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찾아왔을 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13) 필립 로스 소설 ‘네메시스’

‘네메시스(Nemesis)’는 그리스 신화 속 천벌의 신이자 복수의 여신이다. 아이들에게 전염되는 폴리오바이러스를 천벌의 신 네메시스라고 생각했을까.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는 자신의 유작이 된 장편소설 ‘네메시스’에서 폴리오바이러스(Poliovirus)에 감염된 사람들이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가를 진중하게 다룬다.

‘네메시스’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연하고도 불행한 비극을 어떤 삶의 자세로 살 것인가를 묻는다. ⓒ 김은영/ ScienceTimes

100년 전 원인을 알 수 없던 전염병, 뉴어크를 덮치다

그해 여름 첫 폴리오(Polio)는 가난한 이탈리아인 동네에서 발병했다. 석간신문 1면에 ‘폴리오 경보 발령’이 등장한 건 확진자가 이미 40명이 생긴 후였다.

소설 속 폴리오는 미국 델라웨어 주 뉴어크(Newark)를 무대로 펼쳐진다. 바이러스는 폭염이었던 미국 독립기념일을 전후로 빠르게 확산된다. 아이들은 고열에 두통, 인후통, 구토, 관절통을 호소했다.

폴리오(Polio)는 폴리오바이러스(Poliovirus)로 불리는 장 바이러스가 뇌, 척수와 같은 중추신경에 감염시켜 발생하는 질병이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소아들이 주로 감염되고 뇌신경 조직을 손상시키면서 하지마비를 일으켜 ‘소아마비’라고 불린다.

현재 소아마비는 예방접종으로 세상에 거의 사라진 질병이지만 폴리오의 정체는 오랫동안 미궁에 빠져있었다. 가장 극심했던 시기가 약 100년 전 미국에서였다. 1916년 폴리오로 인해 미국에서만 2만 700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6000명이 사망했다.

소설 속 폴리오는 당시 현실의 상황을 세밀하게 되짚어가며 전개된다. 다만 소설의 시점은 폴리오 유행이 가장 극심했던 1916년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이다.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몇 시간 혹은 며칠 사이에 하지마비가 급속히 진행되며 쇠약해진다. 폴리오에 걸리면 생존해도 평생 신체 마비 상태로 살아야 한다.

1916년 뉴어크에는 1360명의 환자가 발병했고 363명이 사망했다. 그 뒤로 발병 건수는 예년 수준으로 줄어 폴리오에 걸릴 가능성이 휠씬 적어진 해에도 아이가 영원히 기형적인 불구자가 되거나 ‘철폐’라고 알려진 원통형 금속 인공호흡기 밖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참혹한 상처가 남았다.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 ⓒ 위키피디아

폴리오는 걸음마를 하는 아이에게 전염된다고 생각해 ‘소아마비’라고 불렸지만 실은 누구나 걸릴 수 있었고 뚜렷한 원인도 알지 못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39세에 폴리오에 걸렸고 그는 이후 쇠와 가죽으로 만든 보조기를 차야 걸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죽음,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다

폴리오는 장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장내 배설물을 통해 전파된다. 때문에 격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1954년 미국의 의학자 알버트 브루스 새빈(A. B. Sabin)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기까지 폴리오는 미지의 바이러스였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일부러 동네에 찾아와 보도에 끈적거리는 침을 뱉어놓고 갔기 때문에 아이들이 발병했다고 의심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나타났던 날 놀이터의 있던 아이들 가운데 두 명이 폴리오에 걸렸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는 네메시스를 통해 인간의 과도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이 불러오는 불행을 말하고자 했다. ⓒ 문학동네

의사들조차 이 병원균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고뇌를 하는 모습이 소설 전반에 등장한다. 이들은 병원균을 퇴치하지 못하는데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는 위험한 역병의 유행 속에서 중심을 가지고 강인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무엇이 폴리오 균을 죽이는지 몰라. 하지만 중요한 건 의사로서 무시무시한 병의 확산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책임감 있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의사 스타인버그 박사의 말은 지금 코로나19로 지친 의료진들에게도 위로의 메시지가 된다.

우리는 아직 코로나19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병원에 들어온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들은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소설 속과 같은 현실의 모습이다.

필립 로스의 진가는 이야기의 후반부에 나타난다. 건장한 23세 청년 ‘버키 캔터’는 자신으로 인해 아이들이 폴리오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며 금욕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27년 후 우연하고도 불행한 상황 속에서 살아온 화자 ‘나’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반전된다.

필립 로스는 비극적 상황에서 인물이 아닌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중심을 뒀다.

불행하게도 우연히 닥쳐온 전염병이라는 비극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작가는 삶의 태도와 철학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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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1)

  • 박한얼 2020년 7월 22일12:21 오전

    미지의 감염성 질병이 찾아 왔을때 두려움과 역경을 이겨낸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충격을 받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네요. 몸과 마음에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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