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은 ‘독’을 자신의 ‘독’으로 만든다?

먹이 사슬 통해 얻은 독을 무기로 삼는 동물들

‘차화헌불(借花獻佛)’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꽃을 빌려 부처에 바친다’는 뜻으로서, 남의 물건으로 자신의 이득을 꾀한다는 의미다.

이런 교활하고 얄미운 행동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면 의외로 이런 행동을 통해 생존하는 생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주로 먹이 사슬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취하고 있다.

먹이 사슬을 통해 빼앗은 독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동물이 있다 ⓒ proprofs.com

꽃뱀의 독은 두꺼비의 독을 흡수하여 분비

독사 중에서 목덜미 부분에 엇갈려 난 붉은 띠와 검은 띠가 두드러져 흔히 꽃뱀으로 불리는 유명한 뱀이 있다. 바로 유혈목이(Rhabdophis)다. 아시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지만, 북미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독사로서, 독니뿐만 아니라 목과 몸통 주변에도 독샘을 지니고 있는 특이한 뱀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독니의 경우 먹이를 잡아먹는 용도로 사용하는 반면, 독샘은 자신을 잡아먹는 적에게 치명상을 가하기 위해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뱀을 즐겨 먹는 오소리나 족제비가 유혈목이를 먹으면, 독에 중독되어 죽거나 불구가 되기 십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유혈목이의 목과 몸통 주변에는 독을 분비하는 세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독을 분비하는 세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혈목이는 독이 고여있는 독샘을 갖게 되었을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답을 얻고자 미 유타주립대학의 ‘앨런 사비츠키(Alan Savitzky)’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유혈목이가 어떻게 독샘에서 독을 분비하는 지를 규명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그 결과 독샘에 들어 있는 독은 뱀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사비츠키 박사는 “유혈목이의 목 주변에 들어있는 독은 좋아하는 먹이인 두꺼비에게서 추출한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공개하며 “두꺼비 역시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 위한 독을 지니고 있는데, 뱀이 두꺼비를 먹을 때 체내에 있는 독을 뽑아서 자신의 체내에 저장해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사라고 해서 다른 동물의 독까지도 마구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독과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만약 먹이가 독을 품고 있다면 독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을 제거하거나 아예 건드리지도 않는다.

꽃뱀으로 불리는 유혈목이는 두꺼비의 독을 이용하여 독샘을 만든다 ⓒ wikimedia

유혈목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사비츠키 박사의 설명이다. 어차피 자신이 먹은 두꺼비의 독을 따로 저장하거나 배출시켜야 하는 만큼, 목덜미 근처에 위치한 독샘에다가 두꺼비로부터 얻은 독을 담아 두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자신들의 주장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종류의 유혈목이를 준비했다. 두꺼비가 많이 사는 곳의 뱀과 목덜미에 독샘은 있지만 두꺼비가 전혀 없는 섬에 사는 뱀을 대상으로 실험에 들어갔다.

사비츠키 박사는 “두꺼비가 없는 섬에 있던 유혈목이에게 두꺼비를 먹였더니 독샘에서 독이 분비되는 현상을 확인했다”라고 밝히며 “또한 새끼의 경우도 처음에는 독물을 분비하지 않았지만, 자라면서 두꺼비를 먹은 후 독이 생겼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유혈목이는 두꺼비의 독을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내에서 가공하여 독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두꺼비의 독과 유혈목이의 독은 대부분이 같은 성분임에도 독의 효과는 유혈목이의 독이 월등히 강하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사비츠키 박사는 “독을 만드는 과정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남의 것을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생존에 유리하게 된다”라고 소개하며 “아마도 독이 있는 먹이를 먹다 보니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정했다.

조류의 독 흡수하여 자신의 독으로 만드는 민달팽이

‘작은 민달팽이(Elysia rufescens)’도 먹이에 들어있는 독을 흡수하여 자신의 무기로 만드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민달팽이는 복족류에 속하는 생물로서 달팽이 중에서도 집이 없는 종류를 말하는데, ‘작은 민달팽이’는 하와이 근해에서 사는 민달팽이 종류 중 하나다.

작은 민달팽이는 먹이인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기타 물질을 이용하여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동물로 유명하다. 조류가 갖고 있는 엽록체 중 일부를 소화되는 대신에 체내에 남겨 신체가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 프린스턴대의 ‘모하메드 도니아(Mohamed Donia)’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민달팽이가 광합성 외에도 또 다른 재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먹이인 조류가 갖고 있는 미량의 독을 흡수하여 자신의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류의 독을 섭취하여 자신의 독으로 만드는 민달팽이 ⓒ Princeton.edu

작은 민달팽이가 먹이로 삼고 있는 조류는 브리옵시스(Bryopsis) 속의 조류다. 이 조류의 체내에는 수십 가지의 독성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 조류는 미생물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미생물은 조류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독을 제공한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종의 공생 관계인 것이다.

이에 대해 도니아 교수는 “공생하는 미생물은 15가지 종류의 독성 물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밝히며 “대부분의 생물들은 이 독성 물질 때문에 브리옵시스 속 조류 옆에는 얼씬도 하지 않지만, 유독 작은 민달팽이만이 이 조류를 즐겨 먹는다”라고 소개했다.

특히 작은 민달팽이는 조류를 그냥 섭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성 물질의 농도를 10배나 더 진하게 농축할 수 있어서 적을 퇴치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도니아 교수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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