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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2004-03-18

발상의 전환이 이끈 과학의 역사 국양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앰배서더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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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양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가 앰배서더 강연을 하기 위해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수리고등학교를 찾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나노분야 과학자의 생생한 강연을 들어가보자. [편집자주]

나노과학기술의 핵심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혁신적 접근방법에 있다. 이처럼 발상의 전환으로 인해 인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발명품이 의외로 많다. 남들과 다른 것을 생각해낸 과학자들의 사례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나노과학기술의 미래를 더듬어본다.


개인이 생각해낸 발명특허, 슈퍼마켓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 인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은 사례가 많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에 의해 발명이 이루어지곤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생각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이들에 의해 과학이 발전해온 것이다.

옷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원시시대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인간은 BC 3천년경에 이미 면·비단·울 등의 천연섬유를 사용했다. 그로부터 5천년이 흐른 20세기가 되어서야 인공섬유가 출현했으며, 재봉틀이 발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6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되어온 옷의 역사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발명이 1914년 선백(Sunback)이라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의류회사에서 일하던 선백은 단추보다 좀더 손쉽게 옷을 여미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지퍼를 발명했다. 옷을 만드는 자기 일에 너무 충실한 결과,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지퍼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가 만든 지퍼는 9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모양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선사시대의 동굴부터 바로크 시대의 웅장한 석조건축물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건축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추위를 피하는 기능이었다. 유목민들은 집안에 불을 지폈고, 우리 선조들은 온돌을 넣어 방을 따뜻하게 했다. 즉, 집이란 자기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장소였다.

그런 집의 개념을 뒤집은 사람이 바로 캐리어(Carrier)였다. 그는 집을 차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다 1904년 에어컨을 발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어컨은 수많은 가전제품 중의 하나일지 몰라도,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런 물질적인 발명품과는 달리 새로운 형태의 시장을 구상하여 특허를 낸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 했다. 먹을 것을 사는 곳과 옷을 사는 곳, 전기 재료를 사는 곳이 다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 할인마트에 가면 뭐든지 구입할 수 있다. 이처럼 소비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할인마트 역시 한 개인의 특허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16년 사운더스(Saunders)라는 대학생이 미국 특허청에 슈퍼마켓과 비슷한 모형 그림을 특허로 접수시켰다. 거기에는 카운터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사람이 지나 다니는 통로, 물건 진열대 등이 지금의 할인마트와 거의 똑같이 그려져 있었다. 시장조차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을 때 그는 이미 물건을 한군데 모아놓고 파는 슈퍼마켓을 꿈꾸었다.


나노과학은 생체 시스템의 모방

우리가 첨단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제품도 면밀히 살펴보면 모두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열 효율이 낮은 자동차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인간의 뇌와 비슷한 용량으로 발전한 컴퓨터도 선택과 판단력에서는 뒤떨어진다. 또 많은 전자제품이 기능과는 상관없는 열을 배출하여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그러나 수억년 동안 진화해온 생체물질은 이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생산적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초당 1.7×1017와트(W)이다. 그 태양 에너지의 1/100을 사용하는 식물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사용하는 총 에너지는 식물 사용량의 1/100밖에 되지 않는데도, 벌써 지구 온난화 같은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식물이 그만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러면 식물과 같은 생체물질이 이처럼 완벽한 시스템을 가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스스로 원자와 분자를 질서 있게 정렬시키고 배치시킬 수 있다는 데 해답이 있다. 이런 자연 시스템을 모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나노과학의 원리이다.

이제껏 소형화 제품의 제조 방식은 큰 물질을 쪼개서 작은 크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주 옛날에 원시인들이 남긴 동굴 벽화를 보면 예리한 물건으로 동굴 벽을 긁어서 그린 선각화가 있다. 동굴의 평평한 면을 '0'으로 볼 때 선각화의 파인 곳은 '1'이다. 즉, 이진법을 활용한 디지털의 원리와 똑같다. 그러나 파인 부분이 아주 얕으면 0인지 1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된다.

N극과 S극의 두 가지 성질을 이용하는 집적회로의 제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 집적회로의 최고 밀도는 1제곱센티미터당 약 10기가비트(Gb)까지 개발된 상태인데, 기존 기술로는 100Gb가 한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상 작게 만들면 N극과 S극이 자기의 고유 성질인 자성을 잃게 되고, 또한 그처럼 작게 만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

이처럼 현대 과학은 큰 것을 쪼개서 작게 만드는 기술이 곧 한계에 부딪힐 상황이다. 나노과학은 바로 그에 대한 발상의 전환에서 출발한다. 즉, 아주 작은 분자나 원자를 모으고 조립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세포를 만들어내는 자연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분자 또는 원자의 세계에서는 고전 역학이 아닌 양자역학 이론이 적용된다. 이미 알려진 성질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성질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양자역학의 이론처럼 나노과학이 앞으로 어디까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존의 발상을 깬다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바로 나노과학의 매력이 아닐까.


강연자 : 국양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교수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펜실바니아주립대학 물리학박사

- 나노기억매체연구단장

저작권자 2004-03-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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