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불치의 ‘유전질환’ 고치는 세상 온다

[전승민의 미래 의료] 차세대 유전자 편집기술 ‘프라임 에디팅’ 등장

외상이나 독극물 감염 등을 제외하면, 인간이 걸리는 질병은 크게 세 가지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다른 생명체가 몸속에 들어오면서 생긴다. 세균이나 원생동물, 곰팡이, 기생충 등에 감염되는 경우다. 과거엔 주요한 사망 원인이었으나 항생제나 항진균제 등 다양한 약품이 개발되면서 현재는 대부분 치료할 수 있다. 사실상 인류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경우다.

두 번째는 바이러스 감염이다. 에이즈(AIDS) 등 일부 바이러스는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완전한 치료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도 바이러스 질환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수의 질환은 효과적인 예방 및 치료법을 알고 있으며 점점 더 치료법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정도 대처 방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유전질환’이다. 이 경우는 아직까지도 치료에 곤란을 겪고 있다. 천식이나 비염, 아토피 등 흔한 알레르기 질환부터 시작해 크론병 등 자가면역질환, 암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질병이 유전적 원인과 관련이 있다. 증세가 발현되면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물질을 멀리하거나, 증세를 경감하기 위한 대증치료가 가능할 뿐, 근원적인 치료 방법은 아직 대중화돼 있지 않다. 의학 및 과학기술자들은 마침내 난치로 불리던 ‘유전질환’ 조차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 자체를 자유자재로 교정하거나, 필요한 세포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속속 개발해 나가고 있다.

유전자 가위기술이 만든 희망

질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교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치명적이면서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을 예로 들어보자. 암이 발견되면 외과적 수술부터 고려한다. 약물로 치료가 어려우니 일단 잘라내는 식이다. 치료가 끝나도 언제 암이 다시 재발할지 몰라 4~5년 이상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 암의 원인 중 상당수는 유전적 결함과 관련이 있지만 타고난 유전자를 어떻게 하긴 어려웠다.

최근 들어 겨우 암 억제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를 전달물질(바이러스를 주로 이용) 주사로 맞거나,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돕는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법이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다. 국내에선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교수팀이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2가지 암 치료 유전자가 삽입된 ‘유전자 변형 아데노 바이러스’를 통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새로운 치료를 시행 중이다. 지난 4월 그 임상 1상 실험 결과를 공개하며 “암 진행을 막을 수 있었으며 부작용도 거의 없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이런 방법이 완전하다고 보긴 어려운데, 완치를 기대할 만큼 아직 효과가 높지 않은 데다 내성 등으로 인한 치료 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다.

만약 환자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를 교정, 처음부터 암에 잘 걸리지 않는 사람의 유전자와 똑같이 고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을 실제 의학에 적용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크리스퍼지나 프라임 에디팅기술도 부상

유전자 편집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기술이다. 효소를 이용해 DNA 중 일부를 잘라낸다는 점에 착안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1세대 젠(ZEN), 2세대 탈렌(TALEN)을 거쳐 3세대는 ‘크리스퍼(CRISPER)’라고 불린다. 최근 수년 사이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기술이다. 크리스퍼는 유전자 편집 속도도 빨라 현재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DNA에 있는 18~40개 단위로 얽혀있는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해 잘라내고, 이 부분을 정상 DNA로 교체할 수 있다. 간편하고 효율이 뛰어나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기법을 이용해 동식물과 인간의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정확성이 다소 낮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지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둘 등장하며 생명과학계의 가장 주목받는 기술로 꼽혔다.

최근 크리스퍼를 한 단계 더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데이비드 리우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이 제안한 기술로 ‘프라임 에디팅(Prime Editing)이라 불린다. 크리스퍼의 단점인 안정성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프라임 에디팅은 DNA 단일 가닥을 절단하고 원하는 염기서열을 직접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프라임에디팅으로 교정한 유전자를 관찰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모습.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중 가닥 절단 및 복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방지한 것이다. 연구진은 “프라임 에디팅은 거의 90%에 달하는 희귀 유전병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프라임 에디팅 기술을 2020년 10대 바이오 미래 유망기술로 선정, 발표한 바 있다.

다만 많은 DNA를 삽입하거나 삭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여전히 프라임 에디팅 보다 크리스퍼가 더 유리하다. 따라서 크리스퍼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두 가지를 상호 보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유전자 가위를 치료에 응용하려면 환자의 몸에서 가져온 혈액, 체세포 등의 유전자를 실험실에서 교정한 다음, 이를 환자의 몸에 주입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런 치료를 여러 번 반복하면 체내 정상 세포 비율이 높아지면서 질병을 완전히 치료하거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드물게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제작한 유전자 가위 물질을 인체에 주사를 이용해 집어넣는 방법도 쓰인다. 몸에 들어간 유전자 가위는 체세포와 만나면 정확하게 목표 DNA를 찾아가 유전자 교정을 시작하고, 그 부분 세포는 유전자가 편집돼 병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그러나 체외에서 교정한 세포를 넣는 방법보다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프라임에디터를 가상3D 모델로 나타낸 모습. Cas9효소(파란색)와 역전사효소(빨간색)가 검색가이드 역할을하는pegRNA(녹색). DNA는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표시돼 있다. ⓒ Science magazine

2020년 4월 크리스퍼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임상시험이 미국에서 실제로 진행됐다.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의대 마크 페네시 안과 교수 연구진은 3월 초 선천성 희귀 망막질환인 레베르선천성흑내장(LCA10) 환자들을 대상으로 눈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직접 주입했다.

LCA10은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빛을 감지하는 망막 광수용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시력을 잃는 질환이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설혹 눈이 보인다 해도 10세 이전에 시력을 완전히 잃는다. 페네시 교수팀은 이번 치료로 증세가 완전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안전성 검증 등의 목적이 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자 가위와 줄기세포 치료, 어떻게 다를까

얼핏 유전자 편집기술과 비슷해 보이는 기술로 ‘줄기세포’ 관련 연구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줄기세포란 인체 어떤 기관으로든 성장할 수 있는 어린 세포다. 이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끊어졌던 신경이나 호르몬 기관 등을 만들 수 있다. 유전자 가위가 병을 일으키는 선천적 유전자를 교정하는 기능을 한다면, 줄기세포는 기능이 죽어버린 병든 세포를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척수마비 환자의 경우 유전자 가위로는 치료가 어렵지만, 줄기세포 기술로는 가능성이 있다.

과거 논문 조작 사건으로 화제가 됐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팀이 주도한 방식은 사람의 난자 핵을 다른 사람의 체세포에서 뽑아낸 핵으로 바꿔 넣고, 이 세포를 분열시켜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법도 점점 만들기 편하고 안정성이 뛰어난 기술로 거듭나고 있다. 일반 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역분화줄기세포’ 방식을 지나 최근엔 아예 줄기세포 단계 없이, 필요한 세포를 즉시 만들 수 있는 ‘직접교차분화’ 세포 방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 혈액이나 피부세포를 떼어내 생화학적 처리를 거쳐 신경, 장기 등의 세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유승권 고려대 교수팀은 지난해 10월 뇌경색 등의 치료에 쓸 수 있는 ‘신경세포’ 개발에 성공했다. 혈액이나 소변 등에 섞인 체세포를 이용해 뇌세포를 되살릴 수 있는 신경세포를 만든 것이다. 지난 4월엔 UNIST(울산과학기술원) 김정범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해 혈관 세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뇌혈관이나 심혈관에 막히면 생명의 위험을 겪을 수 있는데, 이 기술을 이용하면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혈액의 흐름을 개선할 수 있다.

직접교차세포를 이용한 혈관재생 방법을 개발한 김정범 교수(왼쪽)와 박수용 연구원. ⓒ UNIST

연구진은 이 기술을 뇌혈관이나 심혈관에 생긴 질환을 고칠 세포 치료제를 상용화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줄기세포 기술은 유전적으로 혈관이나 근력 등이 부족한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와는 또 다른 방식의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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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한얼 2020년 9월 23일11:39 오전

    유전질환은 평생 안고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치료기술이 개발돼고 윤리적인면과 기술적인 면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법이 제정되면 연구자 들은 좀 더 공격적인 연구로 인류 미래의 건강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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