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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사막개미의 뇌에 GPS가 있다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미래 내비게이션의 대안으로 주목

영국 런던의 골목길은 보행자들에겐 천국이지만 운전자들에겐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도 길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 이로 인해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길을 잃기 쉬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런던의 베테랑 택시 기사들은 내비게이션 없이 귀신처럼 길을 잘 찾아간다. 런던대학 연구진은 그들이 어떻게 그처럼 길을 잘 찾는지 궁금해 연구를 진행했다. 숙련된 택시 기사들에게 시뮬레이션 장비로 런던 시내 목적지를 찾아가도록 한 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촬영한 것.

그 결과 그들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치 별도의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는 것처럼 특별한 뇌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그들은 일반인보다 뇌의 해마 부위가 3% 이상 컸다. 뇌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해마는 길을 찾을 때 마치 GPS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영국 에든버러대학 연구진은 사막개미들이 길을 어떻게 찾는지 알 수 있는 정교한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Christian Lischka, unsplash.

영국 에든버러대학 연구진은 사막개미들이 길을 어떻게 찾는지 알 수 있는 정교한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Christian Lischka, unsplash.

이처럼 반복적인 외부 자극이나 학습으로 뇌 기능이나 구조가 바뀌는 현상을 ‘뇌가소성’이라 한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길을 찾는 데 유리하도록 뇌가 변했지만, 반대로 내비게이션만 계속 틀고 다니는 이들은 해마가 위축될 수도 있다.

더욱 놀라운 건 내비게이션을 쓰면 해마가 아닌 다른 뇌 부위까지 기능을 멈춘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갈 땐 해마가, 잘 아는 길을 찾아갈 땐 후뇌량팽대라는 부위가 그 기능을 맡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변 지형이 바뀌어도 길을 잃지 않아

그런데 실험 대상자들에게 각각 익숙한 길과 새로운 길을 찾아가게 한 뒤 뇌파를 측정한 결과,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경우 해마와 후뇌량팽대 두 부위 모두 길 찾기 기능을 중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노인성 치매를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후뇌량팽대 등의 크기가 일반인보다 작은데, 날마다 오가는 길에서도 집을 잃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내비게이션의 사용은 치매를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지속적인 사용만으로 해마가 위축되거나 치매가 빨라진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많다. 우리의 뇌는 런던의 골목길보다 훨씬 복잡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점 하나 크기의 뇌만으로도 놀라운 길 찾기 능력을 보이는 동물이 있다. 참고할 만한 지형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사는 사막 개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개미들은 보통 페로몬이나 주변의 주요 지형 등을 이용해 길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막 개미들은 페로몬을 활용하기 어려운 환경이거나 바람에 의해 주변 지형이 바뀌어도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태어난 후 처음 굴 밖으로 나온 어린 개미조차 정확히 직선거리로 자기 집을 찾아간다.

사막 개미들이 이처럼 정교한 GPS 시스템을 가지는 까닭은 편광 필터처럼 작용하는 여러 겹의 눈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들은 햇빛이 진행할 때 전기장의 방향이 회전하는 성질인 편광으로 집의 방향을 찾는다.

대부분의 곤충과 새가 사용하는 길 찾기 방법인 경로적분도 활용한다. 경로적분이란 평면 위의 어떤 경로를 따라 복소함수를 적분하는 것은 말하는데, 사막개미는 집을 출발해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방향과 걸음 수를 토대로 집까지의 방향과 거리를 정확히 계산해낸다. 또한 사막개미는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생체 나침반도 가지고 있어 이동 거리 및 각도를 측정할 수 있다.

저렴하고 에너지가 들지 않는 내비게이션 모델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 연구진은 사막개미의 이 같은 편광필터 능력과 걸음 수를 계산하는 경로적분 능력을 지닌 보행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편광을 통해 0.4도 단위로 방향을 설정하고 7m의 거리를 이동한 뒤 1㎝의 정확도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영국 에든버러대학의 바바라 웹 교수팀은 사막개미를 모델로 한 센서를 제작했다. 그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충분한 정보가 하늘에 있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동물의 눈과 뇌가 편광된 빛의 패턴을 형성하면서 대기를 통과할 때 햇빛이 어떻게 산란하는지 자세히 알아낸 후 사막개미들이 방향을 어떻게 추정하는지 알 수 있는 정교한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막개미들의 실제 여행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비교한 결과, 사막개미들은 길 찾기 방향을 2도 이하의 오차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그 정보들은 험한 지형을 넘어 먼 거리를 이동한 후에도 개미굴까지의 거리 및 방향을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정확했다. 이 연구 결과는 ‘PLOS 컴퓨터 생물학(PLOS Computational Biology)’에 발표됐다.

내비게이션의 경우 GPS와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거나 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외부 도움 없이 지도를 작성할 수 있어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로 불리는 ‘슬램(SLAM)’ 기술도 가격이 상당히 비쌀뿐더러 아주 복잡한 컴퓨터 계산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사막개미처럼 곤충을 기반으로 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GPS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에너지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다.

바바라 웹 교수팀은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사막개미처럼 빛을 이용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로봇을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이 로봇이 엄청난 기반 시설인 GPS보다 길을 더 잘 찾을 수 있다면, 사막개미의 뇌는 미래 내비게이션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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