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지 않는 ‘석면’과 ‘살라만드라’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48)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우리나라 석면(石綿, 돌솜)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정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현재 석면피해자는 약 4000명에 달한다. 그중 석면을 사용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등 직업적으로 노출된 피해자는 7%에 불과하고 나머지 93%는 일상생활 중에 자신도 모르게 석면에 노출된 피해자다.

이는 석면이 오랜 기간 폭넓게 사용되었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 석면이 많은 것을 고려한다면 누구라도 석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이한 점은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충청남도에 살았거나 살면서 석면에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충청남도가 석면 피해의 중심지가 된 것은 과거에 석면을 캐던 광산이 몰려 있고, 흙이나 돌 속에 함유된 자연 상태의 석면도 많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지역의 석면 광산은 일제 강점기에 집중 개발되었는데, 한 때는 아시아 최대의 석면 광산도 이곳에 있었다. 부산도 충남 못지않게 석면 피해가 심한 곳인데 1970~1990년대에 일본에서 옮겨온 석면 방직 공장과 석면 자재를 쓰는 조선소(造船所)가 많은 탓이다.

석면은 인류가 4000년 이상 써온 광물이다. 석면은 불에 타지 않는 성질(耐火性)이 있어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신전의 꺼지지 않는 성화(聖火)의 심지로 썼다. 고대 페르시아나 이집트에서도 귀한 신분에게만 석면으로 만든 옷을 입혔다.

석면을 뜻하는 영어는 ‘아스베스토스(asbestos)’로 라틴어 ‘sbestos(불이 꺼지다)’에 부정형 접두사 ‘a’를 붙여 만든 단어로,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석면으로 만든 심지는 기름만 빨아올려 불을 붙이며 스스로는 타지 않고 온전히 남았다. 이 성질을 이용해 성화의 심지로 쓴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석면을 상상 속의 동물 살라만드라(salamandra)와 관련지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속에서 살면서, 불에 타지 않는 도마뱀처럼 생긴 동물인 살라만드라의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살라만드라가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피부에 분비하는 체액 때문이었다. 불을 견디게 하는 이 액체는 젖빛이었고 강한 독성이 있었기에 사람이 만졌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벌빈치의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살라만드라를 절대로 맨손으로 잡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의 뺨을 때리면서 가르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 불에 타지 않는 석면이 알려지자 그리스인들은 석면을 살라만드라의 가죽으로 여겼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겠지만 살라만드라의 위험성이 석면의 위험성으로 이어진다.

물론 실존하지 않는 동물 살라만드라였지만 나중에 도롱뇽의 학명에 붙어 살라만드라속(屬)으로 남아있다. 영어로는 ‘샐러맨더(salamander)’이고, 불을 내뿜는 도마뱀 같은 동물로 문장(紋章)에 종종 등장한다.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 있는 가우디 작품은 도롱뇽이다.  ⓒ 박지욱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 있는 가우디 작품은 도롱뇽이다. ⓒ 박지욱

근세기에 내연 기관이 발명되면서 열에 강한 석면의 쓰임새도 많아졌다. 19세기 이후로는 건축물이나 전함, 항공기에도 쓰이는 주요 소재가 되었다. 이 땅에서 석면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 역시 일제가 군수 산업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사회로 진입하면서도 석면의 수요도 늘었다. 시골의 초가집들은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실내 천장이나 벽, 문, 자동차의 브레이크에도 석면이 쓰였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과학 실험 때 썼던 알코올램프 위에 얹었던 철망 역시 석면(asbestos wire gauze)이었다.

흔했던슬레이트지붕. ⓒ 박지욱

흔했던 슬레이트 지붕. ⓒ 박지욱

쓰임새가 많은 석면이었지만 인간에게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66년이었다. 석면 사용 노동자가 폐섬유증에 걸린 것으로 처음 보고된 때다. 1920년대에 석면 근로자들의 부검을 통해 폐섬유증이 확인되었다. 이때 석면으로 인한 폐섬유증을 ‘석면폐(asbestosis, asbestos+is 석면증)’로 명명한다.

1935년에는 석면이 유발한 폐암이 관찰되었고, 1947년에는 악성 중피종(mesothlioma)사례가 처음 관찰됐다. 국제보건기구(WHO)에서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고, 현재 60개 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석면으로 인한 악성 중피종, 폐암, 석면폐의 잠복기는 10~30년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사용이 중지된 후로도 한참이 지나도록 환자들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아직도 석면이 들어간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석면을 제거하는 작업 자체도 석면 분진을 만들기 때문에 간단치가 않다는 것이다.

석면 제거는 어려운 작업이다.  ⓒ 위키백과

석면 제거는 어려운 작업이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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