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복어가 별미인 이유는?

과학에세이 298

2019.01.25 08:47 사이언스타임즈 관리자

“그 맛,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복요리를 먹고 나서 한 말.

수년 전 탤런트 현석 씨가 TV의 한 프로그램에 나와 독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복어회를 먹고 죽다 살아난 경험을 얘기하는 걸 본적이 있다. 며칠 동안 몸이 마비돼 꼼짝을 못하는 건 물론 말 한마디도 못했는데 정신은 말짱해 오히려 더 공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회 몇 점 만 더 먹었어도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처럼 위험한 음식임에도 11세기 중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미식가였던 소동파도 극찬한 걸 보면 복어가 정말 맛이 있기는 한가 보다. 물론 필자도 몇 번 먹어봐서 복어가 꽤 맛있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죽음과 바꿀 만하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미식가들이 열광하는 복어맛의 비밀 일부를 알아냈다고 한다.

복어 맑은탕을 만들어 국물맛을 평가하면 감칠맛과 깊은맛이 강하고 짠맛도 꽤 느껴지지만 나머지 맛(신맛, 단맛, 쓴맛)은 미미하다. 맑은탕 국물을 분석해 알아낸 28가지 성분과 여기서는 검출되지 않은 펩티드 4가지를 다양하게 조합해 맛을 평가한 결과 복어맛의 핵심성분 14가지를 밝혔다. 오른쪽 아래는 그 가운데 3가지의 분자구조로 왼쪽이 IMP, 오른쪽 위가 글루탐산, 오른쪽 아래가 라이신이다. ⓒ 농화학 및 식품화학 저널

복어 맑은탕을 만들어 국물맛을 평가하면 감칠맛과 깊은맛이 강하고 짠맛도 꽤 느껴지지만 나머지 맛(신맛, 단맛, 쓴맛)은 미미하다. 맑은탕 국물을 분석해 알아낸 28가지 성분과 여기서는 검출되지 않은 펩티드 4가지를 다양하게 조합해 맛을 평가한 결과 복어맛의 핵심성분 14가지를 밝혔다. 오른쪽 아래는 그 가운데 3가지의 분자구조로 왼쪽이 IMP, 오른쪽 위가 글루탐산, 오른쪽 아래가 라이신이다. ⓒ 농화학 및 식품화학 저널

감칠맛과 깊은맛이 중요   

학술지 ‘농화학 및 식품화학 저널’ 1월 3일자 온라인판에는 복어의 맛을 부여하는 핵심성분 12가지를 규명한 논문이 실렸다. 상하이교통대 등 중국과 영국의 공동연구자들은 복어의 맛성분을 알아내기 위해 복어(황복)만 넣고 세 시간 동안 맑은탕을 끓였다. 그리고 국물을 분석해 28가지 성분을 찾았고 각각의 농도를 알아냈다.

28가지 성분은 유형에 따라 5가지 그룹으로 나뉘었다. 즉 아미노산이 17가지가 1그룹, 뉴클레오티드 3가지가 2그룹, 유기산 2가지가 3그룹, 유기염기 2가지가 4그룹, 무기이온 4가지가 5그룹이다.

이 가운데 농도가 맛을 느낄 수 있는 역치를 넘는 건 6가지에 불과했다. 즉 뉴클레오티드인 IMP와 유기산인 젖산과 숙신산, 무기이온인 나트륨이온, 칼륨이온, 염소이온이다. 나머지 22가지 성분은 역치 미만의 농도였다. 그렇다면 농도가 역치를 넘는 6가지가 핵심성분 아닐까? 즉 이 6가지만 넣으면 복어 맑은탕의 국물맛이 재현될 것이라는 말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6가지로는 보나마나 재현에 실패하리라는 걸 아는 연구자들은 좀 더 체계적으로 핵심성분을 찾는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28가지 성분의 시약을 구해 농도에 따라 섞어 ‘재구성 국물’을 만든 결과 진짜 복어 맑은 탕 국물과 맛이 비슷하다는 걸 확인했다.

다음으로 한 그룹을 통째로 뺄 때 맛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를 평가했다. 만일 특정 성분의 역치가 절대적인 것이라면 그룹1은 아미노산 17가지 모두 역치보다 한참 낮은 농도이기 때문에 이를 빼고 나머지 11가지로 성분으로 재구성 국물을 만들어도 28가지로 만든 것과 맛이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맛을 보자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즉 감칠맛과 깊은맛이 뚝 떨어졌고 단맛과 짠맛도 좀 약해졌다. 참고로 ‘깊은맛’은 코쿠미(kokumi)를 번역한 것으로 음식의 맛을 진하게 해주는 효과를 내는 맛으로 영어의 ‘mouthfulness’나 ‘thickness’와 일맥상통한다.

과연 코쿠미를 또 하나의 맛으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안 돼 있지만 국물요리의 맛을 표현할 때 유용하기 때문에 널리 쓰이고 있다.

아무튼 아미노산 17가지를 다 빼버리면 감칠맛도 뚝 떨어지고 맛의 깊이도 없어져 도저히 복어 맑은탕의 국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이는 그룹2(뉴클레오티드 3가지)를 빼고 25가지로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그룹3(유기산 2가지)을 뺐을 때도 감칠맛이 크게 떨어져 영향이 컸고 그룹5(무기이온 4가지)를 뺐을 때도 치명적이었다(간이 안 돼 맹탕이므로). 반면 그룹4(유기염기 2종류)를 빼고 나머지 26가지로 만든 국물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즉 다섯 가지 그룹 가운데 그룹4는 복어맛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맛의 핵심성분 14가지 규명    

연구자들은 다음으로 한 성분만을 뺐을 때 맛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그룹1에서는 글루탐산(대표적인 감칠맛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세린, 프롤린, 아르기닌, 라이신이 빠질 때 맛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그룹2에서는 AMP와 IMP가 그룹3에서는 숙신산이 중요했다. 그룹5의 무기산 4가지는 모두 맛에 큰 영향을 미쳐 하나라도 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모두 12가지 핵심성분이 드러났는데 이 가운데 7가지는 농도가 역치 아래였다. 즉 혼자 있을 때는 맛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농도이더라도 다른 맛 성분과 함께 있으면 시너지효과를 통해 맛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복어 맑은탕 국물 분석을 통해 밝힌 28가지로 재구성한 국물은 진짜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감칠맛과 깊은맛이 좀 약했다. 연구자들은 국물 분석으로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펩티드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수녀 전 복어의 근육(살)에서 아미노산 6~9개로 이뤄진 펩티드 4가지를 규명했는데, 감칠맛과 깊은맛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28가지 성분에 4가지 펩티드를 추가해 ‘특’ 재구성 국물을 만들었고 맛을 보자 진짜 국물맛과 매우 흡사했다. 다음으로 한 성분씩 빼는 실험을 통해 4가지 펩티드 가운데 PR-7과 YV-8이 맛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복어맛의 핵심성분은 모두 14가지라는 말이다.

물론 음식을 먹을 때 우리가 느끼는 ‘맛’은 단순히 혀가 느끼는 맛이 아니라 코가 느끼는 냄새, 구강 안에서 느껴지는 감촉, 씹을 때 소리, 심지어 입에 넣기 전 음식의 모양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가 밝힌 복어 맛의 비밀은 엄밀히 말하면 미각(taste)에 한정된 것이다.

한겨울에 복어 맛의 비밀에 대한 얘기를 한참 하다 보니 뜨뜻하면서도 시원한 ‘복어 맑은탕’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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