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사회가 변하면 과학자도 변해야

[과학지식인 열전] 과학의 전통과 현장의 윤리

“경험적 연구를 실행한 경험이 전혀 없는 윤리학자로 하여금 연구 윤리 규정을 제정하도록 하거나, 윤리학적 배경이 없는 심리학자로 하여금 연구 윤리 원칙 및 규정을 만들도록 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1

인문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연구윤리, 특히 과학기술윤리는 현장과 괴리되어 있다. 과학기술자들이 연구현장에서 경험하는 윤리적 딜레마의 대부분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부정행위와 같은 특수한 사례나,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거대담론과는 동떨어져 있다. 과학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윤리문제는 데이터의 의미, 과학을 둘러싼 규칙들, 동료들과의 관계, 연구의 압박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들을 발생시킨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현재 과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며, 따라서 더욱 현실적인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한국사회는 물론 현대의 과학자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은 더욱 크고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문제는 거론조차 할 수 없다.


두 개의 연구윤리

과학의 전통이 오래된 사회에서 연구윤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황우석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윤리적 각성에만 집중하는 한국사회의 그것과 다르다. 스웨덴연구회에서 연구자들과 대학원생들을 위해 출판한 ‘올바른 연구 실천이란 무엇인가?’2 라는 윤리지침과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인문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연구윤리의 이해와 실천’3 이라는 두 문건의 비교는 이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선 두 문건은 연구윤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스웨덴연구회의 문건(이하 스웨덴 문건)에서 연구윤리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윤리는 법적 규칙이나 규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윤리문제를 공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윤리란 기본적으로 적절한 수행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이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북돋우며 활성화하는 것이다.”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작성된 문건(이하 한국 문건)은 연구윤리를 연구부정행위를 방지하는 윤리적 원칙으로만 파악한다. 이 문건에서 연구윤리란 “연구의 계획, 수행, 보고 등과 같은 연구의 전 과정에서 책임 있는 태도로 바람직한 연구를 추진하기 위해 지켜야 할 윤리적 원칙”이다. 또한 “연구윤리는 연구내용의 윤리는 물론 연구절차의 윤리를 포함하는 것이고, 사실상 내용과 절차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연구윤리의 핵심은 “연구부정행위가 발생한 원인을 진단하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두 문건이 연구윤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연구윤리를 ‘연구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지침’으로 생각하는가, 혹은 ‘연구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원칙’으로 생각하는가에서 비롯된다. 스웨덴 문건이 연구윤리를 통해 건강한 연구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면, 한국 문건은 연구윤리를 통해 연구부정을 막고자 하는 일차적인 목표를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문건의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스웨덴 문건에서 ‘연구부정행위’는 가장 마지막 장에서 짧게 다루어지는 반면, 한국 문건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연구부정행위’를 연구윤리의 핵심적인 사례로 등장시킨다. 즉, 전자는 연구윤리의 핵심을 ‘긍정적’인 연구발전에, 후자는 연구부정행위를 막는 ‘부정적’인 규칙과 규정의 제정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연구의 진실성을 둘러싼 시각의 차이

연구부정행위에 초점을 맞출 때, 연구윤리는 연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즉, 연구부정행위의 방지만을 목표로 하는 소극적 연구윤리는 연구의 자유를 방해하는 개인적 도덕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올바른 연구 실천 기준은 수준 높은 연구를 촉진하고,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 사이나 연구자와 일반대중 사이에 바람직한 관계를 조성하며,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얻은 결과가 널리 수용되는 기존 관념들과 충돌할 때 발생 가능한 갈등을 피하겠다고 몸을 사려서는 안 된다.”4


연구의 진실성을 두고도 두 문건의 시각은 상반된다. 스웨덴 문건은 연구의 진실성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한다. 연구의 진실성이란 연구자들이 “자신의 데이터가 지지하는 결론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심지어 어떤 관점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을지라도, 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연구를 통해 산출해 내고자 했던 지식을 얻을 수 없도록 만드는 어떠한 구속으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워야” 하며, 이렇게 얻어진 연구결과, 즉 “‘진리’를 존중하는 것이 연구자에게는 ‘진실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 문건에서 연구의 진실성은 연구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행위로 해석된다.

또한 스웨덴 문건은 실제로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겪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이 문건이 FFP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들이 아니라, 연구의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 문건은 연구자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프로젝트 선정, 연구비 신청, 자료의 처리와 통계분석의 문제 등을 상세하게 다룬다. 반면 한국 문건은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때에도 다시금 연구부정행위를 방지하려는 소극적인 연구윤리를 제공하거나,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윤리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

윤리적 규범과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스웨덴 문건5은 과학의 전통 속에서 확립되어온 소박한 과학자 사회의 윤리지침을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피터 메다워가 그의 저서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을 통해 이미 오래 전에 보여준 현장의 경험을 확장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세련되게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피터 메다워는 연구자들이 실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들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젊은 연구자들에게 각성시키고자 했다. 스웨덴 문건도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연구윤리가 연구현장이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겪는 윤리적 지침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 윤리적 지침이란 ‘정직성, 개방성, 체계성, 존중, 공정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과학자 사회가 확립해온 윤리적 전통을 체계화한 것이 로머트 머튼(Robert Merton)의 CUDOS라는 규범체계다. 머튼의 규범은 소박한 연구윤리로서의 지침을 넘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머튼이 발하는 공유주의(communism, C)의 규범은 연구 공동체와 사회 전체가 연구결과를 알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지식은 과학 밖의 이유에서 비밀에 부쳐지거나 감추어져서는 안 되며 따라서 연구자가 갖는 ‘지적재산’ 같은 것이란 과학의 전통 속에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보편주의(universalism, U)의 규범은 과학 활동이 과학적 기준과 관련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따라서 연구결과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연구자의 인종이나 사회에서의 위치 등은 무시되어야 한다.

무사무욕(disinterestedness, D)의 규범은 연구자가 연구에 임하면서 새 지식에 이바지하려는 욕구 외의 다른 동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적 회의주의(organized scepticism, OS)의 규범은 연구자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권위와 상관 없는 비판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가 토대로 삼아야 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는 평가를 유보할 것을 요구한다.


스웨덴 문건은 머튼의 CUDOS 규범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는 CUDOS가 과학이 스스로 정립해온 윤리적 전통의 핵심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것만 잘 지켜진다면 과학자에게 일반 시민들보다 특별한 어떤 윤리적 규범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 연구를 압박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문건은 머튼의 규범에 대해 과학적 지식이 학문 내부에 머무를 때에만 유효하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현대사회의 과학은 산업화되었기 때문에 과학자 사회 내부의 윤리적 규범만을 다루는 머튼의 규칙들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의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머튼이 활동하던 20세기 중반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분명히 과학과 과학자 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급변했다. 이렇게 달라진 연구환경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과학자 사회가 정립해온 윤리적 전통을 재인식하는 것, 그 속에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혹은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를 둘러싼 딜레마가 드러난다.





1. 김항인, ‘연구윤리의 윤리학적 고찰과 확산 방안’, 사회과학의 연구윤리 정립 방안 학술대회, 2007. 140쪽.

2. 스웨덴연구회, ‘올바른 연구 실천이란 무엇인가?’, 좋은 연구,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연구재단 공동번역, 2009.

3. 한국연구재단교육과학기술부, ‘연구윤리의 이해와 실천’, 한국연구재단, 2011.

4. 스웨덴연구회, ‘올바른 연구 실천이란 무엇인가?’, 좋은 연구,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연구재단 공동번역, 2009. 10쪽.

5. 스웨덴 문건을 비롯한 연구윤리의 전통은 한국에서 ‘좋은 연구’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손화철, 윤태웅, 이상욱, 이인재, 조은희, ‘이공계 대학원생을 위한 좋은 연구 Q&A’, 좋은 연구, 연구윤리정보센터, 2010.

(7953)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