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사위보다 늦게 받은 노벨상

노벨상 오디세이(44)

2018.06.19 10:50 이성규 객원기자

1909년 어느 날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로 이상한 모양의 암탉을 품에 안은 농부가 찾아왔다. 농부가 찾은 연구실에는 독일에서 귀국해 그곳에 막 들어온 프랜시스 페이턴 라우스가 앉아 있었다. 볼티모어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초년병 연구원 라우스는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농부를 맞이했다.

당시 종양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암탉의 가슴 부위에 달려 있는 울퉁불퉁한 공 모양의 혹을 보고 근육 조직에 발생하는 암세포, 즉 육종임을 직감했다. 이후 그는 기발한 실험에 착수했다.

암탉의 육종 조직을 떼어서 완전히 갈아낸 후 여과액만을 추출해 그것을 다시 건강한 병아리에 접종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악성 종양으로부터 세포 구성물질과 박테리아를 제거한 다음 세포와는 무관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체를 검출하기 위해서였던 것.

암이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생긴다는 사실을 최초로 규명한 라우스 박사는 56년 후에서야 노벨상을 받았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wwwnc.cdc.gov)

암이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생긴다는 사실을 최초로 규명한 라우스 박사는 56년 후에서야 노벨상을 받았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wwwnc.cdc.gov)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과액을 접종한 병아리에게서 같은 종류의 암이 생겼다. 라우스는 닭의 뼈나 연골, 혈관 등에서 발생한 다른 종류의 악성 종양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실험했다. 결과는 여과액이 모두 정확하게 같은 종류의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테리아도 통과할 수 없는 초미세 여과지의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유기체는 바이러스뿐이다. 라이스는 암탉으로부터 병아리에게 육종을 옮기는 원인물질이 바로 바이러스임을 확인하고, 1910년 11월 학회에 보고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다음해 1월 ‘미국 의학회잡지’에 ‘무세포 여과액에 의한 악성 신생물의 전달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암탉 연구로 발암 바이러스 최초 발견

하지만 이 논문이 라이스의 전공 분야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와 종양 연구를 당분간 그만두게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른 과학자들이 그의 연구 방식대로 실험쥐에게 실험을 했지만 똑같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연구자들은 라우스의 실험이 닭에서만 일어나는 예외적인 현상이라 생각했으며, 라우스 자신도 다른 연구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그의 이 같은 일탈은 20여 년이 흐른 후에서야 끝날 수 있었다. 1932년에 쇼프 박사가 솜꼬리토끼의 양성피부암인 유두종이 무세포 여과액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라우스의 동료이자 제자이기도 했던 쇼프 박사는 이후 그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으며, 그때부터 그는 다시 암 연구로 돌아왔다.

하지만 쇼프 박사의 연구 역시 바이러스의 발암설을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그가 전이시키는 데 성공한 유두종은 포유동물에서 발생하기는 했으나 양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다른 연구자들도 조류 이외에 다른 동물들로부터 바이러스에 의한 암 발생을 밝혔으나,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미생물 유전학의 발전으로 바이러스라는 개념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였다.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대개 그 세포를 죽이므로 암이 발생할 수 없다. 그러나 발암 바이러스들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도 그 세포를 죽이지 않고 서서히 유전인자를 변화시켜 암으로 발전하게 만든다.

1951년 그로스 박사가 생쥐에서 백혈병을 유발하는 RNA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후 포유동물에서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잇달아 발견되었다. 또한 발암 바이러스를 정상세포에 주입할 경우 암세포로 변환되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암이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생긴다는 사실을 최초로 규명한 라우스 박사의 실험은 암 연구의 역사상 혁명을 일으킨 업적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라우스는 호르몬을 이용한 전립선암 치료법을 발견한 C. 허긴스 박사와 함께 196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연구 발표 56년 만에 노벨상 수상

그가 최초의 발암 바이러스인 ‘라우스 육종 바이러스(Rous sarcoma virus)’를 발견한 지 무려 56년 만의 수상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87세였다. 록펠러의학연구소로 유학을 왔다가 라우스의 딸과 결혼한 영국의 신경생리학자 호지킨이 신경생리학에서 이온의 역할을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딴 것이 1963년이니, 그는 사위보다도 3년이나 늦게 노벨상을 수상한 셈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때까지도 라우스가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연구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발암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가 밝혀졌다.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하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임파종을 일으키는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간암을 일으키는 b형 및 C형 간염 바이러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 같은 암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백신들도 개발됐다. 그러나 암의 발생 원인은 여러 가지이므로 바이러스 백신의 예방접종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영국 카디프대학 연구팀이 난소암을 공격할 수 있도록 재프로그램화된 바이러스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건강한 세포는 공격하지 않고 일부 암세포에만 있는 특정 단백질에 달라붙어 공격하는 것이 특징인 것으로 알려졌다.

1879년 미국 볼티모어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곡물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라우스는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미시간대학의 병리학 강사를 지내다 독일 드레스덴대학에 유학을 갔다가 귀국한 후 평생 동안 록펠러의학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말년에서야 암에 대한 연구업적을 높이 평가받게 된 라우스는 노벨상 외에도 미국 국가과학상, 국제연합훈장 등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노벨상을 받은 지 4년 후인 1970년 세상을 떠났다.

(2349)

뉴스레터 구독신청
태그(Tag)

전체 댓글 (0)

과학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