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불확실성 속에서 분별 있게 살기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51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몇 차례 의학적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던 적이 있다. 기형아 검사나 입체 초음파 검사, 정밀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할지 안 해도 될지, 자연주의 출산을 할 것인지 아닌지, 출산할 때는 무통주사를 맞을지 아닐지 등등 나와 아이의 건강과 관련한 문제들로 고민해야 했었다.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것인가 불필요한 것인가를 고민하는 비교적 단순한 경우도 있었지만, 기형아 검사처럼 검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을 때 차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더 심각하고 중대한 결정까지 안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자료를 찾으면서 현명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많은 정보가 현명한 선택으로 곧장 이어지는 일은 흔치 않았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상충되는 정보 간에 무엇을 신뢰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의학적 연구 결과가 아직 충분치 않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 하기도 했다.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닥터 골렘: 두 얼굴의 현대 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보여주고자 한 첫 번째 모습은 바로 의학적 선택을 할 때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이다.

이는 그들의 전작 ‘골렘: 과학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과 ‘확대된 골렘(Golem at Large): 기술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해 그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와도 연결되어 있다.

닥터 골렘세 권의 골렘 시리즈를 통해 콜린스와 핀치는 과학, 기술, 그리고 의학이 유대교 신화에 등장하는 ‘골렘’이라는 인간의 피조물처럼 불완전하고 미숙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흙과 물로 빚은 골렘이 마법의 힘으로 강력해져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지만 그 자신의 힘도, 미숙함도 잘 몰라 서투르고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기술·의학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의학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이 세 권의 골렘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닥터 골렘’에서 콜린스와 핀치가 택하는 입장은 이전 작들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골렘’과 ‘확대된 골렘’이 과학과 기술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을 폭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닥터 골렘’에서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있어서는 과학-여기서는 현대 서구 의학-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구 의학이라는 닥터 골렘이 아직 미숙하고 서툰 것이 사실이지만,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닥터 골렘의 미숙함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닥터 골렘을 다독이고 연마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전 저작들에 비해 훨씬 과학을 옹호하는 입장에 가까이 있다.
이런 입장은 그들이 의학·의료를 ‘과학으로서의 의학’과 ‘구원으로서의 의료’를 구분하는 데서 나온다. 저자들은 이런 구분이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이해관계와 당장의 고통으로부터의 구원(구조)를 추구하는 개인의 이해관계의 차이, 장기적인 선을 추구하는 관점과 단기적인 효과를 추구하는 관점 사이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쉽게 말하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당장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 (혹은 경감시켜 준다고 약속하고), 나의 일신의 안전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되지만, 이것이 장기적이고 공동체적인 관점에서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콜린스와 핀치는 플라시보 효과, 사기꾼 의사, 편도 절제 수술, 비타민 C의 암 예방 치료 효과, 만성 피로 증후군, 심폐소생술, 에이즈 활동가들, 백신 접종 거부 등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여덟 가지 사례들을 들어가며 의학의 불확실성, 의료 전문성의 특성에 대한 문제 제기, 집단에 대한 의학적 데이터가 개인에게 적용되었을 때의 해석의 문제 등을 거론하고 있다.

각각의 흥미로운 사례들을 읽어가다 보면 양수검사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와 같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해결책이나 선택 기준을 얻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고려해야 할 기본적인 기준들은 무엇인지, 집단에 대해 통계적인 의미를 갖는 의학적 데이터를 개인에 대해 적용할 때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의사의 전문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등 기초적인 분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개도서: 해리 콜린스, 트레버 핀치 저, 이정호, 김명진 옮김, ‘닥터 골렘: 두 얼굴의 현대 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 사이언스 북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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