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병명에 지명을 안 쓰는 이유(2)

[이름들의 오디세이] 이름들의 오디세이(84)

2003년에 홍콩을 중심으로 세계에 퍼진 ‘중증 급성 호흡기 질환’의 이름을 정할 때 관련 전문가들은 AIDS 나 HIV처럼 발음도 쉽고 외우기도 쉬운 글자들로 이루어진 이름을 찾다가 그냥 증상의 앞 글자들을 따서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라고 지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홍콩 정부가 발끈한다. 홍콩의 정식 명칭이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특별 자치구’가 영어로는,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인데 줄이면 ‘HKSAR’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사스 하면 홍콩을 떠올리지만 홍콩은 진원지가 아니었다.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시작했고, 홍콩에서 비행기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것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홍콩은 큰 피해를 입었다(사망자 299명). 그런데 홍콩(HK) 자치구(SAR)를 떠올리게 할 ‘SARS’를 병명으로 삼겠다 하니 정색을 하고 나선 것이다.

비행기에서 본 홍콩 야경. 사스에 대해서라면 홍콩은 억울한 구석이 많다. ⓒ 박지욱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특정 지역명이 붙어 있다면 질병을 기억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그 지역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 찍힐 수 있다. 1950년대의 아시아 독감, 1960년대의 홍콩 독감, 1970년대의 러시아 독감이 대유행했을 때 아시아인, 홍콩인, 러시아인들은 분명 회피나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는 ‘중동호흡기흥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즉, 메르스(MERS) 유행 때도 반복되었다. 메르스는 2012년에 사우디에서 낙타로부터 옮겨온 호흡기 질병으로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있는 에라스무스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바이러스를 분리해 ‘사우디아라비아왕국에서 분리된 인간 코로나바이러스(human coronavirus from the Kingdom of Saudi Arabia)’란 의미로 ‘HCoV-KSA1’라 명명했다.

병원체의 이름에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KSA)’이라는 이름이 포함된 사실을 알게 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발끈했다. 병원체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발견자의 고유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WHO가 중재하여 이름은 ‘HCoV-EMC’으로 변경됐다. ECM은 에라스무스대학교 의료원(Erasmus Medical Center)의 약자다. 지금은 MERS-CoV(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로 부른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에볼라(Ebola)’란 이름은 상당히 잘 지은 이름이다. 우리가 그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에볼라 출혈열’은 1976년에 자이르(지금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얌부쿠라는 마을에서 시작했다. 현장에 나가 연구한 미국 바이러스학자 칼 존슨(Karl Johnson)은 첫 발생지인 마을 이름을 넣어 ‘얌부쿠 출혈열’이라고 부르게 되면 앞으로 이 마을에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는 행위가 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마을로부터 65km 떨어져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따서 ‘에볼라’라 불렀다. 사람들은 에볼라라면 몸서리를 치고 도망가지만, 얌부쿠는 뭔지 모른다.

WHO이 2015년에 정한 새로운 질병의 ‘작명’ 지침에는 지리적인 명칭뿐만 아니라 사람, 동물, 음식, 특정 문화나 관습, 집단, 직업의 이름도 금칙어로 설정했다. 그리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름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크리미아-콩고열, 라임병, 마르부르크병, 일본뇌염, 돼지독감, 조류독감, 농부폐증, 광부폐증, 재향군인병 등과 같은 이름은 앞으로 지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렇게 WHO가 나서서 금칙어를 정한 이유는 불필요한 낙인을 찍지 말자는 것이다(World Health Organization Best Practices for the Naming of New Human Infectious Diseases, 2015년 5월). 한번 낙인이 찍히면 그 지역은 여행, 교역, 관광 등에 큰 타격을 입는다. 마찬가지로 돼지나 달을 기르는 축산 농가들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동물복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정 직업에 대한 편견도 생길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의 진앙지인 우한은 첫 환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지만 최악의 피해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에도 상당 기간 우한과 후베이성 더 나아가서는 중국에 대한 혐오감이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O 조차 금지하고 있는 ‘지명+병명’ 명칭을 일부 언론이나 집단, 특히 의사들이 거리낌 없이 쓰는 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관련기사) 이름들의 오디세이(83) 병명에 지명을 안 쓰는 이유(1) /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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