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변종 기생생물이 찾아준 가장 소중한 가치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14) 박정우 감독 영화 ‘연가시’

고요한 새벽 한강에는 뼈와 살가죽만 남은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이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물속에 뛰어들어 죽는 기이한 일이 계속되자 국가는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변종 감염증 주의보’를 내린다.

지난 2012년 개봉된 박정우 감독의 영화 ‘연가시(Deranged)’는 숙주인 곤충의 몸을 조종해서 자살로 이끄는 생물 ‘연가시’에게 인간이 감염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해 만들어진 영화다.

사람들의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르는 기이한 일이 계속된다. (영화 ‘연가시’) ⓒ ㈜오죤필름

치사율 100%의 변종 기생충, 인간이 감염된다면  

연가시(Gordius aquaticus)는 기생생물이다. 연가시의 알은 반드시 곤충의 몸 안에서 부화하고 성장한다. 곤충의 몸에서 성장하다가 성충이 되면 곤충의 몸 밖으로 나와 알을 낳는 습성을 가진다.

때문에 연가시의 숙주가 된 사마귀나 여치, 메뚜기와 같은 곤충은 연가시에 감염되면 숙주로써 자신의 장기를 영양분으로 공급하다가 연가시의 짝짓기를 위해 물가로 뛰어들어 죽는다.

연가시는 물 밖으로 나오면 즉시 죽는다. ⓒ 위키미디어 공용

연가시가 숙주를 조종해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학계에 따르면 연가시가 숙주의 뇌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곤충의 신경전달 물질과 비슷한 단백질을 만들어 분비하기 때문이다.

영화 ‘연가시(Deranged)’는 이러한 연가시의 특성에서 착안했다. 변종 기생생물이 사람에게 감염시키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영화적 설정이다.

영화에서는 연가시가 ‘변종 기생생물’이라는 설정 탓에 감염자들이 변종 연가시로 인해 죽어가는 기괴한 모습들이 많이 연출됐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강이나 하천 등으로 유인되어 물에 빠져 죽는다. 강이나 하천이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동네 횟집 수조에 빠져 죽기도 한다. 수조에 빠져 죽어 긴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물속에서 휘날리는 여인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이다.

물가가 멀면 동네 횟집 수조에 빠져 죽는 일도 벌어진다. ⓒ ㈜오죤필름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탐욕에 가득 찬 인간 군상들

숙주를 조종해 자살에 이르게 한다는 것도 소름 끼치는데 더 끔찍한 사실은 연가시가 숙주의 몸을 나오는 방법이다. 연가시는 물가에 뛰어든 곤충의 배를 찢고 물속으로 튀어나온다.

숙주의 몸을 찢고 나온다는 설정은 SF 영화 ‘에일리언(Alien)’과 유사하다. 영화 ‘에일리언’에서는 외계 생물이 인간의 몸을 숙주 삼아 태아처럼 자라다가 어느 날 임산부의 배를 찢고 세상에 태어난다.

영화 ‘에일리언’처럼 연가시에 감염되는 숙주의 몸을 곤충 대신 인간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운전 중에도 사람들은 물을 보면 빠지기 위해 달려든다. 사람들은 통제불능의 상태다. ⓒ ㈜오죤필름

사실 인간은 연가시에 감염되지 않는다. 기생충 학자 서민 단국대 교수는 “연가시가 인체에 감염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설령 물놀이를 하다가 연가시 유충이 몸에 들어가더라도 성충으로 자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때문에 영화는 ‘변종 연가시’라는 단서를 붙였다.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의 주인공 재혁(김명민 분)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직장에 충성하는 불쌍한 가장이다. 하지만 가족 부양을 핑계로 평일도 주말도 없이 일에 매어 살며 가족을 내팽개친 비겁한 사내이기도 하다.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사람들의 모습. ⓒ ㈜오죤필름

그가 일에 중독되어 사는 사이 변종 연가시는 강을 타고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다. 변종 연가시의 치사율은 100%. 때문에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국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감염자를 관리하지만 격리된 감염자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

영화는 변종 기생생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명이 절박한 재난상황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 ㈜오죤필름

이윤추구만을 위해 치료제 생산 거부를 하는 기업과 이미 국가적인 기능을 상실한 정부 대신 사람들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각자 나선다. 재혁도 마찬가지. 그는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온갖 역경을 헤치며 가족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변종 기생생물로 인한 사건을 중심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가족과 인간에 대한 삶의 성찰로 귀결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염병으로 아비규환이 된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감독은 ‘치사율 100% 변종 기생생물’이라는 극단적인 매개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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