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츠만과 릴케

[기고] 국제이론물리연구소(ICTP) 부지 ‘두이노 마을’

2022.11.23 09:00 안창림

안창림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딱 30년전 필자는 8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이태리 트리에스테(Trieste)에 있는 국제이론물리연구소(ICTP)의 연구원으로 가게 되었다. 국제이론물리연구소는 유네스코와 이태리정부의 지원으로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이론물리학자들의 연구를 돕기 위해 설립되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들의 연구자들이 국제학회 등 다양한 행사에 참가하는 곳이다. 베니스에서 동쪽으로 100km정도 떨어진 국경도시인 트리에스테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여러 차례 국적이 바뀌는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 20세기초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리던 오스트리아제국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로 발전하면서 오스트리아풍 건물들이 즐비하며, 일리(Illy) 등 유명한 커피메이커들과 카페들로 이태리 커피의 메카로 불리기도 한다.

그간 동경하던 유럽생활을 할 수 있다는 들뜬 희망과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뒤섞인 심정으로 현지에 도착한 후 우여곡절 끝에 내가 거처로 정한 곳은 연구소에서 바다를 따라 시내와 반대방향으로 10킬로정도 떨어진 두이노(Duino)란 마을이었다. 마을인구라야 천명 남짓한 작은 마을이고 관광객도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지만, 깍아지른 절벽에 매달린 듯 서있어 곧장 그 아래 아드리아해로 떨어질 것 같은 오래된 성은 한폭의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이 마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 성엔 아직도 오스트리아계 귀족인 성주와 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일요일이면 성에 딸린 작은 성당에서 마을 사람들과 같이 미사를 드리곤 했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이 작은 마을에 다른 큰 유럽도시들 못지않은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엔나대학의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현대물리학의 시작을 알리는 열역학과 엔트로피의 법칙을 알아낸 물리학자이다. 볼츠만은 모든 물질들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근본물질인 원자(atom)들로 이뤄져 있고 원자들의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원자론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까지만 해도 하나의 가설일 뿐 학계의 정설이 아니었다. 볼츠만은 원자론을 바탕으로 열역학 법칙들을 전부 설명할 수 있었는데, 특히 제2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을 통계적 개념으로 밝혀내어 통계물리학이라는 현대물리학을 탄생시켰다. 계의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S)는 같은 거시계의 상태를 주는 미시계의 경우의 수(W)로 결정된다는 S=k log W라는 공식은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고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그러나 원자론을 바탕으로 한 미시세계의 존재는 마흐(Ernst Mach)등 당시 학계를 주도하던 다수파들에 의해 부정되었고 그들의 집중공격으로 볼츠만은 학계에서 왕따를 당한다. 이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볼츠만은 1906년 지친 심신을 달랠 겸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두이노를 찾았다. 그러나 결국 심해진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족들이 해변으로 놀러간 사이 그는 호텔방에서 목을 매어 인생을 마감한다. 그때가 1905년 아인슈타인이 쓴 브라운운동에 관한 논문으로 물질이 원자들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원자론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운 비극이고,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의 한계로 느껴지기도 한다.

볼츠만이 죽은 후 몇 년이 지난 1912년 당시 두이노의 성주는 자신의 친구이자 저명한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성으로 초청한다. 어느날 릴케는 두이노성 근처 아드리아해의 절벽을 따라 난 길을 산책을 할 때 폭풍속에서 “내가 소리쳐 부른들, 내 소리를 들어줄 천사가 있겠는가?”라는 시상을 떠올리고 그때부터 자신의 말년 대표작이 되는 시집을 집필을 시작한다. 그는 이 시집을 “두이노 비가(Duino Ellegies)”라고 명명하였고, 두이노의 산책길은 지금 릴케의 길로 불린다. 이 시는 문학적으로 릴케가 초월적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그 절망을 노래했다고 해석된다고 한다. 현대물리학을 탄생시킨 볼츠만과 현대문학의 선구자 릴케가 두이노에서 느꼈던 절망에서 어쩌면 과학과 문학에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훗날 릴케나 볼츠만 시대의 두이노 성주의 후손이 자신의 영지를 국제이론물리연구소의 부지로 기부하였고, 그 연구소에서 우주와 현대물리학의 한계를 연구하는 현재 상황이 단순한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도 아드리아 절벽의 두이노마을이 눈에 선하다.

 

안창림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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