를 정말로 실행하려면,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들을 뽑아내야 한다.”

이런 피르호의 태도를 의아하게 여기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정치를 한편으로 선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혐오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 의사가 정치와 사회로 관심을 넓히는 것은 수상쩍은 행동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의학의 과제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임을 상기하라.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점을 돌이켜라.

의학은 인간의 동물적 생명만 다뤄야 할까? 만약에 그렇다면 정신건강의학의 대부분이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병의 분자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집중하는 현대의학의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 전체를 바라보면, 의학은 생물학에 못지않게 사회학과도 긴밀히 교류해야 함을 부인하기 어려워진다.

예컨대 지금 우리 사회의 참담한 자화상인 자살률을 생각해보라. 벌써 여러해째 세계 최고인 한국의 자살률을 설명하고 적절한 처방으로 낮추려면, 생물학적 연구보다 사회학적 연구가 더 요긴할 것이다.

피르호는 이렇게 말한다.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다름 아니라 큰 규모의 의학이다.”

왜 아니겠는가? 결국 사람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의학의 목표요, 정치의 목표가 아닌가.

물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기는 어렵다.

일찍이 플라톤이 던진 이 인류 최대의 질문은 철학 전체의 중심축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잘 사는 삶, 바꿔 말해 좋은 삶은 우리의 생물학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학적 측면도 아울러야 한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피르호는 정치에 뛰어들어 ‘독일 진보당’을 공동 창립하고 보수파의 거물 비스마르크와 대결했으며 독일이 통일된 후에는 제국의원까지 지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의학적이며 정치적인 명언을 남겼다.

“보편 교육을 추구하는 국가는 보편 건강도 추구해야 마땅하다. 건강이 먼저고, 교육이 나중이다! 가장 많은 이익이 남게 돈을 쓰는 방법은 건강을 위해 쓰는 것이다.”

다음 문장은 더 간결하고 힘찬 명언이다.

“오직 교육, 복지, 자유만이 민중의 지속적 건강을 보장한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더니, 사회의학의 창시자로서뿐 아니라 현대 병리학의 아버지로도 존경받는 피르호는 당대에 새로운 의학적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던 ‘병원체 이론(germ theory)’을 거부하기도 했다.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가 주창한 병원체 이론은 외부에서 몸에 침입한 병원체들이 병을 일으킨다고 보았지만, 피르호는 세포 내부의 비정상적 활동들이 병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물론 피르호도 병든 조직에서 미생물들이 발견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명이 달랐다.

먼저 조직이 내적 원인에 의해 병들고 나면 외부의 미생물들이 자연스럽게 거기에 깃드는 것이라고, 외부의 미생물들이 조직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피르호는 설명했다.

이 설명은 의학의 사회적 차원을 중시하는 피르호의 기본 관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인간의 삶 전체를 고려해야만 병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우연한 외부 원인이 병을 일으킨다는 이론은 그가 보기에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요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축에 드는 젊은이들은 즐겨 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그들의 관심이 생물학에만 국한되거나 심지어 본인의 경제적 풍요에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의학의 교황’ 루돌프 피르호는 이미 150년 전에 의사로서 사회와 정치를 주목했다. 의학은 자연과학과 사회 과학이 만나는 지점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의사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전문가라면, 인문학과 예술도 의사의 관심 분야여야 마땅하다.

가우스는 빈곤층 출신이지만 뛰어난 수학적 업적으로 불멸의 지위에 올랐다.

피르호는 귀족으로 격상하여 ‘폰 피르호’가 될 기회를 얻었지만 역시나 사회개혁가답게 신분 상승을 거부했다.

잭슨 폴락은 알코올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자동차 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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