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불멸의 삶을 꿈꾸다

[과학명저 읽기] 과학명저 읽기 32

<냉동인간>(원제: 불멸의 전망, The Prospect of Immortality)의 저자인 물리학자 로버트 에틴거는 영하 196도에서 신체를 보존했다가 앞으로 발전할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다시 깨어나 불멸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1960년대에 출판된 이 도발적인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인체 냉동보존술을 옹호하기 위해 에틴거가 서술한 과학기술적 근거와 전망보다는 기술을 통해 불멸을 소망하는 인간의 욕망 그 자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도덕적, 종교적, 법적, 경제적 논리이다.

인체 냉동보존술과 그것을 통한 부활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에틴거는 “그래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러나 저러나 죽게 되는 거라면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설령 미래의 과학이 얻게 될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다고 해도, 냉동고는 여전히 무덤보다는 매력적이다. 운이 나쁘면 얼마나 나쁘겠는가. 냉동된 사람들은 무덤에서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죽어 있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될 뿐이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과학의 명백한 운명이 실현된다면, 소생한 자들은 수세기 후의 와인 맛을 볼 것이다. 상품이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아주 가느다란 확률이라도 움켜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40쪽).

 

수세기 후의 와인 맛이라는 어마어마한 상품의 가능성을 움켜쥐기 위해 필요한 것이 결단력과 용기만은 아니다. 에틴거가 1976년에 설립한 ‘냉동보존재단’(Cryonics Institute: CI, www.cryonics.org)의 ‘평생회원’이 되려면 1천250달러를 내야 하고(가입비 면제), 실제 냉동보존 처리 비용은 2만8천 달러이다.

‘연간회원’은 75달러의 가입비와 125달러의 연회비를 내야 하며, 냉동보존 처리 비용은 3만5천달러이다. CI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회원수가 1천명이 넘고, 이미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 미시건 주에 있는 CI의 냉동탱크 속에 보존되어 있다. 1977년 첫번째로 냉동된 환자는 에틴거의 어머니이며, 그의 두 부인들도 냉동보존되었다.

에틴거는 소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환자를 살리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도덕적, 의학적 논리를 이용하여 냉동보존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소생할 기회가 인식된 상태에서 일시적인 죽음, 혹은 임상사는 죽음으로 여겨지기 어려우며, 따라서 냉동은 생명을 구하거나 연장하기 위한 그럴 법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때문에 냉동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자살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스스로 냉동하지 않겠다고 결정 내리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는 것이며, 가족에 대해서 다른 가족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때는 살인이 되는 셈이다.” (152쪽)

기술을 통해서 살아날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시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러지 않는 것은 곧 인위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살고 육체가 노쇠하여 죽음을 담담하게 맞으려는 사람은 ‘불멸 거부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에틴거는 냉동보존술이 야기하는 ‘도덕적 문제’도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만약 죽어가는 배우자가 냉동을 원한다면, 물론 그 뜻에 따라야 한다. 설령 재정적으로 상당한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그렇다. …만약 남편이나 아내가 정신적으로 멀쩡한 상태에서 냉동에 반대한다면, 까다로운 도덕적 문제가 부상한다. 쉬운 탈출구는 본인의 뜻에 따르고 땅에 묻는 것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양심의 가책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핵심적인 고려 사항은 매장은 끝장이지만, 반면에 냉동은 또 다른 기회를 약속해준다는 점이다. … 냉동 후에는 마음을 바꿀 수 있지만, 묻히고 나서는 바꿀 수 없다.” (136~137쪽) 에틴거에게 매장이란 부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도 간절히 부활과 불멸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멸의 삶에는 맛좋은 와인 이외에 어떤 행복이 있는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에틴거는 냉동상태에서 깨어난 이후의 삶에 대한 소박한 희망을 표현했다.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게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겁니다. 공원을 산책하거나 꽃을 바라보는 것 같은 소박한 일에 기쁨이 있는 거지요. 지금 누릴 수 있는 이런 기쁨이 곧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냉동기술,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 미래 인류의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서라도 한번 멎은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는 이의 소박한 욕망이다.

에틴거는 2011년에 나온 이 책의 한국어판에서 한국 독자를 위한 부록을 첨부하였다. 그는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한국사람들이” 냉동보존술에 있어서 “새로운 발걸음을 정력적으로 내딛으리라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다”라고 썼다.

에틴거가 이 부록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에릭 드렉슬러의 1986년 책 <창조의 엔진: 나노기술의 미래> 한국어판 또한 2011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 한국 독자들은 나노기술을 이용한 세포의 복구와 그를 바탕으로 한 냉동보존과 불멸의 가능성을 동시에 접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을 기술을 통해 피하려하는 이 저작들에서 한국의 독자들은 ‘진취’와 ‘혁신’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도 이 한국어판 부록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버트 에틴거는 2011년 7월 당시 통용되는 의학적, 법적기준으로 일단, 공식적으로는, 사망했다. 그의 몸은 그가 만든 ‘냉동보존재단’에서 106번째로 보존처리되었다. 재단 로고가 박힌 채 늘어서 있는 냉동탱크에서 에틴거는 그의 어머니와 부인들과 함께 ‘있다’. 그가 죽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엄밀한 의미에서 죽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생명공학과 나노기술 시대의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마저도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





소개도서 : 로버트 에틴거, 문은실 옮김, 이인식 해제, <냉동인간>, 김영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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