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법률서비스 문턱 낮추는 ‘리걸테크’

로봇이 바꾸는 세상(13) AI 법률가

“IBM 왓슨이 의료분야에서 하고 있는 역할처럼 법률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은 법조인에게 방대한 판례와 법령을 정리해 제공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

“방대한 증거자료를 검색하고 추출, 분류, 분석하는 과정에서 AI가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측면에서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신영식 대검찰청 디지털수사과장)

“인공지능은 젊은 변호사들의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고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교육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지난 4월 19일 법률신문이 제54회 법의 날(매년 4월 25일)을 맞아 개최한 좌담회에서 쏟아진 발언들이다.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이 법조계 안팎에 미칠 영향’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판사, 검사, 변호사를 망라해 법률 분야도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 일색이었다. 인간의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낙관론에서부터 인간 변호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위기론까지 전망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지만 고도의 지식서비스 분야인 법률 서비스 시장도 로봇과 인공지능의 큰 흐름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 산업분야 곳곳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인공지능과 로봇 혁명도 어느 한 분야도 빼놓지 않고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다. 그동안 법률을 위시한 지식 영역은 로봇과 AI의 공습이 조금은 더딜 것이며 쉽게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최근 2~3년새 전세계 법률 시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이미 상당수의 리걸테크(법률과 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들이 AI 기반의 시스템과 서비스를 구축해 시장에 내놓고 있으며 대학 내 공동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법률 시장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출현은 방대한 법률 자료의 신속한 분석을 통한 시간과 비용의 절감,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정확한 판단의 근거 확보, 문턱이 높은 법률 서비스의 대중화를 촉발시키고 있다. 지금은 인간 법조인을 돕고 일반인들에게 법률 지식을 일부 제공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훨씬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을 것이 분명하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새내기 변호사쯤은 쉽게 제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실제 판결에서 AI의 유효성을 인정한 사례가 나와 큰 파장을 던졌다. 지난 5월 1일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AI가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형사재판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의 판결이 타당하다고 인정한 결정이 나왔다. 이 사건의 피고인 에릭 루미스는 법원이 AI 기기인 ‘컴퍼스’의 판단을 근거로 중형을 내린 게 부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컴퍼스는 리컬테크 스타트업인 노스포인트가 개발한 것으로 피고인의 법 준수 여부를 분석해 루미스가 추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미스는 2013년 총격 사건에 사용된 차량을 운전하다가 경찰 단속에 걸린 뒤 계속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위스콘신주 대법원 앤 월시 브래들리 대법관은 “알고리즘의 한계 등을 고려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양형 법원에 활용가능한 정보 제공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실제 적용은 아니지만 런던대, 셰필드대, 펜실베니아대 공동 연구팀이 개발한 AI판결 시스템은 정확도가 8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AI 판사로 하여금 유럽 인권 협약 제3조 ‘고문의 금지’, 제6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제8조 ‘사생활 및 가족 생활 존중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584개의 판례를 학습시킨 후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열린 것과 같은 사법 재판을 진행한 결과 정확도가 79%에 달했다고 밝혔다. 특히 사건은 유사한데 판결은 정반대인 경우도 학습이 되었는데 판사가 숙고를 하듯 AI 시스템도 고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스탠포드대학 출신 영국 청년이 개발한 두낫페이. 주차 위반 딱지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로 400만달러의 벌금을 철회시켰다. ⓒ 두낫페이

스탠포드대학 출신 영국 청년이 개발한 두낫페이 채봇 화면. 주차 위반 딱지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로 400만달러의 벌금을 철회시켰다. ⓒ 두낫페이

로펌 시장도 큰 변화에 직면해있다. 캐나다 토론토대 출신들이 설립한 스타트업 로스인텔리전스가 개발한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는 이미 로펌 시장에 진출했다. IBM 왓슨을 기반으로 한 로스는 지난해 5월 뉴욕 로펌 베이커앤호스테틀러가 고용 계약을 체결한 이후 파산 관련 판례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로스는 자연어처리 기술이 탑재돼 있어 사람의 일상 언어를 알아듣고 법률 문서를 분석한 후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추출한다. 초당 10억장의 법률을 분석하기 때문에 로펌 입장에서는 변호사를 보조하는 인력을 최소화하면서 자료를 검토할 수 있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AI를 이용한 챗봇으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는 서비스는 법률 시장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2015년 말 당시 19세 영국 청년이 개발한 로봇 법률가 서비스인 ‘두낫페이(DoNotPay)’가 대표적이다. 스탠포드대 학생인 조슈아 브로우더(Joshua Browder)가 개발한 AI 채팅봇 두낫페이는 행정기관의 부당한 벌금 및 수수료 부과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서비스다.

브로우더 자신이 30회에 걸쳐 주차 위반 딱지를 받자 행정기관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법률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이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픈 6개월만에 25만명이 두낫페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이 가운데 16만명이 행정 당국의 주차 위반 딱지 발급에 대해 철회를 관철시키는 등 영향력이 컸다. 금액으로 치면 4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벌금이 취소됐다.

브로우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해 3월 정치 및 종교 분쟁 등의 이유로 난민이 된 사람들을 위한 법률 서비스도 오픈했다. 망명 신청자의 권익 보호를 돕도록 두낫페이를 개조한 이 시스템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한 변호사 봇이다. 국제법에 의거해 해당 난민이 망명자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대화하면서 이민신청서를 자동으로 작성해준다. 모든 질문은 영어로 이뤄지며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실무적인 팁도 제공한다.

특허법 분야에서 친근한 고객 서비스를 위해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의 지적재산 관련 IT기업인 골드IP는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 소타(Sota) 기반의 로봇 법률가 서비스인 ‘리가보로(RegaRobo)’를 출시했다.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너무 어려운 법률 용어 등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고 보고 리가로보를 통해 고객에게 친근하고 대중적인 특허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일본 지적재산 관련 IT업체 골드IP가 개발한 특허법률 서비스 로봇 리가보로. ⓒ골드IP

일본 지적재산 관련 IT업체 골드IP가 개발한 특허법률 서비스 로봇 리가보로. ⓒ골드IP

최근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로스인텔리전스와 컴퍼스 이외에도 한국계 창업가 팀 황(Tim Hwang)이 설립한 미국 법률 플랫폼 피스컬노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피스컬노트는 미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법안과 법률 정보를 알기 쉽게 가공해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기술을 활용해 법안 통과율을 94% 수준으로 예측한다. 2014년 CNN의 세상을 바꿀 10대 스타트업으로 선정됐으며 2016년 세계경제포럼 기술 파이오니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렉스마키나는 수천만건의 판결문과 소장 등 법률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소송 결과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업체다. 이용자가 자신의 사건 정보를 입력하면 해당 판사의 과거 성향, 상대 변호사의 과거 소송 결과, 사건 종결까지 걸리는 시간, 유리한 소송 전략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나이키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으며 연방 법원이나 학계, 언론계 및 비영리 단체에는 시스템을 무료로 제공한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주최한 2016 법률 심포지엄에는 렉스마키나 창업자인 조슈아 워커 박사가 참여해 “인공지능이 판사나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법률가들이 자료에 파묻히지 않고 분쟁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 전해영 연구원에 따르면 전세계 리컬테크 스타트업 투자는 2011년 9140만달러에서 2015년 2억 9200만 달러로 4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정확한 리걸테크 시장 규모는 아니지만 전자청구, 법률사무관리 등 법률 서비스 소프트웨어 시장은 오는 2019년까지 57억 63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 인텔리콘메타연구소가 개발한 지능형 법률정보 검색 서비스 아이리스(i-LIS) 개념도 ⓒ 인텔리콘메타연구소

국내 리걸테크 기업 인텔리콘메타연구소가 개발한 지능형 법률정보 검색 서비스 아이리스(i-LIS) 개념도 ⓒ 인텔리콘메타연구소

우리나라에서도 리컬테크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인텔리콘 메타연구소는 인공지능 법률 서비스 개발을 다루는 국내 대표 리걸테크 스타트업으로 임영익 변호사가 창업한 기업이다. 1차적으로 지능형 법률 검색시스템 아이리스(i-LIS)를 개발했다. 아이리스는 자연어처리와 머신러닝 기법이 적용된 시스템으로 일반적인 생활단어를 법률단어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듈이 장착돼 일반인들도 법률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연구소는 법률융합팀, 법률분석팀, 인공지능팀, 기술개발팀 등에 법률과 인공지능을 모두 이해하는 연구원, 법조인이 함께 모여 작업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 법률 경진대회에서 막강한 추론능력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인텔리콘은 2018년 완성을 목표로 법률QA 엔진을 개발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코어닷투데이가 일반인도 법률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법률 특화 검색엔진 로우봇(LawBot)을 개발했다. 울산과학기술원 자연과학부 장봉수교수가 창업한 이 기업은 텍스트마이닝과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서비스의 정확도를 높이도록 했다. 판례문의 작성 원칙인 주어, 일시, 상대방, 행위 등을 입력하면 관련 판례와 법령이 검색된다. 법률 분야의 높은 문턱을 낮춰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만들겠다는 것이 코어닷투데이의 목표다.

아직은 AI와 로봇 활용 자체가 재판 결과를 좌우하거나 변론을 유리하게 이끌어주지는 않는다. 체계적인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게다가 한쪽에서 창으로 사용한다면 다른 쪽에서는 방패로 사용할 수 있어 절대 도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로봇 활용은 보다 명확한 근거로 법률 서비스와 판단이 이뤄지고, 법률 시장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일반인들이 수월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대 법률가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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